만원 버스와 지하철에 시달리며 출근해 분주하게 업무를 소화하고 야근에 늦은 술자리로 숨 가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문득 공허함이 밀려드는 순간,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보지 않았을까. 늘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는 일상, 다람쥐 쳇바퀴 돌듯 채우는 것 없이 쥐어짜내기만 하는 사회생활에 치여 어느 날 갑자기 가방을 싸 버린 경험, 누구나 해 본 것은 아니겠으나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해 보지 않았을까. 그렇게 떠난 여행의 현실과 늘 꿈꿔 오던 환상 사이의 너무나 큰 괴리에 충격을 받았더라도, 보잘것없고 소심한 스스로의 모습을 낯선 곳에서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확인했을 뿐이어도, 말이 통하지 않아 얼굴 붉히는 난감한 상황을 수시로 맞닥뜨렸더라도, 그럼에도 돌아온 자들은 또다시 가방을 싸서 길을 나서게 되는, 보는 사람은 물론 당사자조차도 뚜렷하게 해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여행의 존재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닐까.

요시모토 바나나는 지금까지 총 네 권의 여행 소설 시리즈를 선보였다. 그중 두 권이 국내에 소개되었는데, 바로 『불륜과 남미』와 『무지개』이다. 『불륜과 남미』는 라틴아메리카를, 『무지개』는 남태평양의 타히티를 여행하고서 쓴 소설이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두 소설은 인도네시아의 발리 섬과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다.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개성, 낯선 여행지의 독특한 분위기와 풍물,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색다른 경험이 씨줄과 날줄처럼 절묘하게 교차하며 촘촘하게 직조되어 요시모토 바나나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형성하면서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번에 민음사에서 출간된 『무지개』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가 남태평양의 낙원으로 불리는 타히티를 여행하고 그곳에서의 경험과 감응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원시의 순수와 야성을 간직한 대자연과 이국적인 열대의 풍물이 다채로운 타히티의 정식 명칭은 ‘프렌치 폴리네시아’로 총 118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군도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머무는 곳은 타히티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보라보라 섬과 모레아 섬이다. 예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현실 도피적인 유토피아를 꿈꾸며 섬을 찾았던 프랑스 화가 고갱으로 널리 알려진 타히티는 니콜 키드먼과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신혼여행지(보라보라 섬), 「러브 어페어」 영화 촬영지(모레아 섬)로도 유명하다. 보석처럼 투명한 바다 위에 떠 있는 방갈로, 알록달록한 물고기들, 모래 위를 매끄럽게 스치고 지나가는 가오리와 레몬색 상어, 햇살에 따라 시시각각 빛깔이 변하는 산호, 해 질 무렵이면 장엄한 실루엣을 드러내는 깎아지른 절벽, 푸른 섬을 붉게 불태우는 석양, 놀다 지쳐 돌아오는 사람들이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 소리……. 작품 속 주인공이 타히티에서 맞는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실제로 타히티에 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여행자의 마음을 여지없이 빼앗아 버리는 타히티의 자연은 그저 감각만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자가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게끔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이 자연을 필요로 하는 이유,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엄마의 품속처럼 깊고 따스한 타히티의 자연 속에서 자신과 마주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지난날의 상처를 치유해 간다.

           

[민음사 편집부 박향우]

출간일 2009년 8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