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수상자의 이름을 기대하게 되는 문학상이 있다. 1955년 처음으로 개최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 문단을 이끄는 유수의 작가들을 배출하며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는 동인문학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올해 동인문학상에서는 작은 이변이 일어났다. 이변의 주인공은 얼마 전 새로운 민음사 한국 문학 시리즈인 ‘민음 경장편’을 통해 첫 단행본 『나쁜 피』를 발표한 김이설. 바로 이 작품이 동인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것. 

예년에 비해 유달리 치열한 ‘신예들의 전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올해 동인문학상에서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총 네 편으로, 그중 김이설은 유일한 2000년대 등단 작가이자 우리에게 가장 낯선 ‘진정한 신예’로 꼽히고 있다.

원고지 500매 내외의 ‘가벼운 장편’인 경장편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21세기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강렬하게 담아낸 『나쁜 피』를 통해 단번에 한국 문단의 루키로 떠오른 그녀. 그러나 사실 김이설은 서울역 노숙자 소녀의 일상을 조명한 등단작 「열세 살」에서부터 지금까지 절제된 묘사와 강렬한 주제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호평을 받아 온, 준비된 재목이기도 하다.
유독 앞으로의 모습이 설레는 작가가 있다. 박완서, 이혜경, 신경숙의 뒤를 잇는 한국 문학계의 ‘대형 작가’로서 성장을 점치게 하는 작가 김이설. 첫 단행본으로 동인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저력에 진심에 찬 박수를 보내며, 그녀의 다음 걸음이 향하는 곳을 기대해 본다.

특별히 이번 동인문학상 최종심 진출을 기념하며 작가에게 직접 작품의 숨은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를 가져 보았다.

- 동인문학상 최종심 진출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우선 『나쁜 피』는 참 ‘센’ 소설이다.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는?
원래 『나쁜 피』는 ‘산다는 건 일종의 견뎌 나가는 일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막상 쓰다 보니 견디지 못할 것들, 견딜 수 없는 것들, 견뎌서는 안 될 것들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더라. 결과적으로는 후자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다.

- 경장편을 집필하면서 특별히 주의한 부분이나 어려웠던 점이 있는가?
경장편은 단편과 장편의 경계선상에 있는 분량이라 사실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또한 작품에 담고 싶은 이야기를 전부 하기 위해서는 압축된 스토리 라인과 빠른 호흡이 생명이라는 판단 아래 몇 장마다 빠르게 장면 전환을 넣었던 듯하다.

- 소설의 무대인 ‘황폐한 천변 어귀’와 ‘쇠락한 버스터미널’ 등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배경은 어디에서 착안하게 되었나?
작품 내에서 워낙 어두운 동네로 그려진 터라 구체적인 지명은 밝힐 수 없지만 서울 외곽에 실제 모델이 된 장소가 몇 군데 있다. 파국으로 치닫는 가족들 간의 건조한 분위기를 위해서 서너 군데쯤 되는 ‘황폐’하고 ‘불모’의 느낌이 드는 장소를 봐 두었는데 이번 작품에서 그 모든 곳의 풍경을 한 동네에 담아 보았다. 그 결과 무대가 꽤 어두워졌다.

- 지금까지 한국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가족상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게 있어 가족은 두 가지 의미로 구분된다. 실제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은 내 존재의 의미, 내 삶의 뿌리와 같다. 그들로 인해서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가족은 이율배반적으로 나 스스로를 부정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이 두 가지 의미를 합쳐 놓고 보면 결국 가족은, 내게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곳.

[민음사 편집부 양은경]

김이설
출간일 2009년 6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