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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판식 시인이 김춘수 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수상작은 지난해 본사에서 출간한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입니다.

통영문학상은 통영문학제추진위원회가 운영하는 것으로 시 부문 심사는 이기철, 장석주 시인이 맡았습니다. 시상식은 7월 5일 오후 6시 30분 통영 문화마당 특설무대에서 청마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립니다.

박판식 시인은 1973년생으로 함양에서 출생해 동국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 2001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했습니다.《문학과 경계》 편집위원과 《문학선》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동국대와 광운대학에 출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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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심사평

조금도 비범할 것 없는 삶의 기미들이 반짝거린다

독창성과 개성에서 놀라운 성취를 보여 준 박판식 시집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를 2014년도 김춘수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택했다. 이 총명하고 눈 밝은 시인의 시에는 범속한 세계에서 채집한 조금도 비범할 것 없는 삶의 기미들이 반짝거린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들은 길을 잃고 병든 채 떠돌고, 개업식 경품행사로 자전거가 당첨되고, 그 경품을 내걸었던 빵집은 반 년 만에 폐업한다. 옛 애인이 나를 잊으려고 최면 협회 신규 회원이 되고, 유년 시절 제 음부를 들여다보게 해 준 여자의 부음을 듣는 것도 이 세계이다. 시인은 절과 고아원과 술집이 있고, 어디에나 추문과 실패가 널린 세계에서 “영아 속에 들어 있는 어른은 파곤”하고,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인생의 도약이 아니다”라고 못 박는다. 기껏해야 절망 때문에 종교를 발명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도시에 목자나 박쥐우산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산다고 해도, 또 왜 우는지도 모르는 채 다리 난간에 기대어 우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인은 그런 풍경들에 무심히 눈길을 주고 있다. 시인은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시집 제목으로 삼았다. ‘나’는 ‘나’에게서조차 배제되고 소외되는데, 그것은 존재가 의미를 생산하지 못한 채 공회전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미 “대부분의 인생은 이미 마침표를 얻은 법칙들”(「벌거숭이들의 거짓말」)이라는 염세주의에 깊이 빠져 있음을 암시한다. 시인은 이 비속한 세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스푸트니크를 탄 러시아 개가 느꼈을 우주적 공포와 고립감”(「칼라하리, 서북쪽 350km」) 같은 것을 모아서 자신의 염세주의를 완성한다. 수상자인 박판식 시인께 추하를 드린다.

심사위원_이기철, 장석주(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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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인간에게 가장 절박한 것

김춘수 시인의 말년 시집, 『쉰한 편의 비가(悲歌)』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36번입니다. 물론 더 설명할 것이 없이 아름답고 좋은 시입니다.]

오늘은 아내를 대신해 제가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왔습니다. 아이는 교문가에서 호두반 친구들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이름을 부르고 인사했고요. 저는 작은 화단이 있는 동산에서 그 인사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엄마와 호두반 아이들은 인사를 받아주거나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보이는 일상이지만 그 엄마와 아이들은 지금 자신에게 가장 절박한 것을 하고 있는 중이고 그것은 저와 저의 아들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개천을 누비고 있는 중일까요? 또 정말 너무 작아서 없거나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我(나)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저에게 가장 절박한 질문은 바로 그것이고, 저는 김춘수 시인의 36번 비가에서 그 이상한 꼴의 슬픈 비밀 하나를 맛보았습니다.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는 존재, 하지만 잠시 보자기 같은 그림자로 함께 떠다니는 존재, 제가 볼 땐 인간의 삶도 그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송사리떼의 세계가 신기하지 않습니까. 우리 눈에는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는 我라는 것 속에 모래알보다도 작은 욕망이라는 게 있고, 그 욕망 속에는 제가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은 모래알보다도 더 작은 무엇인가가 들어 있는 게 보입니다.

시는 아름다운 것이고 실제 세계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시는 인간에게 가장 절박한 것이고 꼭 있어야 할 정말 소중한 보물입니다.

수상소감을 보내 달라는 전화를 받고 지하철 4호선 길음역에서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누군가 의자도 없는 구석자리에서 신문 봉지를 몇 개씩 쌓아두고 뭔가를 잃고 서 있었습니다. 무덥고 습한 여름인데 때가 낀 잠바를 입고 악취를 풍기며 봉두난발의 꼴로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혼자 멀찍이 서 있었습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들고 슬금슬금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의 행색은 거지였지만 그는 거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 그에게 가장 소중하고 절박한 것이 저에게도 그럴 것이라는 이상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만 원짜리 한 장을 적선한다고 내민 손이 겸연쩍어지는 하루입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에 뭔가가 물질적으로 생기기까지 하니 솔직히 즐거운 마음이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끄럽습니다. 잘하든 못하든 앞으로도 저에게 가장 절박하고 시급한 것을 하려고 애쓰겠습니다.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박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