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성의 중력에서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모르고, 외계인을 이웃으로 둔 적도 없고, 냄새로 말해 본 적도 없으며, 몸이 변이하거나 우주를 건너 연애를 하거나 과거 시간에 갇혀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여기서 어떤 이야기가 태어나는지는 안다.
“우리는 SF를 통해 우리가 살아온 세상 너머를 목도하고, 그 뒤로는 현실의 빈틈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가보지 않은 미래를 끌어당기고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를 경험시키는 일은 소설이 본래부터 해온 일이지만, 여기서는 그런 일이 노골적으로 일어난다.”
─ 심완선, 『SF는 정말 끝내주는데』(에이플랫, 2020)에서
그러니 바람직한 SF 독자가 할 일은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 다음 책을 계속해서 읽는 것이다. 혼란과 즐거움을 만끽하며 낯선 텍스트를 소화하는 것이다.
최근 SF를 읽기 시작했다는 국내 독자가 부쩍 늘었다. 특히 한국 SF 독자가 많이 늘었다. ‘나 SF 좋아해, 읽어 봤는데 정말 좋았어, 한국 SF 재밌더라.’ 이런 말을 심심찮게 만났다. 그래서 지금 한국 SF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오늘 이곳의 작가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마음으로 쓰는지 정리하고 싶었다. 이들이 어디에서 걸으며 어디까지 갔는지, 무엇을 남기고 있으며 앞으로는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 SF 작가들의 현재 위치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단단히 매듭을 짓고 싶었다. SF 독자들이 다음 책으로 가도록 발밑을 받치고 싶었다. 각자의 모자이크에 SF 조각이 다양해지길 바랐다. 이를 통해 우리가 점점 서로를 참조하길 바랐다.
그래서 현재의 한국 SF를 일별할 수 있도록 인터뷰이 목록을 짰다. 1990년대부터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말하자면 SF 농도가 짙은 사람부터 옅은 작품까지, 세계에 집중하는 작가부터 인물에 집중하는 작가까지, 스펙트럼이 고루 분포하도록 신경을 썼다. 예를 들어 듀나는 1990년대에 활동을 시작했고, SF 농도가 짙고, 세계 중심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다. 반대로 정세랑은 2010년에 데뷔했고, SF 농도가 옅고, 인물 중심의 이야기를 쓴다. 사실 이렇게 꼽다 보면 자리를 훨씬 촘촘하게 채울 수 있는데, 분량상 여섯 명밖에 소개하지 못해서 심히 안타깝다. 책이 많이 팔려서 다음 기획으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인터뷰 질문은 각 작가를 총체적으로 살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대개의 인터뷰가 신간 중심이라 개별 작품에 국한된다는 점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모처럼 긴 인터뷰를 할 기회인 만큼 작가의 작품 세계 전반을 다루려고 했다. 여러 작품을 통틀어 나타나는 주요 주제를 찾아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질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인터뷰 앞뒤로는 공통 질문을 넣었다. 질문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각 작가의 특징을 대조하려는 의도였다. 주로 한국, SF, 작가라는 세 가지 줄기가 교차하는 질문을 넣었다.
‘여러분은 SF 작가라는 직업인으로서 어떻게 일을 하나요?’
‘한국 SF라는 느슨한 울타리 안에서 어떤 가지를 뻗고 있나요?’
‘동시대 한국을 사는 사람으로서 어떤 생각을 하나요?’
그 결과,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마다 다른 색깔의 글이 나왔다. 말투도 가치관도 작업방식도 다르고, 심지어 같은 질문을 던져도 다른 방향의 이야기가 진행됐다. 하지만 그러면서 한국 SF 작가라는 공통점이 묻어났다. 읽는 분들도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며 읽어 주시길 기대하고 있다.
인터뷰가 제각각으로 완성된 모습을 보며 “온 우주에 공통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우리의 ‘현재’는 국지적으로만 존재할 뿐 우주 전체에 적용되지 않는다. 시간의 속도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물체의 속도가 광속에 가까울수록, 중력에 영향을 받을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그러니 다른 여건에 놓인 물체는 다른 시간의 현재를 산다. 물리적으로 사실이고 문학적으로도 그렇다. 이 글을 읽고 계실 여러분 각각은 모두 자기만의 속도로 시간을 여행하는 중이다. 언젠가 다다를 죽음을 향해, 막막한 우주에서, 자기라는 짐을 싣고 움직이는 중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위한 1인용 맞춤형 타임머신이다.
─ 심완선, 『우리는 SF를 좋아해』(근간) 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