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 교양강좌] 소설가 김탁환의 ‘스토리텔링 특강’ 행사 스케치!

독자님과 함께 사진을 찍고 계신 김탁환 작가님의 모습입니다.

이날 강연에 앞서 2012년 민음 교양강좌 운영 방향과 더불어 간단한 인사말을 전해주신 민음사 장은수 대표님과 함께 하신 사진입니다. 고전 위주의 강연을 기획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문학 특강은 물론 정치, 영화, 철학 등 범주를 다양하게 확장해 독자와의 접점을 더 많이 찾고자 했다고요. 이어 깊은 친밀함을 느낄 수 있었던 두 분의 오래된 추억담을 듣는 동안에는 처음 오신 분들의 낯섦과 긴장도 많이 풀리는 듯 했습니다.

이날 강연장을 꽉 채워주신 독자님들의 모습입니다! 금요일 늦은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김탁환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많은 분들께서 사정을 마다 않고 달려와 주셨어요.

‘쓰고 싶은 글,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강연의 부제이자 주요 이야기는 ‘다섯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김탁환 작가님께서 교류하고 계신 분들은 물론 익숙하게 알고 있는 유명 작가들까지 포함하고 있는 이 만남이 과연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 만남은 바로 영화 <방가? 방가!>의 육상효 감독님입니다. 육상효 감독님은 감독으로 입봉하기 전부터 임권택 감독님 등과 함께 수많은 각본 작업을 해오며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로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익히 알려진 <달마야, 서울 가자> 같은 작품의 경우에는 각본과 연출까지 모두 도맡아 작업하셨다고 해요. 그런데도 감독님의 이름을 드러낼 기회가 좀처럼 오질 않았었는데, 그러던 중 <방가? 방가!>를 통해 그 결실을 맺었고 현재는 1985년 미 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을 다룬 코미디 영화인 <구국의 강철대오>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육상효 감독님의 말씀에 따르면, 수영과 자전거는 한 번 배우면 잊어버리지 않는 일이라고 합니다. 몸의 근육이 기억한다는 것이지요. 또 이렇게 근육이 관여한다는 면에서,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요. 뇌 근육에 글쓰기 기법이 저장되어 있어서, 연습을 하면 그것을 뇌가 기억한다고 하셨습니다. 김탁환 작가님께서도 1994년과 1995년도에 습작을 많이 했는데, 그때는 원고지 80매를 쓴다는 일이 엄청난 공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작가님의 대표작인 『불멸의 이순신』이 8000매가 넘는 분량인 것을 따져 보면 누구나 다 그런 과정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글쓰기에는 어느날 갑자기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렇게 평지를 달리는 수준으로 가다가 어느 순간 급격한 상승이 이루어지는 것을, 소위 ‘머리가 터진다’고 표현합니다. 갑자기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순간이 오는데, 육상효 감독님의 <방가? 방가!>가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육상효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던 수영과 자전거, 그리고 그에 더해 글쓰기 역시 동급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만남의 주인공은 잭 니콜슨입니다. 김탁환 작가님께서 최근에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라는 영화를 보셨는데, 이 영화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한 ‘해리’를 보며 많은 감동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소개하고 영화 속 잭 니콜슨과의 만남을 예로 드는 것은 바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시간은 이야기, 즉 소설의 핵심적인 주제이지요. 한 인물의 삶을 시간 속에 배치하고 그 인물이 어떠한가에 대해 정리하는 일을 이 영화에서 잭 니콜슨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만들고 소설을 쓰면서 특별한 점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요.

세 번째 만남의 주인공은임혜경 발레리나입니다. 실제로 발레리나 임혜경 씨와는 소주를 나눠 마시는 친구 사이라고 하셨는데요, 언젠가 임혜경 씨에게 “당신에게 발레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의 들려준 대답을 전해주셨습니다. 30년간 매일 3시간씩 발레를 준비해온 임혜경 씨의 답은 “발레는 수학인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묻자, 춤 출 때나 그 다음 동작을 취할 때 본인 발이 닿는 지점을 보는데 몸이 조금만 기울어도 쓰러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연 내내 긴장하고 디뎌야 할 지점을 정확히 보며 공격한다는 것. 따라서 머리가 제일 중요하며, 그 몸의 무게중심을 하나씩 하나씩 정확하게 옮겨내는 것이 발레라고 답하셨다고요. 즉 ‘공간’에 대한 것과 깊이 연결 지어진 만남인 것입니다.

“차선을 택하니 자꾸 화가 나는 것입니다.”

김탁환 작가님께서도 이런 이야기에 비춰, 본인의 소설을 쓸 때 최선의 스텝을 밝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게 중심이 잡힌, 발레와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요. 클래식 발레는 몇 백년이고 정해진 형식이 있어서 어떻게 난이도를 높이는지가 다 보인다고 합니다. 절대수준으로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즉 춘향전과 관련한 논문이 우리나라에 1000편쯤 있다 치면, 바로 그 1001번째의 논문을 쓰라는 것입니다. 실력이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는 이야기를 하고 절대 수준으로 가라는 것, 결국 그것은 자신이 해보고 싶어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 만남의 주인공은, 여러분들께도 깊은 연이 닿아 있는 작가 헤르만 헤세입니다. 이 만남을 이야기하며 작가님께서는 ‘화음’과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작가님께서도 어느 순간, 가장 선한 것과 악한 것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간적으로는 순차성을 가지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있는데, 음악에서는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화음 같은 것으로요. 모순을 동시에 표현해서 사람들에게 수용될 수 있게끔 하는 것, 소설로는 표현이 안 되는 것들이 음악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작가님께서도 글을 쓰고 나서야 비로소 헤르만 헤세가 써온 평생의 글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10대 때부터 지금까지 읽어 오고 있는데 ‘이 사람은 왜 동어 반복을 할까’, ‘화음으로써의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많았다고 합니다. 헤르만 헤세에게도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측면을 쓰고 싶어하는 갈망들이 있었고, 그게 깊어져서 도가 사상까지 온 것 같다는 말씀도 전해주셨습니다. ‘있는 없음’과 ‘없는 있음’의 사상, 또 알쏭달쏭한 노자의 사상에 매혹된 것이 『유리알 유희』에 흘러간 것 같다고요.

김탁환 작가님과의 마지막 만남을 장식한 사람은 일본인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입니다. 민음사 모던클래식에 있는 작품인 『녹턴』, 『남아 있는 나날』, 『나를 보내지마』,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등을 펴낸 작가이기도 한데요, 이날 작가님께서는 가즈오 이시구로에 대해 “문체가 뛰어나고, 굉장히 소설을 잘 쓰는 작가”라고 굉장히 후한 평을 전해주셨습니다. 게다가 최근에 읽은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에서는 굉장히 본질적인 부분들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인데, 앞서 말한 헤르만 헤세는 이 ‘치유의 문학’이라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합니다. 헤세가 싫어한 두 가지가 ‘잡문’과 ‘강연’인데, 그 두 가지가 지성을 망친다는 주장을 했다고 하지요. 작년에 보고 『유리알 유희』에서 그 내용을 보고 뜨끔했던 부분이었는데, 지금 대한민국이 강연의 시대이기 때문이라고요. 작가님께도 학교, 기업부터 다양한 강연 요청이 들어오는데, 강연이 강연을 낳아 매일 강연이 들끓고 있는 나라라고 표현하셨어요. 치유가 안 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진통제를 맞고 있다는 것. 그 대목을 읽고 2011년 우리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는데 강연이 다른 의미로서의 ‘소통’이라는 관점도 있지만 헤세의 경계는 중요한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글쓰기는 가즈오 이시구로와 연결이 되는데, 이시구로는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다만 위로할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존재의 상처는 없애는 게 아니라 들어주고 위로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불행한 것은 치료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위로받지 못해서라고요. 사람이 가지고 있으나 말하지 않는 그 상처에 대해서 말이지요.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을 읽으며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굿바이, 솔로> 속 배종옥의 극중 역할이 떠올랐는데 거기서 또 작가님은 본인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위로 받지 못했던 나의 상처가 생각났고, 그런 것들이 다시 이야기를 만드는 힘에 닿아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다섯 사람과의 만남을 종합해 김탁환 작가님께서 쓰고 싶다고 밝힌 글은, 육상효의 유머와 책 니콜슨의 인생에 대한 회고, 발레리나 임혜경과 같은 정확한 문체, 헤르만 헤세가 꿈꾼 화음과 같은 구조, 그리고 가즈오 이시구로의 상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힘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렇게 ‘쓰고 싶은 글’이라는 것은 그렇게 ‘쓸 수 없는 글’이며, 글이란 게 쓰면 쓸수록 본인이 쓸 수 없는 글을 계속해서 쓰고 싶어지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다만, 긍정적인 얘기를 전하고 싶은 것은 ‘왜 그것을 못쓰고 있나’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쓰고 싶은데 쓸 수 없다라고 생각되면, 글과 관련된 세 가지를 고민해야 한다고요.

그 첫 번째는 바로 ‘시간’입니다.

현재 문화일보에 연재 중인 <BANK>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1800년대, 즉 100년의 시간을 앞선 인물들의 삶에 대한 것입니다. 즉 이야기 속의 시간을 장악하지 못하면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날 나눠드린 『열하광인』 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로 트릭을 썼는데, 그렇게 트릭을 쓰며 작품을 쓰기까지는 10년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작품을 바로 쓸 수가 없고 그 시간들을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번 째는 ‘공간’입니다.

역시 <BANK>의 무대는 구한말 개화기의 인천인데, 이 인천을 또 장악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인천에 관련된 사람들을 다 만나는데, 그 공간을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게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세번 째는 ‘분야’입니다.

작가님의 전공은 국문학인데, 동물 연구가들의 전공을 물으면 ‘노루, 파충류, 개구리’라는

진지한 답이 나오는 것이 처음에는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 있어 전공이라는 것이 큰 벽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지요. <BANK>의 주인공들의 전공은 은행인데 그것을 모르니 공부해야 하고, 그렇게 공부를 해서 다른 분야를 장악해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분야를 장악하지 못하면 평생 자기 얘기만 한다는 것이지요. 즉,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재능과 상관 없이 공부해야 하는 것이라고요.

이렇게 시간과 공간, 분야가 굉장히 중요하며 마찬가지로 바로 이런 것들이 글을 쓸 수 없게 만든 게 아니었나 하고 생각하신다고요. 이 세가지 잣대를 들여다 보면, 어디가 약한지 본인이 알게 된다고 합니다. 작가님께서는 소설을 쓰면서 가장 약한 것이 ‘공간’이었다고 하는데, 집에서 책 읽기를 좋아하던 문학 소년이 처음에는 그런 공간을 찾아 나선다는 게 두렵고 무서웠지만 소설을 쓰면서 그런 모습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새로운 이야기를 찾기 위해 공간을 찾는다고요.

“최근에 ‘진도’에서 호랑이를 잡은 기록이 나왔다고 하는데, 수영을 배우면 진도까지는 충분히 건너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울릉도까지 가다가는 다 죽습니다. 한 번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최소한 2년, 그 후에도 사실 모르지요. 고민과 습작이 쌓여서 올라가는 것, 그런 것이 바로 글쓰기가 아닌가 합니다.”

작업은 주로 아침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는데 그 시간에는 항상 앉아서 쓰고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루 20매씩, 4시간을 매일 습관적으로 쓴다고요. 이렇게 시간을 정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글감이 생기면 관련된 책을 100만원 어치 사세요. 그 100권을 책장에 꽂아두고 보면 책장이 넘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내가 정말 무식하다는 것, 그 중에서 한 권도 안 읽었다는 그 느낌이 중요한 것입니다. 100권의 목록을 정하고 읽어 보세요. 책에 따라 정독하거나 발췌독을 하거나, 때로는 버리는 것도 있겠지요. 그런 경험을 해보면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커지는지를 알게 되지요.

책장에 100권을 꽂은 뒤 사진으로 찍어서 제게 보내주세요.(웃음)”

마지막으로 발자크의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셨는데요, 발자크는 그의 정치적 입장과 다른 소설을 계속해서 써왔다고 합니다.

“발자크의 습관은 일단 자료 조사를 엄청나게 한 뒤, 퇴고를 한 10번 쯤 하는 것이 작업 스타일입니다. 고치고 조사하면서 초고 내용과 다른 결론이 나는 거지요. 그런 게 소설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습관을 들이느냐에 따라 어떤 이는 진도까지만 헤엄쳐 나가고, 또 어떤 이는 조오련처럼 현해탄을 건널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습관이 너무나도 중요하고, 또 그것이 작품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서두르지 마세요. 고치고 나서 검증하는 시간도 필요한 법입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 수준은 초고 전에 결정된다’는 말도 있는데, 쓰기 전에, 그리고 쓰면서도 계속해서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쓰기 전의 그 공포가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