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이메일로 가지 질문을 주고받았다. 니콜 크라우스는 뉴욕에서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유명한 문학 커플이다. 뉴욕은 히피 문화와 예술가들의 자유연애와 아이 없는 동거가 흔했는데 최근 젊은 영화배우 같은 유명인들이 정상적으로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는 등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며  빅토리안으로 불리고 있는데, 이 새로운 세대로 언급되는 커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니콜 크라우스 부부다. 그녀는 현재 1 20 둘째 출산 예정이며, 번째 작품도 준비 중이란다.

1 <남자, 방에 들어간다>를 쓸 때 몇 마일을 뛰고 또 뛰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작품을 쓰는데 어떤 도움이 되는가?

첫 번째 소설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를 쓸 때는 맨해튼에서 센트럴파크 근처에 살았다. 그때는 내 인생에서 특별한 시기였는데, 젊은 시절이 그렇듯이 나에게도 상당히 감정적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러닝은 당시 나에게 현재의 삶 밖에서 혹은 삶을 뛰어넘어 오랫동안 철저히 나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나는 센트럴파크까지 뛰어 갔다가 저수지를 돌아 오는데, 거기엔 묵직한 수면이 조용히 하늘을 담고 있다. 이렇게 엄청나게 텅 빈 투영을 돌아보는 것은 나에게 큰 위안을 주었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새로운 평정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브루클린에는 저수지도 없고 결혼했고 아기도 생겼다. 삶이 바뀌었다. 더 이상 뛸 시간이 없긴 하지만 사실 지금은 그때처럼 절실히 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2 당신의 소설에서 과학 기술에 대한 경고와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읽을 수 있다. 관계를 중시하는 것 같은데, 기억상실이 바로 그런 중요성을 말하기 위한 장치인가? 진부할 수도 있지만 당신의 소설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관계에 대해 말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쓴 모든 것을 보면 내 자아와 타인 사이의 균열을 탐구하는 데 열중했던 것 같다. 나의 캐릭터들은 모두 각기 자기 몫의 소외를 겪는다. 처음에는 기억 상실, 슬픔 같은 분명한 원인에서 비롯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외적인 요인은 점차 뒷전이고 사실 우리 모두의 일상에서 각자의 내면과 어떻게 타협해야 할지를 탐구해야 할 필요를 시사하고 있다. 즉 나의 자유를 축소하거나 확대할 때 타인과 마찰을 일으키는 문제, 상상력에서 위안을 찾거나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내고 타인으로부터 이해받고 싶어서 상상의 자아를 꾸며 내고 왜곡하는 것을 말한다. 요 몇 년간 작가로서 배운 것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나의 파토스와 문제의식을 거의 모든 것에 투영할 수 있으며, 일단 그러고 나면 그 안에서 그것을 확장하고, 파헤치고, 테스트해 보고, 밝혀내는 것이 아주 수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소외라는 문제는,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나의 관심을 끄는 소외된 인물들은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누가 그런 사람일까?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있다.

사뮈엘 베케트, 내가 늘 생각하게 되는 작가인데, 그도 분명 소외라는 풍부한 광맥을 탐사한 작가다. 하지만 베케트는 소외라는 개념을 워낙 뛰어나게 해석해 냈기 때문에, 독자는 베케트의 작품에서 그 밖의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른 해석이 있을 테고, 또 어떤 작가들은 혼탁하고 복잡다단한 인간관계를 파고든다. 이런 건 지금 내 관심사가 아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다. 하지만 내가 그런 인간사에서 동떨어져 있긴 해도 내 소설에서 그런 걸 고려하고는 있다.

3 시인, 평론가, 소설가로서 단어를 어떻게 고르고 있으며 어떤 스타일의 문장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SPAN>

내가 어떤 단어를 고르는지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에게조차 그저 미스터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의 단어는 일단 오랫동안 발전시켜 온 일종의 취향의 결과로서 세련되게 정제된 것이면서, 또한 가려울 때 긁을 데를 찾는 것처럼 원시적이기도 하다. 어떤 리듬, 나의 맘을 뺏고 있는 사유를 담아내는 일종의 언어 구조에 매력을 느낀다. 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모를 때에도 난 늘 그 단어나 문장이 적절치 못하다는 건 안다. 나는 소설 전체를 오랫동안 그려 보지 않은 채 단어와 생각을 조직적으로 모으면서 글을 상당히 직관적으로 써 오고 있다. 보다 큰 그림이 나중이다.

 

4 당신은 기억상실에 관한 에세이를 쓸 만큼 망각에 관심이 많다. 과거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앞으로만 나아가는 세상에서 그토록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향수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억이 인간에게 힘을 부여한다고 생각하는가?

난 잊는 것에 매혹돼 있는 게 아니다. 아마도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를 쓰기 시작할 때는 그랬던 것 같다. 나는 항상 노스탤지어에 빠져 있는 사람이었고, 그때 난 노스탤지어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을 때였다. 그 노스탤지어라는 게 내가 현재의 순간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강하게 살아내는 힘을 약화시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망각, 샘슨의 망각을 추구하는 일에 착수하자마자, 난 그게 얼마나 끔찍한 건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정말 고독할뿐더러 어찌나 끔찍한 악몽 같은지. 그 이유는 기억 상실이 타인과의 관계망을 완전히 쓸어버릴 뿐만 아니라 또한 자아의 정체성을 또한 짓밟기 때문이다. 물론 자아라는 것은 그저 조작해 낸 것일 수 있다. 우리는 기억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일관된 내러티브를 만들기 위해 인생의 상당 부분을 잊어버리고 극히 일부만을 축적해서 자아라는 걸 엮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선택적 기억이 만들어 낸 역작이라 할 수 있는 이 내러티브 덕분에 우리가 정상이라는 범주 안에 머물 수 있는 거다. 우리가 제정신이라고 말하는 범주 말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내러티브를 창조해 내는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진짜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기억이라는 놈이다. 기억은 가장 섬세하고, 가장 복잡하고, 사활이 걸린, 가장 창조적인 과정인 것이다.

 

5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는 첫 번째 소설이다. 고 수전 손택은 이 소설을 두고 당신이 “미국 문학사에 중요한 작가로 떠올랐다.”라고 극찬했다. 두 번째 소설 <사랑의 역사>는 당신을 문학계에서 스타덤에 올려 놓았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비결은? 당신의 문학적 배경은 어떠한가?

나의 문학적 백그라운드는 단순히 내가 읽는 걸 사랑하고, 또 최대한 내 삶을 가능한 한 많이 읽을 수 있도록 조정했다는 점이다. 상당히 어린 나이 때부터 그렇게 했기 때문에 당연히 난 책의 영향으로 형성되었으며, 아마도 부모님보다도 더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열네 살쯤에 내가 직접 뭔가를 써야겠다는 충동을 느낀 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인생의 반쯤 지나고 나서 보니, 글쓰기는 습관이 되었고, 이제 작가라는 직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더 확장되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있다. 글쓰기는 내가 나의 경험을 규정하고 평가하고 흡수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과정이 되었다.

글을 쓰지 않고는 내가 건전하게 기능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글 쓰는 사람으로 산다는 건 오히려 건강하게 기능할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이 드러나긴 했지만 말이다.) 어렵다. 그래도 불가능하진 않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난 어려움을 사랑하게 되었다. 힘든 건 좋아할 일도 아니고 사실 끔찍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일단 책 속에 있게 되면 점차 일에 빠져 드는데, 그 보상이 어마어마하다. 글쓰기에 견줄 만한 건 어디에도 없다. 글쓰기는 나에게 엄청난 자유를 선사한다. 상상력을 펼치고, 상상 속에서 바꾸고 고치고, 무너지고 확장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계획하고, 수행하고, 영향을 주고, 삶을 선택하고, 실험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가장 핵심적인 것에 지속적으로 닿아 있어야 한다. 작가는 이 존재론적인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없다. 글쓰기는 당신의 진액을 일에 쏙 빼게 만든다. 하지만 어느 날, 그 모든 자유와 감정적인 소모가 극에 달했다가도 갑자기 전혀 새로운 국면의 의식 수준에 들어가게 된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데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누군가 나에게 내가 쓴 소설을 읽었다는 말을 들으면 난 여전히 놀랍다. 게다가 내 소설을 진짜로 좋아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충격이다. 이렇게 작가로서 부딪히는 경험이 정말로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특히 내가 계속해서 책을 더 쓸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6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와 <사랑의 역사> 모두 사랑, 상실, 갈망에 관한 소설이지만, 그 플롯은 전혀 다르다. 다음 소설로는 어떤 걸 준비하고 있는가?

지금 세 번째 책을 쓰고 있는데, 작업을 하고 있을 때는 뭐라 말하기가 힘들다. 아마도 작가의 방어적인 태도이겠지만, 글 쓸 때 정말 중요한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번 소설도 어떤 면에서 사랑, 상실, 갈망에 관한 것이지만, 물론 스타일 면에서나 줄거리 자체로도 그 전에 내가 쓴 그 어떤 것과도 전혀 다른 작품이 될 것이다. 내가 완전히 새로운 걸 쓰고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도 내가 달라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새로운 작업이 흥미진진하고 생기를 얻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난 작가로서 똑같은 사람이고, 단지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을 정직하게 보여 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