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기하학’ 이후 3년 만에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가 나왔다. 함기석 시집을 기다리는 사람은 함기석 시집의 제목도 기다린다. 뽈랑 공원, 착란의 돌, 국어선생은 달팽이. 모두 함기석 시인이 만들어 낸 다른 차원의 제목들이다. 차원. 나는 이 말이 전혀 과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다른 차원에 대한 상상력이야말로 수학의 핵심이고 수학적 상상력은 함기석 시를 열독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이기 때문이다. 마법. 나는 이 말도 역시 과장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찾아온 흑역사가 바로  ‘수포자’로 요약되는, 수학에 대한  패배감이었기 때문이다. 패배감을 호기심으로 바꿔준다면 솔직히 마법이란 말도 부족하다.

 

좀 빨리 걸어라 발발아, 나의 말은 지름이 점점 커져서

넓이를 측정할 수 없는 비문이 되고 있다

교수님 말은 비문도 법문도 아니에요. 걸어 다니는 성기예요

코를 킁킁거리며 π는 이교수가 뱉는 말을 핥는다

제로의 그림자 원은 각(角)의 나라로 망명하고 싶다

─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와 발발이 π」에서

 

일찌감치 수학을 포기했어도 수학이 추상적인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건 안다.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를 보면서 더 잘 알게 됐다. 특정한 맥락과 관습화된 용례 안에 갇혀 오히려 무한한 상상력을 제한하고 불통의 근거가 되기도 하는 언어의 한계성이 추상적 개념을 언어화한 수학적 수사와 만나 오히려 편안하게 전달되고 자유롭게 표현되는 장면은 놀라운 경험을 준다. 수학은 전적으로 논리와 독립된, 결코 논리에 의해서만 근거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 생각을 함께한 힐베르트처럼 논리를 넘어서는 감각이 시를 통해 전달된다.

 

수학적 감각이라 해서 기하학, 방정식 같은 어려운 개념만 떠올릴 필요는 없다. 독창적인 감각과 정서가 두드러지는 시들을 모두 적고 싶지만, 여기에서는 맛보기 한 편만 소개한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책의 사생활, 조금만 보여 주는 데 묘미가 있으니까. 「아내가 내온 육면체 큐브」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나는 묵이라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묵에 내가 든 젓가락 혹은 숟가락이 움푹, 꽂힐 때마다, 이 시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만 같다.

 

묵은 접시 위에서 갈색 잠을 자고 있다

묵은 아내가 잃은 자유를 닮았다

묵은 물컹거리는 아내의 속울음이 담긴 육면체 바다

내가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자

묵 속의 침묵이 둔중하게 손을 타고 파도가 되어

내 심장을 울린다

 ─ 「아내가 내온 육면체 큐브」에서 

민음사 편집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