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우리가 볼 수 없는 그 모든 언어를 밝게 비추기

외국문학 편집자로 적지 않은 시간 일해 왔음에도, 원서로 책을 검토할 때 느끼는 감정과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을 읽거나 편집할 때의 감정 간의 간극이 클 때가 종종 있다. 비단 번역이 잘되고 못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원문 그대로의 문학적 표현을 즐길 때와 달리 한국어로 번역, 편집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 때문이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의 경우 역시 그랬다. 작년 봄, 원서로 읽을 때는 짧은 문장과 챕터 덕분에 독해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가 고심해서 썼을 표현을 보며 대단하다고,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경구나 시 같은 문장들은 추상적인 뉘앙스로 의미가 찡하게 다가왔다. 빨려들 듯 소설 속 세계로 들어갔다 나왔다. 100퍼센트 이해하진 못하지만, 정말 괜찮은 작품이라는 감동이 퍼지는 순간…….

우리말 번역과 편집에는 그 감동의 순간을 온전히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목표가 따른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을 편집하는 동안 여러 문제에 맞닥뜨리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비유로 가득한 문장들은 예사였다. 눈이 먼 주인공의 입장에서 느끼고 상상하는 것들을 제대로 표현해야 했다. 작가의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표현도 난제로 다가왔다. 예를 들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라디오’ 관련 표현은 여럿이었다. ‘Radio’, ‘Transmitter’, ‘Transceiver’, ‘Receiver’ 등등, 한국어로 보면 ‘무선 통신 도구’ 안에 속하는 기계들의 기능에 따라 달리 붙은 이름이다. 그에 더해 코일, 변환기, 선택 계기판 등을 주인공이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대목에서는, 실제로 라디오를 분해해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군인의 계급에 대한 표현 역시 문제였다. 예를 들어 영어로 쓴 작가의 ‘Sergeant Major’라는 계급 표현은 찾아보니 독일어로 ‘Stabsfeldwebel’에 해당했다. 이 표현은 우리나라 계급으로 치면 뭐란 말인가? 게다가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문장들은……? 수많은 연체동물과 광물의 학명은……?

번역자 선생님께서는 원고를 전달하시면서 힘든 작업이었음을, 편집 작업 역시 힘들 것임을 암시하셨다. 정말 그랬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작가 앤서니 도어가 자신의 문장 표현을 이러저러하게 고쳤다는 수정 파일도 몇 번이나 도착했다. 그런 연유로, 책 속 주인공들과 꼭 닮은 소년 소녀 사진으로 곱게 만들어진 표지의 책을 받아 들었을 때의 감정은 감격과 안도 그 이상의 것이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의 여주인공 마리로르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도시를 탐색해 나갈 때, 아버지는 나무로 도시의 축소 모형을 만들어 딸에게 이해시킨다. 작업을 하는 동안 외국 소설이라는 미궁 속을 들어가려는 독자를 위해 한국어로 된 완벽한 모형을 깎고 세공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언어의 빛을 빠짐없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독자 앞에 책을 내민다. 위에서 편집자로서의 고충을 털어놓았지만, 이것은 오로지 편집자의 몫이었으니 걱정 마시길. 사흘 안에 2권 모두 독파할 정도로,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인 소설임을 약속한다.

민음사 편집부 허주미

출간일 2015년 7월 10일
수상/추천 ≪뉴욕 타임스 ≫ 선정상 외 3건
출간일 2015년 7월 10일
수상/추천 ≪뉴욕 타임스 ≫ 선정상 외 3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