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보다도 에너지가 많은 우리 엄마가 언젠가부터 당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시곤 한다. 얘기 끝에는 항상 어릴 적 기억은 그토록 선명한 것이라며 아이들을 잘 돌보라고 당부하신다. 그러고 보니 어르신들이 “우리 어렸을 적엔… 그때는” 하고 시작하는 옛이야기를 왜 많이 하시나 했는데 이젠 우리 엄마가 그렇다. 언제부턴가 초가 들어간 음식을 드시면 사레들리는 일이 잦아지고 잠을 잘 못 주무신다. 아직 젊어 보이는 우리 엄마도 노인이 되어 가는 걸까. 『노인은 늙지 않는다』를 만들면서 막연히 걱정만 했지, 잘 모르고 있던 노년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나이 들어 가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할 단서들을 하나하나 제공받은 듯한 느낌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흔히 노년 하면 건강을 잃은 몸과 주름 같은 것들을 연상하게 된다. 실제로 독일 키일 대학교 인류학 연구소에서  “늙고 (   ).”라는 설문 항목의 괄호를 채우게 하니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이 “늙고 (아프다)”였다. 조사에 참여한 젊은이들 중 90퍼센트는 나이 듦을 가난하고 약해지는 것과 결부시켰다. 독일이든 우리나라든 어디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노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백 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우리는 이제 인생의 시기 중 가장 긴, 수십 년이 될지 모르는 시간을 노년기로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나이 든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 첫인상처럼 아프고 가난해지고 죽어가는 것일까. 노년은 건강과 기쁨, 아름다움과 같은 모든 좋은 것들이 사라지는 시기일까. 아니면 또 다른 차원에서 멋진 점들을 감추고 있는 걸까?

실제로, 나이 듦의 외향은 초라하다. 몸은 세포의 수명과 한계로 인해 자연히 나이 들게 된다. 혈관과 뼈, 근육이 퇴화하고 시력이 약해지는 등 신체적 노화는 막을 수가 없다. 뇌 또한 마찬가지여서 우리 개인사를 저장하는 자전적 기억도 해체되기 시작하는데, 기억의 내용은 경험과 역순으로 사라지므로 최근에 겪었던 일부터 희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미래의 목표보다는 인생을 돌아보며 이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므로 과거에 대한 회고가 잦아진다. 사회적으로는 퇴직에 따라 경제적으로 위축될 수 있고 사회활동 또한 축소된다. 이렇듯 나이 들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어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노년에는 기대할 만한 것들도 분명 존재한다. 인생의 경륜이 가져오는 소중한 것들, 전문성, 풍부해진 감정, 젊은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학자 프리더 랑이 “인생의 모든 시기는 각각 독특한 소득과 손실이 있기 마련이다.”라고 말했듯, 노년에는 많은 손실을 상쇄할 만큼의 소득 또한 있다. 인생의 우선순위 또한 젊은 시절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인생 후반기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적응’

노인 문제에 천착해 온 이 책의 저자 마티아스 이를레는 노년의 새로운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변화에 처절하게 맞서거나 혹은 무기력해질 것이 아니라 나이 듦에 적응하고 또 변화하라고 조언한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온갖 변화에 스스로 ‘적응’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가 예순 넘어 새로운 취미를 찾으신 것도 이런 ‘적응’과 같은 맥락이리라. 예전에는 스포츠센터를 다니셨는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학원에서 정식으로 스포츠댄스를 배우신다. 이삼 년 꾸준히 배우셔서 왈츠 등의 모던댄스는 꽤 잘하고 즐기신다.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즐겁게 배울 수 있는, 현실적인 취미를 찾으신 듯해 기쁘다. 우리 부모님이, 그리고 나이 들어 가는 우리 모두가 나이 듦의 변화를 미리 알고 노화에 대해 ‘현실적 낙관주의’를 취하기를, 그래서 더욱 멋진 노년을 만들어 가기를 바라 본다.

민음사 편집부 김혜원

연령 40~80세 | 출간일 2015년 6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