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중국의 광활한 대륙에서 세 영웅이 천하를 다투던 시절. 우리의 주인공 유비는 인재를 구하여 제갈량을 세 번 찾아가고, 넓적다리에 살이 붙었다고 탄식하며, 적벽 대전에서 조조에게 대승을 거둔다……. 그런데 이처럼 잘 알려진 사실 말고 유비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소설 『삼국지』를 세 번 읽지 못해서 인생에 대해 논할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유비가 어떤 사람인지도 말하지 못할 처지였던 편집자는 유비를 재현한 이미지를 수집하며 책 편집에 매진했다. 그리하여 유비의 그림자를 50가지나 모으지는 못했지만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당나라 때 그려진 유비

당나라 때 그려진 유비


첫 번째 그림자. 7세기 경 그림이니 삼국 시대로부터 500년은 지나서 그려졌다. 오늘날 세종 대왕을 그리는 경우처럼 화가는 유비를 글로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귀를 길게 그린 부분이다. 역사서에 따르면 유비는 “자기 귀를 볼 수 있을” 만큼 귀가 컸다고 한다. 실제로 사람 귀가 그토록 크지는 않았겠지만 유비를 욕할 때 대개 ‘귀 큰 놈(大耳兒)’ 운운했다는 기록이 여럿이니 유비는 보통 사람보다 귀가 컸던 것이 틀림없다.

 

코에이 삼국지 10탄의 유비

코에이 삼국지 10탄의 유비

 

두 번째 그림자는 1500년을 훌쩍 뛰어넘어 유명한 게임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찾았다. 시대 간격만큼 용모 차이도 현격한데, 이 게임에서 유비를 묘사하는 데 참고한 것이 무엇보다 그의 매력이라 유비 캐릭터의 매력치가 최강이기 때문이다. 사료를 보면 유비는 “멋진 의복을 좋아했으며” “젊은 사람들이 다투어 유비를 따랐다.”라고 하니 역시 고증에 충실했다 하겠다. 한미한 출신으로 시작한 유비는 자신의 부족한 군사적, 정치적 능력을 채우고자 관우, 장비, 제갈량, 조운과 같은 유능한 인물을 곁에 두었고, 그 과정에서 그의 매력이 십분 발휘되었다는 것은 유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세 번째 그림자?

세 번째 그림자?

 

코에이 삼국지의 유비를 생각하면서 삼국 시대를 다룬 영화를 찾아보면 금성무 같은 배우가 눈에 띈다. 그러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삼국 시대의 삼대 전쟁 중 하나를 다룬 영화 『적벽 대전』의 티저포스터 중 하나가 다음과 같다.

 

 

바로 왼쪽 위, 어딘가 친숙한 모습의 ‘인과 덕의 지도자’가 바로 유비이다. 기대는 배반되었을지언정 이 또한 고증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비에 대한 유명한 일화로, 유비가 조조에게 쫓겨 달아날 때 그의 뒤를 따른 백성이 10만 명에 이르렀다. 행군이 지체되므로 이들을 버리고 가자는 측근의 권유에 유비는 이렇게 말했다. “큰일을 하려면 반드시 사람으로 근본을 삼아야 한다. 지금 사람들이 나를 따르는데 어떻게 버리고 갈 수 있겠는가!” 전략상으로는 그릇된 판단이었으며 결국 유비는 처자식까지 버리고 도망했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울림을 주는 이야기다. 역사적 논평에 따르면 유비는 이처럼 사람을 소중히 여겼기에 상대와 “마음으로 통하는” 결과를 거두었다. 이것이 유비의 세 번째 그림자인데, 여기에서 분명 ‘내가 아는 유비는 그렇지 않다’는 이의가 제기될 법하다. 유비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이라면 『유비 평전』의 장쭤야오 선생이 사료에 입각해 충실하고 엄격하게 정리해 두었으니, 이제 이 책을 펼쳐 놓고 한바탕 토론해 보는 게 어떻겠는가.

민음사 편집부 신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