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훔친 미술』, 미술을 훔친 영화 「폭스캐처」

영화 「폭스캐처」 포스터

영화 「폭스캐처」 포스터

올 2월 국내 개봉된 베넷 밀러 연출의 영화 「폭스캐처」는 금메달리스트 레슬러 데이비드 슐츠의 그늘에 가려져 온 동생 마크 슐츠가 우연찮게 미국 굴지의 재벌가 상속인 존 듀폰이 후원하는 레슬링 팀 ‘폭스캐처’에 영입되면서 벌어지는 여러 욕망의 충돌과 번민을 그린 작품이다. 버스터 키튼을 잇듯 무표정이 전매특허였던 희극배우 스티브 카렐이 전혀 다른 아우라를 뿜으며 명연한 존 듀폰은, 마크에게서 존의 그림자를 거둬 줄 듯 호의적으로 굴다가도, 이내 신경질적으로 통제하거나 감정적으로 갈피를 못 잡는 등 기이한 행태로 마크 슐츠를 옥죈다.

「폭스캐처」 초반부에 클로즈업되는 의미심장한 명화가 한 장 있다. 마크 슐츠의 비좁은 방에 걸려 있는 이 그림은 에마누엘 로이체의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이다. 마크는 이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며 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 이 그림을 등진 채 형 데이비드와 언쟁하기도 한다. 단순히 미장센을 위한 소품이 아니라는 것은, 그림의 뒷배경에 조금만 관심을 두어도 쉽게 짐작된다.

에마누엘 로이체,「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1851)

에마누엘 로이체,「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1851)

에마누엘 로이체가 그린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은 미국 독립이 미친 국제적인 영향력을 잘 보여 준다. 그림에는 미래의 미국 대통령 둘이 등장한다. 단호한 자세로 서 있는 이가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며, 그 옆에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다. 북방계 털모자를 쓴 사람, 스코틀랜드식 모자를 쓴 사람, 흑인, 넓은 챙이 달린 모자를 쓴 농부, 붉은색 옷을 입은 남장 여자, 인디언 등 미국을 이루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노를 저어 나간다. 영웅적인 자세로 서 있는 워싱턴의 머리 주변에는 서광이 떠오른다. 옆에서 제임스 먼로가 든 깃발은 워싱턴의 도강(渡江)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열세 개 별이 그려진 성조기는 그 후인 1777년에 확정된다. 화가 에마누엘 로이체는 독일계 화가였다. 실제로 그림 속 강은 라인 강을 모델로 한 것이며, 미국의 독립전쟁을 1850년대의 독일 상황과 연관시키기 위해서 그린 그림이다. 로이체는 자신이 지원했던 혁명이 실패로 끝났지만, 실의에 빠지지 않고 독일의 진보주의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자 이 그림을 그렸다.  ㅡ이진숙, 『시대를 훔친 미술』 213-216쪽

문서상(이념상) 발표된 독립 선언을 육화한 것은 결국 무력(전쟁)의 쐐기였다. 조직화된 영국군에 맞서기에 식민지 군대의 전세가 불리했던 것은 당연하다. 그런 형편에서 거둔 1776년 조지 워싱턴의 대승은 판도를 뒤집는 것이었다. 그는 “일시적인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영웅적” 본보기였고, 자유의 나라 미국의 건국은 “프랑스혁명 목표의 방향점을 제시”할 만큼 결정적인 결실이었다.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성조기를 드높이 휘날려 제 나라의 위대함을 널리 알리고, 그 위대한 나라의 위대한 국민(영웅)으로 일어서겠다는 원대한 꿈을, 마크는 후광을 두른 국부의 그림을 보며 아로새겼을 것이다. 혹은 이 위업을 달성할 듀폰(그는 스스로 미국의 상징인 수리를 자칭하곤 했다.) 옆에서 깃발을 든 또 다른 젊은 선두(마치 워싱턴 옆의 먼로처럼)가 되겠다는 포부였을지 모른다.

“우린 위대한 일을 이룰 거야.”(극 중 존 듀폰의 대사)
“저의 모든 걸 바치겠습니다.”(극 중 마크 슐츠의 대사)

위대해지려던 그들의 투쟁이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는, 직접 영화를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물론 그 결과와 무관하게, 그들이 ‘위대한 개츠비의 나라’의 처연한 초상이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민음사 편집부 김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