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그림을 그린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을 때는, 글을 쓸 때뿐이다.”

데뷔작 『양철북』으로 전후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가 되고, 20세기 마지막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귄터 그라스. 하지만 젊은 시절 그가 열정을 바친 최초의 대상은 글쓰기가 아니라 미술이었다. 김나지움에 다닐 때 스케치와 수채화에서 거듭 칭찬을 받았고, 노동봉사단에 입대했을 때도 스케치와 색칠을 빨리 잘해서 특별 대접을 받았으며, 전쟁이 끝난 후 끓어오르는 창작욕을 분출하기 위해 처음으로 택한 장소도 바로 뒤셀도르프 국립 미술 대학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연필로 스케치를 했다. 이를테면 근접 관찰 방식을 택해 표면이 거칠거칠하고 분위기가 음산한 벽돌담을 머릿속으로 재구성해 내곤 했다. 고무지우개는 다 닳아서 가루가 될 때까지 옆에 두곤 했는데, 나중에, 훨씬 나중에 나는 연필에 붙어 있는 이 보조 도구를 한 연작시에서 형상화했다. “나의 고무지우개와 달, 이 둘은 점점 줄어든다.” ―『양파 껍질을 벗기며』 중에서

귄터 그라스의 예술 인생에서 글쓰기만큼이나 떼려야 뗄 수 없는 활동이 바로 비주얼 아트였다. 우선 그라스는 새로운 소설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천천히 드로잉과 페인팅을 하는 과정을 거쳐서 그것이 완성되면 매우 빠르게 글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많은 책들의 표지 삽화를 직접 그렸다. 한국에서 출간된 『양철북』, 『넙치』, 『게걸음으로』, 『양파 껍질을 벗기며』, 『암실 이야기』 표지에도 그가 직접 그린 그림이 실렸고, 『라스트 댄스』에는 그가 직접 지은 시와 함께 연필, 목탄, 붉은 색연필 등을 이용해 격정적인 춤 동작과 다양한 체위의 성교 장면을 표현한 그림 32점이 수록되어 있다.

 

▲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 실린 귄터 그라스의 그림

▲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 실린 귄터 그라스의 그림

 

▲ 『암실 이야기』에 실린 귄터 그라스의 그림

▲ 『암실 이야기』에 실린 귄터 그라스의 그림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그라스는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조각가가 되기를 꿈꾸었다. “나는 조각가가 되고 싶었다. 단순한 점토를 가지고, 이리저리 만져 볼 수 있는 존재감으로 공간을 채우는 형상들을 만들고 싶었다.”(『양파 껍질을 벗기며』 중에서) 그래서 석공 밑에서 실습생으로 일하기도 하고, 뒤셀도르프 국립 미술 대학과 베를린 조형 예술 대학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조각을 배우기도 했다. 어느 순간 글쓰기에 빠져들어 문인으로 이름을 더 드날리게 되었지만, 그는 평생 그림과 조각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런 그의 작품들을 모아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전시회가 열린 적도 있다. (《가디언》의 귄터 그라스 사망 기사에는 역시나 입에 파이프를 문 그가 조각하는 모습이 실려 있다. 링크: http://www.theguardian.com/books/2015/apr/13/gunter-grass)

뛰어난 문인이었을 뿐 아니라 뛰어난 비주얼 아티스트이기도 했던 귄터 그라스. 서두에 밝혔듯이 그는 본격적으로 등단한 후에도 글을 쓰지 않을 때면 늘 무언가를 그렸다. “글쓰기를 잠시 쉬는 동안이면 나는 수녀들, 특히 애덕 수도회 수녀들을 그렸다. 이들의 날개 리본 두건은, 내 가련한 어머니가 쾰른의 성 빈첸트 병원에서 돌아가신 후 자주 보았던 것이라, 파리의 지하철에서 혹은 뤽상부르 공원에서 나는 그것을 스케치하곤 했다.”(『양파 껍질을 벗기며』 중에서)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는 장(章)과 장 사이에 그가 직접 그린 양파 삽화들이, 『암실 이야기』에는 (마리로 추정되는) 여자 삽화들이 실려 있어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말년에 남긴 두 권의 책을 통해 문인으로서, 비주얼 아티스트로서, 즉 삶 자체가 예술가였던 귄터 그라스의 숨결을 가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민음사 편집부 남은경

연령 15세 이상 | 출간일 2015년 5월 8일
출간일 1999년 10월 1일
출간일 1999년 10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