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샹떼』 무성 코미디의 힘을 찬양하다

영화 매체에 익숙한 우리에게 새로운 영화 읽기의 길을 안내하는 책 『씨네샹떼』가 출간되었다. 불어로 ‘영화 예찬’이라는 뜻의 ‘씨네샹떼(Ciné Chanté)’는 철학자 강신주와 영화평론가 이상용이 ‘영화+인문학으로 읽는 세계 영화사의 걸작 25편’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강좌명이기도 하다. 성황리에 마무리한 강연 중 일부를 지난 4월 25일 교보문고 ‘명강의 Big10’ 「씨네샹떼, 철학자의 영화 읽기」에서 만날 수 있었다. 200여 명의 관객들과 함께 찰리 채플린, 해럴드 로이드와 무성영화의 역사를 주름잡았던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Sherlock Jr.)」(1924)를 감상하며 무성 코미디 시대를 돌아보았다. 강연의 일부를 아래에 재구성하여 소개한다. (더 자세한 강연 내용은 『씨네샹떼』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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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등의 눈요기 영화는 관객에게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기분을 선사합니다. 영화가 주는 가장 원초적인 매력은 무엇일까요? 현대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몸짓(gesture)’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표현으로서의 몸짓을 담은 영화적 특징은 특히 무성 코미디에서 쉽게 찾을 수 있죠. 오늘 감상한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가 주는 가장 큰 재미 역시 그가 표현하는 몸짓에 있어요. 1924년작이라는 점이 놀라울 만큼 현대적인 영화였지요? 키튼은 스턴트맨의 도움 없이 직접 위험천만한 장면도 무표정하게 연기를 펼칩니다. 설상가상의 상황을 연출하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절로 나와요.”

“언뜻 보면 정신없는 것이 마치 성룡 영화 같기도 하죠. 성룡과 버스터 키튼의 공통점은 슬랩스틱 요소(몸짓)에 있습니다. 성룡의 과장된 웃음과는 달리 키튼의 트레이드마크는 무엇보다도 ‘무표정’이에요. 관객의 시선을 얼굴 대신 행동으로 옮기려는 의도에서 연출된 거예요.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정보를 줄임으로써 행동에서 많은 정보를 찾게 만드는 겁니다.”

“버스터 키튼의 무표정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무표정은 거리 두기의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 무표정은 몽상가나 이상주의자의 욕망을 상징해요. ‘이렇게 힘들고 먹고살기 바쁜데 저 배우는 왜 저렇게 태연하고 무심한 걸까’ 하고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게 당시 키튼이 채플린에 비해 인기가 없었던 이유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지금 현대인들은 키튼의 초상에 더 가까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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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현대인들이 더 크게 공감할 코미디언, 버스터 키튼. 그래서인지 90년 전의 흑백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무성 코미디는 당대 미국 사회 노동자들의 고단함을 달래는 오락이었다고 한다. 이는 현대의 액션, 코미디 장르의 특징으로 계승되었다. 키튼의 몸짓은 영화적 구경거리, 즉 ‘스펙터클’의 효시였던 셈이다.

민음사 편집부 문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