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는 상처의 시(詩)입니다. 흔적으로 남아 통증의 시간을 기억하니까요. 제게 흉터는 치유된 흔적으로, 또 상처의 끝으로, 무사하진 않았지만 잘 버텨낸 과거쯤으로 보입니다. 안이한 걸까요. 시인이 끄덕입니다. 과거만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흉터라고, 그것이 절정의 아름다움이라면 아름다움까지도 흉터라고 말입니다. 이토록 분분한 꽃잎을 보고 봄날의 눈물이라니, 세상의 흉터라니, ‘앓는 세계관’에 동의할 수 없다가도 한 편의 시 앞에 눈길이 머뭅니다.

 

아무리 울음 운다 해도

봄의 눈물을 이기지는 못한다.

수면에 부푼 꽃이 떠올랐다

떨어진 꽃들은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흉터

-「봄날, 꽃이라는 눈물」에서

 

봄날 나무에서 꽃잎이 떨어지면 그건 봄이 흘리는 눈물입니다. 흐르는 눈물은 얼굴에서 피어난 꽃잎이고요. 눈물과 꽃잎이 하나가 되는 순간, 시는 우리가 아는 눈물을 아름답고 성숙한 무엇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백 리를 기다리는 말』의 법칙인데요, 우리 시끄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은 모두 자연을 매만진 시인의 손입니다.

박해람 시인은 그 손으로 정원 가꾸는 일을 합니다. 우리는 꽃과 나무를 멀리서 바라만 보지만 시인은 심어 주고 옮겨 주고 이불 덮어 주고 치료해 주고, 말 그대로 정성입니다. 눈물은 가까이 있을 때 잘 보이는데, 꽃나무 가까이에 있는 시인은 우리가 못 보는 꽃나무의 눈물을 얼마나 많이 봤을까요. 꽃비에서 눈물을 상상하는 시인의 눈이 결국 우리의 눈물까지 꽃비로 만듭니다. 눈물이 꽃 같다고 생각하니 뚝, 울음이 잦아드는 기분입니다. 앓는 세계관이란 말은 취소, 안 할 걸로 하겠습니다.

                                                                   민음사 편집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