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넘버』는 왜 로맨스가 아니라 스릴러인가?

 

 

기억도 공유하면 좋겠다. 구글독스처럼 관계된 사람들이 다 같이 기억을 맞춰 나가는 거다. 10일이 아니라 12일이지. 거기가 아니라 여기였잖아. 이쪽저쪽에서 알아서들 고치고 다듬다 보면 뭔가 풍성한 기억 하나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정확성도 훨씬 높을 텐데. 여러 사람 갈 것 없이 한 사람만이라도 나와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말이다.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시키느라 드는 고생도 진짜 피곤하다, 하고 생각해 보신 적 있는지? 너무 허무하고 맹랑한 얘기라면 도플갱어 정도는 어떨까? 도플갱어라는 말이 거북하다면 솔 메이트라는 표현도 있다. 나를 나만큼 잘 아는 사람, 여기까지라면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도 소화 가능한 얘기 되겠다. ‘나만큼나보다로 바뀌는 순간, 로맨틱 코미디는 범죄 스릴러 추리물로 바뀐다. 『넘버』가 장르물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두 남자가 있다. 김대현과 김대현을 김대현보다 더 잘 아는 박이명. 박이명이 사람을 죽이고 나면 김대현은 그 시체를 치운다. 살인만 하는 게 아니다. 신분까지 가져가 버린 탓에 김대현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박이명 행세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런데 갈수록 이상하다. 박이명은 김대현에 대해 알아도 너무 많이 안다. 김대현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까지 속속들이. 기억에서 밀린 김대현은 존재에서도 밀리기 시작한다. 내가 누구지? 물어볼 때도 없는 질문만 선명해진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지 말하고 싶은데, 일부러 안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범인은 제쳐두고 재밌는 부분을 힘줘 말하자면 이 책은 프로파일링 과정이 압권이다. 차곡차곡 사건을 더듬어 나가다 보면 작가의 사생활이 궁금해질 정도다. 본문에 삽입된 리얼한 그림들-잘린 다리, 잘린 가슴 등-은 작가가 직접 그렸다. 이 역시 작가의 사생활을 궁금하게 할 정도다. 그러니 결론은, 직접 확인해 보시길.

민음사 편집부 박혜진

노희준
출간일 2012년 10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