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보다 ‘장 발장’이라는 제목이 어쩐지 더 익숙한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레 미제라블』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이 일제강점기 때였다는 사실은 아는 독자들은 의외로 많지 않을 듯하다. 『레 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의 또 다른 대표작인 『파리의 노트르담』(이 작품 역시 ‘노틀담의 꼽추’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했다.)과 함께 해방 전부터 꽤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그 오랜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1. 1862프랑스에서 『레 미제라블』 출간

1845년부터 무려 17년에 걸쳐 쓰인 세기의 걸작, 『레 미제라블』은 1862, 벨기에 브뤼셀에서 먼저 출간되었다. 1부는 출간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1쇄가 매진되었고 그 후 약 23년간 거의 50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판매 부수였고, 이 작품은 아직까지도 프랑스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2. 1910- 육당남선, 처음으로 소개하다

1910년 이 작품을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한 사람은 육당 최남선이었다. 최남선은 『레 미제라블』의 극히 일부분만을 번역하여 잡지 《소년》에 발표하고 《청춘》(1914)에는 35쪽에 걸쳐 『레 미제라블』 줄거리를 소개하며 서문에 아래와 같은 글을 쓰는 등, 이 작품에 큰 애착을 보였다.

빅토르 유고(1802~1885)는 일대(一代)의 대교사(大敎師), 「미써레이」은 그 일생(一生)의 대강연(大講演)이라 소설(小說)로 그 정취(情趣)가 탁발(卓拔)함은 무론(毋論)이어니와 성세(醒世)의 경탁(警鐸)으로 그 교훈(敎訓)이 위대(偉大)함을 뉘 부인(否認)하리오…….(『한국과 서양(西洋), 129)

3. 1918~1960일본어 중역판, 다양한 제목으로 출간되다(『哀史(애사),『장발장』, 『쟌발쟌』, 『빈한(貧寒), 『짠발짠의 설음』, 『몸 둘 곳 없는 사람』 등)

초역은 ‘哀史(애사)’라는 제목으로 1918년부터 105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되었으며 1922년에는 홍난파 번역의 『哀史 — 레미제라블』(박문서관, 1922)이 국한문 혼용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이 판본이 쇄를 거듭하며 팔리자 출판사에서는 여성용으로 편집한 『짠발짠의 설음』(박문서관, 1923)이라는 순한글 판본을 새로이 편집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영문판을 번역한 일본어판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작품들이었다.

4. 1962 – 100년만에 최초의 원전 완역본 출간

1962, 드디어 중역이나 축역, 번안이 아닌 원전 완역본이 한국 최초로 출간되었다. 프랑스에서 출간된 지 꼬박 100년만의 일이었다. 바로 이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번역한 원로 불문학자 정기수의 번역이었다. 당시 한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된 작품으로서, 정기수 교수는 이 번역본을 한 자 한 자 원문과 대조해 가며 거의 새로이 번역하다시피하였다. 무려 50여 년에 걸쳐 다듬어진 대작 탄생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교육부 국어 심의회 및 교육 과정 심의회 위원, 프랑스 교육 문화 훈장 수훈자 협회 한국 지부 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정기수 불문학자는 그 공헌을 인정받아 프랑스 팔므 자카데미크로부터 프랑스 교육 문화 훈장인 오피시에와 최고 훈장 코망되르를 받기도 했다.

5. 2012 11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레 미제라블』 출간되다!

‘레 미제라블’을 직역하면 ‘비참한 사람들’이다. 번역했을 때의 낯섦과 어색함 때문에 그동안 이 책은 주로 ‘장발장’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왔을 것이다. 장발장. 성은 장 씨요 이름은 발장. 왠지 모르게 친숙하고 한국스러운 이름 아닌가. 하지만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이 작품에게 본명을 찾아다 주었다.

1980년 파리에서 최초로 공연된 후 1985년 런던으로 이어진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큰 성공을 거두어 뮤지컬 「캣츠」의 기록을 깨고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 공연되었다.(42개국, 21개 언어, 4 3000회 공연, 5500만 관객) 또한 1957년 장 가방 주연, 1995년 장 폴 벨몽드 주연, 그리고 2012년 곧 개봉할 휴 잭맨 주연의 영화까지 무려 스무여 번이나 영화화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서문에서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책들도 무익하지는 않으리라.”라고 한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레 미제라블』은 출판 이후 오늘날까지 150년간 놀랄 만큼 왕성한 생명력으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그야말로 “세기의 걸작”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음사 편집부 박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