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소설가』의 원제 ‘The Naive and the Sentimental Novelist’는 실러의 “Über naive und sentimentalische Dichtung”이라는 논문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논문에 따라, 파묵은 소설의 기교를 인식하지 않고, 즉 소설을 쓰는(읽는) 데에 인위적인 면이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으면 ‘소박한’ 작가(독자)로 규정하고, 반대로 소설을 읽거나 쓸 때, 소설에 사용된 기법과 독서 과정에서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두면 ‘성찰적인’ 작가(독자)라 규정한다. 한국어 제목을 ‘소설과 소설가’로 붙인 것은, 파묵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을 공부하고 마침내 세계적인 소설가로 성장하기까지의 여정이 잘 드러나 있을 뿐 아니라, 위대한 소설가들의 소설을 통해 소설의 안과 밖을 해부하고 소설 이론을 풀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편집한 편집자는 소박한가 성찰적인가. 편집이라는 작업 자체가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작가의 말을 반추하고, 의미를 재해석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소박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파묵의 작품은, 그것이 에세이이건 소설이건, 편집자를 헤어 나올 수 없는, 끝없는 성찰의 늪으로 이끌고 간다. 그가 사용한 단어 하나하나, 그가 인용한 한 문장 한 문장을 확인해야 한다면 누구도 소박한 편집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번역자는 몇 배나 더 ‘성찰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묵의 소설은 독자뿐 아니라 편집자마저 소박하게 만들어 버리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의심하고 점검하려는 의지를 잊어버리고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힘, 그것이 그의 소설이 가진 매력이다. 화가를 꿈꾸었던 파묵은 ‘단어로 그리는 그림’, 즉 소설을 쓰면서 ‘소박한’ 동시에 ‘성찰적인’ 영혼을 가진 소설가가 되기 위해 계속 읽고 또 써 나갈 것을 다짐한다. 그런 그의 작품을 편집하는 사람이라면 소박한 ‘독자’인 동시에 성찰적인 ‘편집자’가 되기를 다짐해야 할 것이다.

민음사 편집부손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