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을 따져 볼 때가 있습니다. 연기자 출신 가수나 약사 출신 소설가, 선생님 출신 요리사나 모델 출신 시인. 연기하듯 노래하는 가수와 조제실에서 소설 쓰는 약사, 선생님 말투로 레시피 가르치는 요리사와 무대 위에서 워킹하는 시인을 상상해 보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렇기만 할 줄 알았는데 저렇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일까요? 전혀 다른 두 모습을 한 사람에게서 보는 즐거움 때문일지도. 어쨌든 한 사람이 여러 모습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1인생 1직업’을 삶의 양식으로 삼고 있는 우리는 약사이기도 한 소설가나 선생님이기도 한 요리사, 혹은 모델이기도 한 시인을 떠올리기가 힘듭니다.

 

이민하 시인은 편집자 출신입니다. 출신이라고 해서 옛날에만 그랬다는 게 아니고 지금도 틈틈이 편집 일을 합니다. 편집자 출신 시인,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희소하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 편혜영 작가나 김숨 작가도 그런 경우입니다. 반대도 있습니다. 김민정 시인이나 이병률 시인 같은 시인 출신 편집자. 시인 편집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일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편집자 출신 시인들은 어떻게 일할까요? 그‘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그’에 대해서는 조금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민하 시인에 대해서 말입니다.

확인, 수정, 확인, 수정, 확인, 수정…….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으나 『모조 숲』의 어떤 시는 마감하기 바로 직전까지 단어가 계속 바뀌었습니다. 꼭 이렇게 애를 먹이는 시가 있다고 했습니다. 쓸 때 ‘쉽게’ 쓴 시는 뒤돌아보지 않는 편인데 쓸 때 ‘어렵게’ 쓴 시는 계속 만지고 다듬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뿐이었다면 편집자 시인이라는 소재로 책의 사생활을 쓸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먼저 표지 색깔. 시인마다 원하는 색깔을 정해서 민음의 시 표지를 만듭니다. 이민하 시인은 보라색을 원했는데 여러 보라 중에서도 특정 보라에 해당하는 색상 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고 작가 사진. 책을 열면 날개가 보이고 안쪽에 작가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에는 시인의 예쁜 얼굴 말고도 고양이 한 마리가 있을 텐데요. 지워지지 않는 그림입니다. 생긴 게 꼭 도돌이표 같기도 하고 떠도는 풍문 같기도 합니다.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요.    

시인은 원고를 쓰고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게 보통인데 편집자이기도 한 시인은 책 만드는 일에도 정성을 다했습니다. 『모조 숲』 곳곳에 이민하 시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이런 책일수록 책이 원고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는 건 당연합니다. 그래서 『모조 숲』은 더더욱 자서부터 읽지 말고 표지부터 읽기를 권합니다. 보라색도, 사진도, 약력도, 차례도, 순서도, 모두모두 읽을거리입니다.  

 

                                                                 민음사 편집부 박혜진

 

이민하
출간일 2012년 8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