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진 욕조, 색깔 욕조, 타일 욕조, 마개 달린 욕조……. 처음부터 표지 난항이 예견된 책이었다. 모두가 생각하는 그 ‘욕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끄덕일 만한 어떤  ‘욕조’를 만들어 내는 것! 경사지거나 색깔 있는 실핀 욕조가 타일 욕조로 갔다 다시 마개를 장착한 실핀 욕조로 돌아오기까지, 『욕조』의 여정은 길고도 험난했다.
실핀은 사라진다. 열 개를 사면 열 개가 사라지고 백 개를 사면 백 개가 사라진다. 주로 욕실 구석구석에서 발견되는데, 발견된 다음에 또 사라진다. 이렇게 있는 동시에 없고 미용의 수단이면서 공포의(수챗구멍을 막는 주범이다!) 상징이기도 한 실핀을 욕조와 연결시킨 것은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전체적으로 너무 밋밋해 보이는데?” “다른 책들이랑 같이 있으면 눈에 띄기 힘들 것 같아.” “이게 욕조로 읽힐까?” 선배 편집자들의 의견에 색깔도 입혀 보고 글자 획도 조정해 봤지만 흩어진 실핀 느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가독성을 높인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왼쪽에서 세 번째 그림인 타일 욕조다. 우선 잘 읽혔고, 타일이라는 욕실스러운 재료를 활용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우리는 실핀을 선택했다. 모험과 도전에 대한 끌림도 있었지만 실핀으로 그려 낸 욕조야말로 『욕조』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표지라는 판단에서였다.(이런 확신은 꼭 다른 표지를 보고 나서야 온다.)
『욕조』는 욕망을 실현하지도 못하고 그것에 저항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강박과 공포를 그린 소설이다.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거나 누군가에게 얽매여 있는 주인공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정작 그들의 행동은 감금과 예속을 강화할 뿐이다. 없으면 불편한데 찾아 나서기엔 너무 사소한 실핀 앞에서의 갈등이 발버둥치자니 부담스럽고 잠자코 있자니 찜찜한 삶 앞에서의 갈등과 닮았다. 글자 모양을 좀 더 다듬고 시선을 분산할 수 있는 디자인 요소를 넣으니 한결 나아 보였다. 욕조는 역시 타일보다 실핀이다.

 

                                                                 민음사 편집부 박혜진

 

김희진
출간일 2012년 6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