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계에는 이른바 ‘디스토피아’, ‘포스트 아포칼립스’ 붐이 불고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도 베스트셀러 소설도 그 배경에 온통 종말 이후의 먹구름 낀 하늘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이라도 할 것처럼 왜들 이 난리냐고? 그러면 반대로 물어보자. 정말로 내일 지구가 멸망하지 말라는 보장은 있는가? 그리고 당신이 바로 그 행운아인지 불운아인지 알 수 없는 ‘살아남은 자’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있는가?

디스토피아 소설의 가장 어두운 매력이자 섬뜩한 출발점은 바로 이것, ‘내’가 살아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만일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계속 살아남을 것인가. 내가 살아가야 할 망가진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요즘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약속이나 한 듯 핵전쟁으로 인한 현실적인 인류 멸망을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사람들은 언제나 ‘신빙성 있는 종말’과 ‘이후 대책’을 생각해 놓고 싶어 하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퓨어』의 세계관은 살아남기가 싫어질 만큼 두려운 종말을 그리고 있다. 이후에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는 답이 선뜻 안 나올 정도다.

의문의 대폭발 이후 세상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폭발 당시 옆에 있던 생물, 사물, 심지어는 돌과 융합하여 기괴한 모습으로 변했다. 오염을 걱정하지 않고는 물 한 모금 마실 수도 없으며 무너져 내린 거리에서는 모두가 죽어 가고 하늘에서는 예전에 내리던 눈송이를 추억하듯 끊임없이 회색빛 재가 날린다.(이 작품은 출간되기도 전에 3부작 모두 「트와일라잇」 책임 프로듀서에 의해 영화화 계약이 되었지만, 바위와 융합된 사람들은 아무래도 아름다운 뱀파이어처럼 로맨틱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소설이 보여 주는 디스토피아 문학의 새로운 지평은 바로 이런 세상에조차 ‘순수한 것’, ‘아름다운 것’, ‘희망’, ‘사랑’, ‘위로’가 존재한다는 데 있다.

폭발 이후 기형으로 넘쳐나는 ‘바깥’에 사는 소녀 프레시아는 어느 날 인류 문명 최후의 거점이자 완벽하게 환경으로부터 보호된 폐쇄 사회 ‘돔’에서 탈출한 소년 패트리지를 만난다. 그리고 아무런 상처가 없는 패트리지의 크림색 피부와 밝은 잿빛 눈동자를 보고 ‘아름다움’을 자각한 프레시아가 어머니의 죽음을 놓고 시작된 패트리지의 여정에 함께하면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들은 위험한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예전의 디즈니월드를 추억하고, 반짝거리는 선물이 가득한 생일날을 떠올리고, 삶은 계란의 짭짤하고 향기로운 맛을 음미하고, 소소한 다툼을 벌이고,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올리는 기도를 하고, 한순간 모든 것을 던져 버려도 좋을 것만 같은 로맨스를 펼친다. 세상은 다시는 예전 같아질 수 없겠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게’ 살아간다. 『퓨어』는 이렇게 한 편의 소설이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있을 법한 종말 이후의 세계를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즉 생각한 것보다 더 살아남기 힘든 세상과 생각한 것보다 제법 잘해 나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결국 중요한 것은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그리고 그 재 먼지가 가득한 세계에 살아가게 된다고 해도, 사랑도 인생도 계속되리라는 사실이다. 삶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니까 소설의 마지막 순간 프레시아가 속으로 되뇌는 고백처럼 말이다.(스포일러가 될 테니 상대의 이름은 살짝 지우도록 한다.)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사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약속을 믿어 보기로 하고는 그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검댕이 새로운 먼지와 함께 다시 땅 위에 내려앉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검은 눈과, 축복의 재와 함께.

 

민음사 편집부 양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