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평론가인 정한용의 다섯 번째 시집 『유령들』을 떠들어 보면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이거 시 맞아?’ 시편은 뉴스 아나운서의 대본처럼 이지적인 문장들로 가득 차 있는가 하면 언어영역 참고서의 시 단원을 보듯 시행마다 각주를 길게 거느리기도 한다. 심지어 시집의 말미에는 참고문헌도 붙였다. 「도움 받은 자료」라는 제목 아래에는 마흔다섯 권의 책과 여덟 편의 영화, 일곱 군데의 인터넷 사이트가 잘 정리되어 있다. 왜 정한용 시인은 언뜻 평론집과 차별성 없어 보이는 시집을 낸 것일까?

답은 시집의 내용에 있다. 『유령들』은 전쟁과 테러, 노예 사냥, 인종․민족 차별, 정치적․종교적 분쟁에 뒤따랐던 인종 학살을 낱낱이 파헤친 시집이다. 시인은 난징 대학살과 아우슈비츠 수용소, 5․18 광주와 아프간 전쟁 등 지구 곳곳에서 목격된 문명의 잔인한 현장을 집결했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이 “폭력의 고발로 이보다 더 적나라한 시를 본 적이 없다.”라고 평했을 만큼 묘사가 구체적이고 생생하며, 내용이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더욱 섬뜩하다. 때로는 피해자의 목소리로, 때로는 가해자의 목소리로, 때로는 감정을 일체 배제한 객관적 사실의 나열로 재현된 장면들은 몸서리치는 폭력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렇다면 굳이 시라는 형식을 취한 연유는 무엇일까. “시의 언어는 그 시간을 ‘어떻게 말할 수가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 낼 수 있는가’가 정한용이 택한 질문의 방식이다.”라는 이원 시인의 말이 단서를 준다. 시에선 “1882년부터 1998년까지 백인 폭력 사건으로/ 검둥이 3346명이 죽었다.”라는 지극히 사실적인 서술에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달린다/ 잎사귀에도 피, 뿌리에도 피/ (중략)남부의 미풍에 흔들리는 검은 몸뚱이들/ 포플러 나무에 매달려 있는 이상한 열매”(「이상한 열매」)라는 구슬픈 노랫가락을 연이어 붙일 수 있다. 마치 내레이터의 차분한 목소리와 영상 속 인물들의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가 번갈아 나오는 다큐멘터리처럼. 간명한 숫자로 남은 ‘드러난’ 역사와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울부짖음이 교차하는 ‘잊힌’ 역사의 대비는 비극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시인 정한용은 이 시집으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완성한 셈이다.

 

민음사 편집부 김윤지

 

정한용
출간일 2011년 8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