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의 행성은 모두 몇 개일까? 수금지화목토천해명, 하고 헤아리고 있다면, 당신은 적어도 2006년 이전에 정규교육 과정을 마친 사람일 것이다. 정답을 말하자면, 모두 여덟 개다.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이 명왕성을 태양계에서 퇴출시켰기 때문이다. 명왕성이 사라졌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명왕성은 태양 궤도를 돌고 있다. 그저 크기가 작고 궤도가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한 것이다. 미국의 방언협회는 매년 촌철살인 유행어와 눈에 띄는 신조어를 뽑아 왔는데, ‘2006년의 단어로 선정된 것이 바로, ‘명왕성 되다(plutoed)’이다. 태양계에서 소외당한 명왕성의 처지에 빗대어, 사람이나 사물이 갑자기 가치가 떨어지거나 소외되었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재훈 시인은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쓸쓸한 도시인의 삶을 바로 이 명왕성에 빗대어 노래한다. 시집 명왕성 되다곳곳에서 지하철, 버스, 독서실, 골목 등 시인의 일상 공간들이 직접 드러나는데, 그 도시 속에서 육십억 분의 일일 뿐, 그저 먼지처럼 아무것도 아닌” “매일 출근하는 폐인들의 고단한 삶이 펼쳐지며, 시인은 그 속에서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을 진하게 그려 낸다. 익명과 소외, 그리고 기계적 규칙성이라는 도시 생활자의 삶에서 그는 스스로 명왕성이 됨으로써 궤도를 초월한다. 그의 초월은 현실을 탈출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초월적 공간으로 바꿔 놓는다. 명왕성 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태양계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더 큰 우주, 무한한 공간,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언젠가 그는 끝까지 낭만주의자로 남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가 이번 시집의 자서에서 이제 내 바람은 멋있게 늙는 것.”이라고 밝혔듯이,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우리는 흰머리 휘날리며 도시를 순례하는 자유로운 낭만주의자 이재훈을 만날 것이다.

 

민음사 편집부 김소연

이재훈
출간일 2011년 8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