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것에 대한 열쇠가 되어 줄 한 단어, 자주 들었지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그 단어. 몇 번이나 찾아보려 했던 그 단어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140쪽,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

전업 남편. 스완 부인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바로 전업 남편이었다. 모처럼 딸의 집에 갔더니 사위는 회사를 그만두고 집안일하고 있고 딸자식은 바깥일 한다고 안 그래도 마른 몸이 더 앙상해졌다. 뭐라고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괜한 잔소리만 잔뜩 늘어놓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때 부인의 머릿속에 전업 남편이란 단어가 스친다. 들어 보긴 했지만 보는 건 처음이라 그런 걸까. 사위가 전업 남편이라는 사실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뭔가가 잘못된 것만 같다.

원문의 단어는 ‘HOUSEHUSBAND’였다. 역자는 전업 남편이라고 번역했다. 영한사전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 당연한 번역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조금 더 정확하게 국어사전의 세계에서 보자면, 전업주부란 말은 있어도 전업 남편이란 말은 없다. 전업주부란 말처럼 집안일을 전담하는 남편을 표현하는 단어도 마땅치 않다. 그런데 이게 어디 사전의 세계에만 해당하는 얘기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전업주부는 당연해도 전업 남편은 여전히 불편한 존재다.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은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남의 남편이라면 몰라도 내 남편이 전업 남편으로 사는 건 허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여자, 한 번쯤 꿈꿔 본 적은 있지만 꿈이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남자, 이른바 전업 남편에 대해 확신 못 하는 이 시대 모든 남자와 여자. 『브래드쇼 가족 변주곡』은 전업 남편을 둘러싼 그들의 이중적인 시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직장 대신 집안일을 선택한 남자 토머스와 집안일 대신 대학 교수를 선택한 여자 토니가 일 년 동안 겪는 일상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가족 내 성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민음사 편집부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