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사용 설명서』 당신은 사용 설명서를 사용하고 있습니까?

 

효능과 효율을 강조하는 현대사회, 취업 ‘시장’에서는 노동력을 ‘판매’하는 공급자로 전락했고 연애조차도 사치스러워서 버거운 청춘들이 오늘도 열심히 ‘스펙’ 쌓기에 한창인 시대다. “루저 문학의 최고 극단”(소설가 박성원)이라는 평과 함께 제35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전석순의 『철수 사용 설명서』는 스물아홉 평범한 청년 ‘철수’의 고군분투 업그레이드기(記)를 통해 이러한 세태를 날카롭게 짚어 내는 작품이다.

깨알 같은 글씨가 빽빽이 들어 찬 사용 설명서를 꼼꼼히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쓸 때마다 피부가 화끈거리는 모근 제거기에 불만을 품고 고객 센터에 따지듯 전화했지만, 쿨러를 장착하고 써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용 방법조차 몰랐다는 게 드러난 주인공의 누나처럼 말이다. 멀쩡히 작동하면 그러려니, 이상이 발생하면 일단 때려 보거나 흔들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내팽개쳐 버리는 사람들 속에서 주인공 철수는 자신이 제대로 ‘사용’되기를 소망하며 설명서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시대 청춘의 표본이라 할 만한 철수의 ‘스펙’은 대략 이러하다. “나이 29세, 출생지 서울, 하루 필요 열량 2560kcal, 학력 지방 국립대 졸, 독서량 월 5권 안팎(잡지, 만화 포함), 성격 때에 따라 다름, 인간관계 원만(하다고 본인은 생각)”. 그러나 ‘평범’이 곧 ‘완벽’이길 요구하는 사회에서 철수의 ‘스펙’과 ‘성능’은 하나같이 기준치에 미달한다. 취업 모드, 학습 모드, 연애 모드, 심지어 가족 모드에서도 철수는 뭔지 모르지만 하여간 뭔가를 잘못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온전히 철수의 잘못일까?

지금까지 만난 그녀들은 철수를 반품할 때마다 사유를 한 가지씩 일러 주었다. 그중 절반 가까운 이유가 “너 변했어.”였다. 그런데 “넌 매일 똑같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어쩜 하나도 변한 게 없니?”라는 반품 사유도 만만찮았다. 그쯤 되자 혹시 잘못된 것이 그녀들 쪽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변해도 불만, 안 변해도 불만이라면 그건 분명 사용자 과실이었다. ―『철수 사용 설명서』에서

『철수 사용 설명서』는 설명서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제품 규격과 사양부터 사용 방법, 사용 후기, Q&A, 심지어 피해 보상 기준과 제품 보증서까지, “설명서적 잣대로 인간을 취급하는 현실에 대해 설명서적 형식으로 대응”(문학평론가 김미현)하는 셈이다. 만들수록 사양은 달라지고, 기능은 변경되고, 주의 사항은 늘어 가는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어 줄 사람이 있을까 우려가 커지는) 철수의 사용 설명서는 과연 완성될 수 있을까? 전석순은 철수의 최신판 설명서를 내놓기에 앞서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도대체 인간이 왜 가전체품처럼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해야만 할까?”(문학평론가 강유정)라고.

민음사 편집부 김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