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디트 헤르만이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해 소설을 쓰게 된 데는 특별한 동기가 있다. 2003년 나이 차가 많이 났지만 헤르만과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친구가 죽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죠.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는데, 그걸 들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 책의 출발은 바로 그 사건이었어요. 글을 쓰면서 슬픔이 놓일 자리를 찾으려 했던 거예요.”

두 번째 이야기 「콘라트」가 이 작품의 집필 동기가 되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쓴 것이다.

알리스는 오후에 콘라트 방으로 돌아왔다. 덧창을 내리고 이불을 덮지 않은 채 좁은 침대에 누웠다. 어둠 속에서 오후 햇살이 동전 하나만 한 크기로 빛났다. 금빛이었다. 그 빛은 탁자 아래를 따라 검은 벌집무늬의 붉은 양탄자 위로 천천히 옮아갔다. (중략) 이 빛나는 한 점이 천천히 움직여 가는 것을 알리스는 마치 콘라트의 세월을 바라보듯 지켜보았다. (중략) 알리스는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빛의 점은 사라지고 없었다. (중략)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알리스는 그 사실을 듣게 될 것이다. 알리스가 원하든 원치 않든. 언제나 그렇듯이. — 「콘라트」, 73~74쪽

작가는 소중한 이의 죽음 후 그리움을 다독이며 아픔을 극복해 가는 알리스의 여정을 담담하게 그려 낸다. 이 여정은 바로 작가가 친구를 잃은 뒤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을 치유해 갔던 그 여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작가 자신의 경험이 투영된 이 소설은 그래서 더욱 진중하게 다가오고 우리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감정의 질곡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한 건조하고 간결한 말투는 더욱 깊은 애잔함을 전한다. 우리는 헤어짐은 아프다는 것을, 특히나 사별은 언젠가 다시 볼 수도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마저 허락하지 않는 헤어짐이라는 것을 경험상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사람들, 시간이 흘러 아픔이 아물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알리스』를 꼭 읽어 보길 권한다.

민음사 편집부 임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