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제목은 시크릿 가든이었다. 중견 작가 이청해의 다섯 번째 소설집은. 그런데 지난겨울 대한민국 전역에 시크릿 가든돌풍이 불더니, 너도나도 자칭 앨리스 증후군환자에 열광했고 한 땀 한 땀 수놓아만든 트레이닝복이 불티나게 팔렸다. 소설집의 제목은 장미회 제명 사건으로 바뀌었다. 별 탈 없이 진행되는 듯했다. 그런데 아뿔싸. 책이 나올 때가 되니 4학년 5, 45세 돌아온 싱글 여성들의 모임 비너스회의 회장님께서 일요일마다 몸소 브라운관에 나와 “(회원님은) 제명이 됐어요!”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시크릿 가든은 숲과 연못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백마 탄 왕자가 둘이나 사는 거대한 저택이 있는 곳이다. 의도치 않게 이 세계에 들어온 주인공 길라임은 영혼이 바뀐다는 판타지 설정 위에서 사랑에 물들어 간다. 비밀의 화원은 앨리스가 굴러 떨어진 이상한 나라처럼 마법 같은 공간으로 작용한다. 한편 장미회 제명 사건에 첫 번째로 수록된 단편 시크릿 가든에서 시크릿 가든은 문자 그대로 비원(秘苑), 즉 창덕궁의 후원이다. “하나같이 비운의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순종, 순정효황후, 영친왕, 덕혜옹주의 기구하고도 박절한 삶이 녹아 있는 그곳에서 주인공은 아름다운 풍경에 감추어진 역사의 속살을 생각한다. 누가 말하지도, 사초에 기록되지도 않았지만 역사라는 현실 속에 엄연히 실재했던 사랑의 면면을. 환상이든 현실이든 사랑은 비밀과 함께하여 더욱 풍성해진다. 그리고 비밀들이 애절할수록 숲은 아름답다.”

코미디 프로그램 속 코너 봉숭아 학당에서 비너스회의 회원들은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한 사람씩 제명을 당한다. 다른 회원의 결혼식에서 단체사진을 찍을 때 신부를 밀쳐 내고 신랑의 팔짱을 끼는 순간, 지하철 빈자리가 나자 마주 오던 승객 여섯 명의 정수리를 내리찍고 가방부터 던지는 순간, “제명이 됐어요!”라는 외침이 명쾌하게 울려 퍼진다. 반면 장미회 제명 사건의 장미회 회원들은 현실적이다. 그리고 속물근성이 투철하다. 비너스회 회장은 회원이 쫓겨날 때마다 그 과정과 이유를 소상히 보고해 주지만, 장미회에서 제명의 이유는 매우 단순하고 분명하다. 너희 남편 구조조정 당했다며? 최고 자리에 오르기 직전이었는데 안타깝다. 그런데 이제 어쩌니. 여기 계속 살 수 있어? 차도 경차로 바꿔야 하는 거 아냐? , 우리랑 급이 맞아야 골프도 같이 치고 그러지. 이 모든 말이 가볍게 생략된 채 주인공은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장미회 회원들은 돈 쓰는 시간이 훨씬 재미있었으므로 다른 것을 할 기회가 없었다. 돈 쓰는 것보다 더 쉽고 짜릿하며 자기 존재를 명백히 인정받고 또 여왕 대접까지 받는 일은 없었다. 그런 한편에서 자기들도 가끔 자신들을 가리켜 비학구파라며 낄낄대곤 했다. 자성의 끝에 이르는 결론은 으레 ‘뒤웅박 팔자’라는 옛말과 ‘어쨌든 내 복’이라는 자기 합리화였다.
―「장미회 제명 사건」에서

세태를 짚는 이청해의 시선은 섬세하다. 등단 이래 사소한 것에 스민 기미나 징후에서 삶의 본질을 드러낸다(문학평론가 김미현) 평을 받아 온 작가 이청해는 이번 소설집에서 삶의 시련과 위기에 봉착한 주인공들을 통해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그려 보인다. 그는 삶의 순간에서 맞닥뜨리는 상처를 섣불리 봉합하려 애쓰지 않는다. 인간 존재의 결함을 비난하거나 탓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품어 안으며 우리네 삶의 조바심을 풀어 준다. 삶의 화해로운 조율을 추구하는 이청해의 작품 세계에 사실 제명이란 없는 셈이다.

민음사 편집부 김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