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커피숍 간판, 앨범 재킷, 영화나 애니메이션 장면, 패션 디자인, 가전제품 광고 등의 대중문화 속에는 여러 익숙한 거장들의 명화가 숨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미술관에 걸려 있는 원본보다 그것이 대중문화로 재탄생한 이미지에 더 익숙하다. 라파엘로의 「시스틴 마돈나」 속 아기 천사들은 크리스마스 카드에서부터 분유통, 우산, 커피숍 로고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에서 계속 볼 수 있다. 하지만 라파엘로만 아기 천사를 그린 것도 아닌데, 왜 그의 아기 천사들만 압도적으로 대중적 인기를 끌까? 20세기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엑소시스트」나 「검은 집」 등 왜 유난히 공포영화 장면이나 포스터에 응용되는 것일까? 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음반 커버에는 19세기 초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이 단골로 등장할까?

영화 「엑소시스트」 포스터 마그리트, 「빛의 제국」 「겨울 나그네」 음반 커버들

라파엘로의 천사는 자연스러운 우아함인 ‘그라치에’를 가장 잘 달성한 그림으로 시대를 초월해 즉각적이고 물리지 않는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고, 마그리트의 그림은 20세기 초 데페이즈망 기법의 일환으로 서로 다른 엉뚱한 대상을 결합해 충격적인 그로테스크함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며, 자연 풍경 자체에 인간의 주관적인 감정을 투영했던 북유럽 낭만주의 풍경화의 특징을 지닌 프리드리히의 고독하고 황량한 그림은 「겨울 나그네」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속 명화의 재탄생에서는 이처럼 원작의 함의가 고스란히 스며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원작의 함의를 무시하고 새롭게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색조를 가장 중요시했던 미국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작품 제목들은 모두 색조와 관련되어 있다. 그중 「회색과 검정의 배열」이라는 제목이 붙은 화가의 어머니의 초상화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보라색의 단색으로 색조가 변형되어 미국 최초의 어머니날 기념우표로 제작되었다. “예술은 오로지 미적 감각에 어필해야 하며 그것이 헌신이니 사랑이니 하는 상관없는 감정들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던 휘슬러에게 이는 얼마나 어이없는 일일까.

「회색과 검정의 배열: 화가 어머니의 초상」과 미국 어머니날 기념우표

피트 몬드리안의 원색 추상화의 경우, 영화 「달콤살벌한 연인」에서 몬드리안이 누구인지 모르는 여주인공이 심지어 그의 그림을 거실에 거꾸로 걸어놓은 채 좋아한다. 뿐만 아니라 이 색채의 배합은 너무도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 가구 디자인, 담뱃갑, 의상에까지 응용된다. 하지만 이 그림들은 사실, 신지학에 심취한 몬드리안이 자연의 근본에 다다르기 위해 모든 것을 추상화한 엄격한 수행의 산물이며 인간 영혼의 조화와 균형을 나타낸다. 그는 아마도 현대인이 자신의 작품의 영적 측면은 간과한 채 즐기는 것에 통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현대 대중문화 속 명화의 재탄생은 때로는 원작의 함의를 거스르면서, 때로는 그것을 이어받고 창의적으로 발전시키면서, 때로는 전혀 다른 제3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계속 진행된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미술관에 걸려 있는 원본보다 그것이 대중문화로 재탄생한 이미지에 더 익숙하다. 미술 작품이 단순히 물리적으로 존재해서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에게 인식됨으로써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면, 대중문화 속에 재현된 이미지는 그 인식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서 원본의가치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이 언급한 시뮬라크르의 선행이라고 보아야 할까.

민음사 편집부 최화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