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시작하면서 ‘그/그녀가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혹은 ‘내가 만일 그/그녀였으면 이랬을 텐데.’라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잉에보르크 바흐만의 『말리나』는 현대의 표상과 과거의 잔상이 교차하는 도시 빈을 무대로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두 인격을 통해 삶과 사랑에 대한 여성성과 남성성을 비교한 소설이다. 새로운 사랑을 만나 자신을 모두 바치고자 하는 ‘나’와,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말리나’. 한 명의 인격 속에 공존하는 이 두 주인공은 언제나 경계 위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으며 가장 상처 받지 않을 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오늘의 현대인을 투영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나 : 내가 널 원하는 한은 아무 모순도 없어. 난 내가 아니라 널 원해. 어떻게 생각해?
말리나 : 너에게는 가장 위험한 모험이 되겠지. 하지만 벌써 시작되어 버렸어.

언어 철학을 전공한 바흐만은 자신에게 부여된 ‘여성’이라는 단어의 사회적 경계에 대해서 평생을 두고 회의해 온 작가로, 사회가 부여한 자신과 본연의 자신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힘든 현대인의 모습을 작품으로 그려 왔다. 47세라는 아쉬운 나이에 요절한 세계적인 지성. 자아와 타자, 과거와 현재, 남성과 여성이라는 경계선상에 놓인 불안과 고독 가운데 오로지 ‘행복’할 수 있을 것만을 꿈꾼 그녀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안고 있는 불안과 고독을 조명하면서 ‘행복’하기 위해 나아갈 방향을 사고하게 한다.
『말리나』가 보여 주는 의미심장한 결말을 통해, 모든 경계를 부수는 ‘사랑’이 시작된 순간, 이미 어떤 질문도 무의미하다는 답과 함께…….

민음사 편집부 양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