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내게 다른 인생이 존재한다면?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에는 두 천재 물리학자가 등장하여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의 쟁점을 둘러싼 그들의 팽팽한 주장은 상대를 향한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사실 제바스티안과 오스카는 대학 시절 첫눈에 서로에게 끌려 함께 물리학을 공부하며 둘만의 세계를 공고히 만들어 가던 사이였다. 하지만 제바스티안이 오스카에게서 열등감을 느낀 이후 둘은 어긋나 버리고, 제바스티안은 마이케라는 여자와 결혼한다. 그때부터 둘은 인생에서뿐만 아니라 양자 물리학 연구에서도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오스카가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다중 세계 해석을 제반스티안은 이렇게 지지한다.

“최소 입자들은 그것들이 관찰되는 순간 이전에는,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다수의 서로 겹쳐지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양자 역학이 발견해 낸 이래로, 유니버스가 아니라 멀티버스라는 아이디어는 그저 철학적 편리를 위한 임시변통이 아니라 일관적 해석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용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개별 세계 안에서 얼마나 심하게 인과 메커니즘에 지배되는지는 아무 상관도 없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항상 새로운 우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한은요. 이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결정을 내릴 자유를 누립니다.”

하지만 세계의 모든 가능성을 인정하며 여러 우주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제바스티안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마이케와 결혼한 삶과 오스카와 함께하는 삶을 동시에 영위하는 것이다. 그는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지만, 그것을 돌이킬 수 없기에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으로 그 고통을 극복하고자 한다. 오스카는 그런 제바스티안을 비난한다. “단 하나의 우주. 도주 가능성이 없는 우주. 너는 그걸 연구해야 해. 그 속에서 살아야 하고. 그리고 너의 결정들에 책임을 져야 해.”

제바스티안과 오스카의 갈등은 소설에 시종일관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우주의 해석에 대한 그들의 토론이 물리학 담론에 그치지 않고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한다. 제바스티안의 주장대로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선택으로부터 비롯된 결과물의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쩌면 평행 우주에 대한 상상은 우리 욕망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민음사 편집부 박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