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작이 있다. 그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그렇기에 열정적이면서도 순진한 젊은이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포탄을 맞고 두 몸이 반으로 찢어지는 참사를 당한다. 한쪽 몸에는 오로지 ‘악’만이, 다른 한쪽 몸에는 오로지 ‘선’만이 남은 자작(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너무나 ‘비인간적인’ 악행을 저지르는 반쪼가리 자작도, 너무나 ‘비인간적인’ 선행을 베푸는 반쪼가리 자작도 환영받지 못한다.

한 남작이 있다. 그는 열두 살이 되던 날 나무로 올라가 일생을 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원치 않는 달팽이 요리를 먹으라고 계속 강요하는 아버지에 반발해 나무 위로 올라간 것인데, 실상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그는 권위적이고 시대에 뒤진 아버지로 상징되는 귀족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기사가 있다. 그에게는 손도 팔도, 발도 다리도, 머리조차 없지만 오로지 ‘존재한다’는 이념과 열망만으로 하얀 갑옷 속에 머문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존재하는 구르둘루, 존재하지만 허상을 좇는 여인, 존재를 증명하려 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청년들이 머문다.

이들은 이탈로 칼비노 ‘우리의 선조들’ 3부작,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칼비노는 십 년에 걸쳐 쓴 이 작품들을 한 권으로 묶어 ‘우리의 선조들’이라는 제목을 붙여 1960년에 발표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과거 어느 시대,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엮어 가는 사건들은 동화처럼 환상적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우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과거 속 인물과 사건 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의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오로지 악하거나 오로지 선하기만 한 반쪽 ‘자작들’을 통해 이탈로 칼비노는 냉정하고 잔혹한 현대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분열된 채 살아가는 인간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그만의 동화적 상상력으로 그려 냈다. 열두 살에 아버지와의 불화로 나무 위로 올라가 일생을 그곳에서 보내기로 결정한 ‘남작’은 인간들과 부대끼는 삶을 피해 나무 위에 올라감으로써 진실을 회피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높은 곳에서 인간을 괴롭히는 문제들에 대해 더 명확한 해결점과 전망을 찾는다. 그리고 갑옷으로만 존재하는 ‘기사’ 아질울포와 그 주위에서 함께 모험을 펼쳐나가는 젊은이들은 육체와 의식, 행동과 의지가 균형을 이룬 완전한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묻는다.

너무도 격동적으로 흘러가는 이 불안정한 세상에서 방황하고 불안해하는 현대인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이탈로 칼비노는 이에 대한 대답을 몇백 년 전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동화 같은 환상 속에서, 우리의 선조들을 통해서 찾는다.
우리도 칼비노와 함께 잠깐,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민음사 편집부 박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