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의미』당신과 내가 한없이 가까워지는 ‘느낌’의 세계, 그 매혹적인 세계로의 다정한 초대

 

 

머리카락이 자라는 순간을 본 적이 있는가? 혹은, 시계의 시침이 움직이는 순간을 본 적이 있는가? 여기, 그 ‘순간’을 그리는 시인이 있다. 김행숙의 세 번째 시집 『타인의 의미』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그 순간의 느낌, 우리를 관통하는 그 모든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순간’을 노래한다.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 (…)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 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 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 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포옹」)
‘검정’에 가까울 만큼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다가가도 그 ‘틈’은 남는다. 타인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그 틈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다가간다. 이렇게 그녀는 하나에 가까운, 하지만 하나는 아닌 거리까지 좁혀진 순간의 감각을 그려 낸다.

김행숙 시인은 문단에 소문난 ‘길치’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길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이 매우 무디어 길을 바르게 인식하거나 찾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그녀는 길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이 무딘 것이 아니라, 반대로 매우 민감하다. “가로수와 가로수의 간격은 법으로 정해져 있을까, 발과 발을 모으고 서서/ 뾰족한 자세로 그런 생각을 해/ 가로수와 가로수의 사이는 다정한 곳일까/ 무서운 곳일까/ 달리는 자동차와 달리는 자동차의 사이에 대해 생각하고/ 치여 죽은 것들과/ 죽어 가는 것들로부터 너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가로수의 길」) 길을 걸으며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 그녀가 길치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닐까.
“생물학적 나이 말고, 시인도 시 안에서 시간을 사는 것 같아요. 시 안에선 조금 더 오래된 시간을 발굴해 낼 수 있도록, 아주 오래된 나이를 먹고 싶어요.” 그녀의 말처럼 시 간(詩間)의 시간(時間)과 공간(空間), 그 사이의 인간(人間), 그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그녀의 시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민음사 편집부 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