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린 머리다. (……) 나는 일주일 동안 목이 잘린 쉰 명 중 한 명이며, 오늘 일곱 번째로 목이 잘린 사람이며, 최근 세 시간 십오 분 동안 유일하게 목이 잘린 사람이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의지와 운명』은 멕시코 게레로 주 해안가에서 파도에 흔들리는 잘린 머리 이야기로 시작한다. ‘잘린 머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라 하면 기이한 환상 동화 같은 인상을 주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흘러나오는 뇌수와 너덜너덜 풀린 목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로 독자에게 태평양 해안의 모래가 입에서 씹히는 듯한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푸엔테스는 이 작품을 발표하고 나서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게레로 주에서 목이 잘려 죽은 사람들이 발견되기 전에 나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이 허구를 능가합니다.”

이 소설이 발표되고 나서 곧바로 그 사실이 증명되었다. 소설 속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멕시코 게레로 주에서 잘린 머리가 담긴 비닐봉지가 무려 아홉 개나 발견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푸엔테스가 이 사건을 예언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은 작가일 뿐 예언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멕시코의 현실이 작가가 상상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참혹했던 경험들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현실에 있을 법한 허구”를 그린 게 소설이라고 배웠지만, 실제로 현실에서는 우리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천연덕스럽게 벌어진다.

주인공 여호수아가 교도소에서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도 그와 비슷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장기 밀매 사범들에게 납치되어 강제로 신장이 적출된 한 소년은, 자신을 납치한 범죄자들이 도망쳐 숨어 버리자 신장이 팔렸을 미국으로 넘어간다. 국경을 넘은 그는 병원으로 숨어들어 가 다른 사람들의 신장이 잠들어 있는 병들을 몽둥이로 깨부수고는 바닥에 널린 신장들로 요리를 해서 토르티야에 싸 먹는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이 사건도 어쩐지 해외토픽이나 엽기 뉴스 같은 데서 들어 본 이야기인 것만 같다.

“현실이 허구를 능가한다.”라는 표현은 프랑스 미술 운동이었던 누보레알리슴(신사실주의)의 표어였다. 프랑스 미술 운동과 멕시코 현대 소설가의 현실 인식이나 문제의식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 둘 모두가 강조한 진실은 무척 흥미롭다. ‘현실’이 우리 상상보다 더 집요하고 험난하고 역동적이라는 사실을 예술을 통해 되돌아보게 된다는 점 말이다.
라틴아메리카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이야기도 새겨들을 만하다.

“중남미 예술가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그들이 당면한 문제는 창조가 아니라 중남미 현실을 믿게 만드는 일이었다. (……) 이들 역시 현실이 허구를 능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마르케스, 『환상과 예술적 창조』)

민음사 편집부 윤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