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되었으니까 지아비를 사랑합니까. 또는 사랑하니까 아내가 됩니까.”
이것도 선형에게는 처음 듣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도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마찬가지 아닙니까.”

형식과 선형은 결혼하기로 한 사이다. 그런데 서로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하기로 한 것이 아니라, 선형의 아버지가 ‘형식이 딸의 신랑감으로 적당하겠다.’ 하여 약혼한 것이다. 조선 시대까지의 관습에 비추어 보면 부모가 자식의 결혼을 결정하는 것이 당연했다. 소위 ‘신여성’이라는 선형마저도 자신의 이상적 신랑감에 한참 모자라 보이는 형식이지만 아버지가 정해 줬으니 어쩔 수 없다고 수긍해 버린다. 그런데 ‘깨었다.’ 하는 형식은 여기에 반기를 든다. 선형에게 “나를 사랑해서 결혼하느냐?” 하고 물은 것이다. 그는 사랑 없이 부모의 뜻대로 맺어진 결혼이 불행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결혼하니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결혼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반면 선형은 사랑과 결혼의 상관관계를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으므로 “마찬가지 아니냐.” 하고 되묻는다.

1917년 《매일신보》 연재 당시 젊은이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던 『무정』은 특히 연애에 대한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해서 화제가 됐다. “……알 수 없는 것은 가슴속에 이상한 불길이 일어남이니, 이는 청년 남녀가 가까이 접할 때에 마치 음전과 양전이 가까워지기가 무섭게 서로 감응하여 불꽃을 날리는 것과 같이 면치 못할 일이며, 하늘이 만물을 내실 때에 정한 일이라…….” 여자를 보고 항상 ‘여동생이다.’ 하고 생각하려는 형식도 아름다운 선형을 보고 몸이 들끓어 오르는 것을 주체하지 못한다. 게다가 『무정』에는 근대 최초로 동성애적인 코드까지 등장한다. “……한번은 영채와 월화가 연회에서 늦게 돌아와 한자리에서 잘 때에 영채가 자면서 월화를 꼭 껴안으며 월화의 입을 맞추는 것을 보고 월화는 혼자 웃으며 ‘아아, 너도 깨었구나―. 네 앞에 설움과 고생이 있겠구나.’…….” 정신적, 육체적 욕망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진 그들을 낱낱이 보여 주는 『무정』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봐도 자못 충격적인 작품이다.

한 사람에 대한 정절이 사랑의 만능 공식처럼 인식됐던 시대에, 두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형식이나, 정조를 지키지 못한 여자에게도 ‘제 뜻대로’ 살아갈 자유가 있음을 배워 가는 영채는 엄청나게 획기적인 캐릭터였다. 춘원 이광수는 『무정』을 통해 오로지 대의만을 강조하는 구시대적 관습에서 벗어나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개인’의 가치를 보여 준다. 개인의 욕망에 인색했던 ‘무정’한 시대에 작별을 고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자신과 세상을 위해 스스로 꿈을 펼쳐 나가는 ‘유정’한 시대의 막을 연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정』 속 인물들이 열고자 했던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굳세게 한’ 세상에 살고 있을까? “그렇다.” 하고 고개를 쉽게 끄덕이지 못한다는 점에서 『무정』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는다.

민음사 편집부 남은경

이광수 | 엮음 정영훈
출간일 2010년 7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