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이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하려고 할 경우에만 그림자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할까? 자신의 그림자를 자각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바로 견딜 수 없이 쓸쓸하고 외로운 순간일 것이다. 인간은 쓸쓸하고 외로울 때, 이 세상에 오직 혼자뿐이라고 느낄 때, 비로소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본다.
한국 문학에서 다른 무엇과도 섞일 수 없는 개성적인 표정을 지닌 황정은의 첫 번째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는 그저 ‘황정은 특유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환상과 현실이 기묘하게 어우러진 독특하고 아름다운 연애소설로, 폭력적인 이 세계에서 그림자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쓸쓸하고 처연한 삶을 이야기한다.
황정은은 낯을 심하게 가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별명이 ‘넋녀’였을 만큼 공상에 잠기길 좋아했다. 그를 가르친 소설가 이순원은 그녀를 보고 ‘저걸 어떻게 소설가로 만들까’가 아니라 ‘저걸 어떻게 사람을 만들까’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현실 세계로 이끈 것이 바로 소설이다. 그녀는 “안에서 바깥을 응시하고 있다가, 이제 손잡는 법을 배워 가는 중인 것 같아요. 짧은 순간이라도 사람 사이에 연대가 발생할 수 있고, 굉장히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라고 밝혔다.
“이 소설은 두 남녀가 어두운 섬에서 나루터를 향해 걸어가는 것으로 끝나요. 그 장면을 쓰면서 ‘이 두 사람이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만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어떤 바람을 갖고 소설을 쓴 건 처음이에요. 어떻게 보면 큰 변화죠.” 작가의 바람대로 어둠 속으로 걸어간 두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기를, 또 다른 그림자, 바로 당신을 만나기를.

민음사 편집부 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