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력을 손에 쥔 군주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을까? 적어도 조선의 왕들은 그랬다. 성군 세종도 허물을 감추지 못했던 것, 폭군 연산군조차 함부로 어찌할 수 없었던 것, 바로 조선왕조실록이다.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의 기록’일 뿐이다.”라는 연산군의 말처럼, 실록은 특히 유일한 절대자인 왕의 행적을 매우 엄격하고 철저하게 기록했다.

왕이 아니라 누구라도 자신의 부끄러운 일면은 남기고 싶지 않은 게 사람 마음일 테다. 왕 스스로는 고칠 수도 없고 심지어 봐서도 안 되는 실록은 그래서 이런 에피소드를 남기기도 했다. 한번은 태종이 사냥 중에 말에서 떨어진 일이 있었다. 이 일이 멋쩍었는지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라고 지시하였는데, 태종실록에는 태종이 그렇게 지시했다는 말까지 실려 있다. 현종은 신하들과 논쟁을 벌이다가 “사관은 지금 한 말들을 기록하지 말라.”라고 명을 내렸지만 사관은 이를 거부하고 현종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과 명을 거부하자 심하게 화를 냈다는 것까지 낱낱이 기록해 두었다. 세종이 세자빈 봉씨를 폐서인하면서 봉씨가 궁녀와 동성애를 즐긴 사실은 부끄러워 공식 문서에 기재할 수 없으니 다른 죄목들만 거론하여 폐출하라고 명령한 내용도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아 있다.

업적과 허물을 가리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기록한 실록은 한 나라의 최고 리더가 정사에 임하는 마음가짐, 정세를 판단하고 현안에 대해 결단을 내리며 조정을 설득하여 일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 나아가 그 노력의 성공과 실패 여부까지 생생히 펼쳐 놓는다. 수신부터 치세까지, 리더십의 정수가 담긴 셈이다. 『군주의 조건』은 꼼꼼한 실록 고증을 바탕으로 조선왕조를 이끈 왕들의 결단과 행적을 살펴, 훌륭한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 서른세 가지를 길어 낸다. 리더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부터 인재를 쓰는 법, 일을 추진하는 법, 후계를 세워 조직의 미래를 탄탄하게 닦는 법까지, 조직을 이끄는 모든 이들에게 금과옥조가 될 만하다. 장차 리더가 되고자 하는 사람, 리더의 자리에서 매일을 고투하는 사람에게 이 책이 진정한 리더의 가치를 일깨우는 소중한 지침이 되길 바란다.

민음사 편집부 김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