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공부를 잘하는 비법

 

 

인터뷰에서 들은 이야기
 아마추어로 연결되는 이야기를 보내드렸던 지난 레터에 이런 반응을 얻었어요. “대부분의 분야에 우리는 아마추어이나 그 분야에 스스로 참여할 때 아마추어가 된다.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는 기꺼이 아마추어가 되는 열정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꺼이 아마추어가 되는 열정이라니, 이처럼 소중한 열정이 나에게 언제 발현되는지 생각해 보게 돼요. 언제 새로운 공부에 참여했는지 말이에요.
한편: 가방 속에 늘 책이 있다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닌가요?
김선기 연구자: 가방은 없고 펜 한 자루 꽂고 다니는데요. 별로 안 읽는다고 말하기가 부끄럽지만, 저는 활자중독과 완전 거리가 멀어요. 사실 작업상에 필요한 것 외에 거의 안 읽어요. 낸시 프레이저를 읽어야 한다면 세미나 커리큘럼, 그러니까 일로 만들어서 읽게 만드는 식이죠.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큐레이션 되는 글을 따라가면서 읽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페이지 이탈이 빠른 편이네요.
제일 많이 보는 글은 DB 검색을 통해 읽는 논문입니다. 한국어는 KCI나 영문은 구글스콜라를 통해 인용 정보를 타고 타고 읽는 게 좋은 글을 만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KCI가 좋은 건 인용 정보가 다 나온다는 거죠. 지금 읽고 있는 글을 인용한 글을 보여 주니까요. 제가 되게 좋아하는 글을 인용한 글을 따라가다 보면, 더 최근에 누가 또 좋은 글을 썼는지 만날 수 있어요. 좋은 대부분의 글이 영문이지만요.
사상가의 계보를 찬찬히 따라가거나, 학회지를 꾸준히 구독하며 분야 톱 저널을 계속 읽어 나가는 방식을 권장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특히 과거에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수도 있죠. 그처럼 이 분야에서 누가 잘 나가는지를 체크하는 식으로 공부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우연히 접한 좋은 글을 인용한 사람들의 글을 따라가다가 나의 주제에 도움이 되는 글을 발견한 적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아요.
— 『공부하는 일』,
문화연구자 김선기 인터뷰 중에서
『공부하는 일』은 인문잡지 한편이 함께 일한 저자, 편집자를 만나 공부를 둘러싼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집인데요. 어릴 때 감명 깊게 읽은 책에서 지금 연구를 추동하는 힘, 세상과 소통하는 글쓰기까지 실전편 공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왜인지 공부법이라고 하면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책이 떠오르고 마는데, 여섯 사람의 인터뷰이는 저마다 공부에 다르게 접근해요.
한편: 책이나 논문뿐 아니라 예술 작품들도 많이 보시겠죠. 어떤 통로로 접하는지, 또 즐겨 보는 콘텐츠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남수빈 연구자: 콘텐츠라는 말이 보고 듣는 것들을 널리 포괄한다면, 제가 주로 접하는 콘텐츠는 여전히 동시대예술이에요. 대학원 입학 이후로는 작은 공간들에서 하는 전시까지는 찾지 못하고 있어서, 최근 늘어난 인스타그램의 전시 후기 계정이나 주변 사람들이 올리는 전시 사진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관람하고 있어요. 공연예술은 간접 관람에 한계가 있어서 현대음악 연주 단체인 TIMF 앙상블의 연주회나 동시대 공연예술을 소개하는 옵/신(OB/SCENE) 페스티벌 등은 재정이 허락하는 한 찾아다닙니다.
기나긴 가사노동 시간에는 팟캐스트를 자주 들어요. 정치학자 유혜영 교수가 현대 정치·경제 분야의 최신 연구를 소개하는 ‘아메리카노’, 긴 칼럼을 읽어 주는 《가디언》의 ‘The Audio Long Read’와 《뉴욕타임스》의 ‘The Daily’, 동시대음악을 소개하는 ‘Relevant Tones’, 현대미술 소식을 전하는 ‘The Week in Art’와 이플럭스 팟캐스트 등. 영어 팟캐스트를 들으면 영어 논문을 읽는 일에 도움이 되어서요. 그 외에는 트위터에서 국내외 언론과 현대예술 관련 국내외 기관과 매체를 팔로우 합니다. 지금은 연구자로서 기초를 닦으며 연구사를 막 파악하는 단계라, 전공 관련 국내외 문헌을 적극적으로 쫓아가지는 못하고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조사하는 정도예요.
한편: 지금은 어떻게 공부하고 있나요? 혼자 공부하다가 무엇이든 방법을 의식했던 순간이 기억나시나요?
남수빈 연구자: 대학 이후의 공부에서는 수용한 지식을 자신의 언어로 구성하여 짜임새를 갖춘 글로 조직해 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기 때문에, 읽은 것을 요약 정리하는 일이 중요했어요. 평소 이미지로 사고하고 기억하는 편이라, 도식을 그려 보고 구조를 이해할 때도 많아서 도식화도 많이 사용하고요. 난해한 철학 원전을 많이 접하게 된 이후부터는 낯선 개념들을 우선 숙지하려 하는데요. 맥락에서 떨어진 정의 설명만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체적인 문맥 속에 두고 여러 번 읽으면서 의미를 파악합니다. 누구나 할 법한 뻔한 이야기겠지만 그 이상 특별한 방법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한편: 지난 북토크 자리에서 ‘일은 일이다’라고 하신 것이 기억에 남는데요. 공부와 일을 연결 짓지 않으시나요?
남수빈 연구자: 서로 주고받는 요소가 있지만, 공부와 일을 연결하는 질문에 사실은 이질감을 느껴요. 그 때문에 인터뷰를 망설이기도 했고요. 저에게 공부는 나의 질문을 해명하기 위한 것이고, 일은 고용주에게 용역과 재화를 제공한 뒤 약속된 대가를 받는 과정이기 때문이에요.
창작이나 순수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저도 쓸모 있는 부품이 되는 것, 기존하는 체제를 유지시키는 톱니바퀴가 된다는 데에 이물감이 항상 있어요. 어쨌든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살 수밖에 없는데, 이 제도에 착취당하지 않으면서 어떤 태도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어요.
조금 강하게 말하자면, 저는 직업을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간주하고 사명감이나 소명의식,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 자본주의가 체제 유지를 위해 활용하는 환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환상에 이용당하지도, 스스로를 속이지도 않고 자율적으로 나를 지킬 수 있는 태도가 뭘까 고민하다가 제가 생각한 건 나의 노동으로 사회에
기여한다는 공동체 의식이었어요.
공항이나 미술관의 화장실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노동으로 늘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잖아요. 이 쾌적함은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만든 것일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함으로써 내가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 일에 대해 제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태도 같아요. 내 노동의 결과물을 그 화장실의 빛나는 타일에 견줄 수 있는가,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가 자문하고, 그것을 최소한의 직업윤리로 삼으려고 해요. 이 시민적 윤리가 어떠한 소명의식 없이도 성립할 수 있다고요.
— 『공부하는 일』,
미학 연구자 남수빈 인터뷰 중에서
읽은 것을 요약 정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남수빈 연구자의 답변을 계속 생각하게 돼요. 누구나 할 법한 말이라 하셨지만, 공부란 읽고 요약하고 정리하는 일, 그렇게 정리한 것을 바탕으로 나의 질문을 수정하고 답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거든요.
자기만의 질문을 출제범위라고 불러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만의 공부법’을 묻는 질문에 조무원 연구자가 시험공부와 연구를 구분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출제범위를 직접 넓히고 좁혀 가는 공부라 생각하면 역시 시험공부보다 더 어렵지만, 더 기대가 되지요.
한편: 나만의 공부법을 들어 보고 싶어요. 혼자 공부하다가 뭔가 방법을 의식했던 순간이 기억나나요?
조무원 연구자: 한국 사회가 방법에 중독된 것 같다는 의견에서 시작하고 싶네요. 어떤 구체적인 방법을 쉽게 찾으려는 경향은 오히려 많은 중요한 과정을 누락시키지 않나 생각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가장 좋은 공부법은 자기만의 공부법을 찾는 과정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알아서 하라는 말은 아니고요. 방법론이란 일종의 메타적인 인지를 갖는 것인데, 공부가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 일이라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어떻게 인지하느냐가 공부법에 접근하는 가장 중요한 길 아닐까요.
비유를 하나 들어 보자면 저는 공부가 어떤 지식의 방에 들어가서 그것을 단순히 탐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공부는 어떤 방에 있는 지식을 가지고 와서 다른 방으로 옮겨 재배치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내가 지금 공부하는 부분이 전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계속 의식하려고 하는 편이고요.
한편: 공부에서 ‘전체’라면 어떤 의미인가요?
조무원 연구자: 시험공부에 빗대자면 출제범위죠. 어렸을 때부터 범위 전체를 다 보고 가는 방식으로 공부했던 기억이에요. 시험을 잘 봐야지 하는 마음도 있지만 전체를 파악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이 명확한 게 좋고, 안 본 거 없이 들어간다. 
그런데 내가 전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주는 색다른 재미를 가지고 하는 게 연구잖아요. 연구에서 전체란 나의 연구 질문 전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주제는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겠죠. 구체적으로 논문을 고려하는 것이기도 한데요. 작은 주제라면 논문 하나, 큰 주제는 여러 논문들이 생길 수도 있겠죠.
— 『공부하는 일』,
정치학 연구자 조무원 인터뷰 중에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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