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시리즈 전국 동네서점 북토크 후기
8월 초의 편지 말미에 《한편》 편집부가 ‘탐구’ 북토크로 뜨거운 여름을 보낼 예정이라 적었는데요. 사실 이 말은 여러분에게 보내는 알림이면서 스스로 의지를 굳히는 주문이었어요. 지난 한 달간 탐구 시리즈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을 편집한 바로 저 덕질 편집자와 『철학책 독서 모임』 담당 리트리버 편집자님은 따로 또 같이 전국 6개 도시 10곳의 서점에서 북토크를 진행했답니다. 오늘 레터로 북토크 후기를 전해 드릴게요.(길이 주의)
먼저 일정을 마친 리트리버 편집자님, 기분이 어떠신가요? ‘전미 투어’의 한국 버전은 편집자님의 오랜 꿈! 꿈을 현실로 이루신 느낌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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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진다! 최근 재미있게 읽은 책 『굿모닝 해빗』의 묘사가 떠오르는데요. ‘기쁨과 함께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에요. 북토크를 마치고 돌아와 서울의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아직 떠오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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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책방 소리소문, @대구 여행자의 책 북토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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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리버) =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준비한 전국 동네서점 북토크. 『철학책 독서 모임』은 서울에서 구미, 부산, 대구까지,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은 서울, 속초, 제주, 다시 서울, 대구, 포항을 다녀와 부산 북토크만 남겨 두고 있잖아요. 이러한 여정에서 첫 번째로 필요한 준비물은 무엇이었나요?
(덕질) = 역시 체력 아닐까요. 여러 실물을 이고 지고 다닐 힘을 포함해서요. 지난여름 서울국제도서전 때 쓴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견본책을 보여 드렸는데 반응이 좋았답니다. 《한겨레》에 성황리에 연재할 때 스크랩한 지면을 꺼내자 다들 반짝이는 눈으로 봐 주셨어요. 2년을 묵힌 보람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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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달챙이책방에서 다짜고짜 스크랩한 지면을 꺼낸 덕질 편집자,
@대구 여행자의 책에서 책과 와인을 함께한 리트리버 편집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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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리버) = 도서전 하니까 대구 여행자의 책 『철학책 독서 모임』 북토크에서 만난 독자님이 떠올라요. 서점에 들어서는 눈빛이 왜인지 낯익었는데, 바로 도서전 ‘우리끼리 북토크’에서 《한편》 편집자들에게 질문했던 분인 거예요! 《한편》과 ‘탐구’ 시리즈의 토크, 세미나 행사를 계속해서 함께해주시는 독자님을 만나면 공부가 축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방적인 강연이 아니라 대화를 주고받는 독서 모임을 실현한다는 게 이번 투어의 목표였잖아요. 이 독자님은 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생생하게 전해 주셨습니다. 『철학책 독서 모임』의 첫 번째 책 『나와 타자들』은 ‘만남 구역’이라는 핵심 개념을 내놓는데요. 만남 구역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차이와 함께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독자님은 대구에 있는 실제 만남 구역인 카페 ‘대화의장’을 소개했어요. 이곳에서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면서 대화한 끝에, 이해할 수 없었던 노인 세대에 다가가게 되었다는 경험과 함께요. 이 이야기를 맞은편에 앉아서 듣던 여행자의 책 단골손님 또한 지긋한 나이의 신사셨구요.
(덕질) = 낯선 이들과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저는 서울 책방오늘,에서 열린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첫 번째 북토크를 오래 곱씹게 돼요. 이번 전국 투어의 콘셉트는 강의보다는 독자의 이야기를 더 듣기였잖아요. 일상에서 잘 하지 않는 나만의 과학 이야기를 처음 꺼내는 자리가 되도록 북토크 제목을 ‘과학과 내 삶을 연결하는 방법’으로 정하고, 사회자로 나서서 앞에 있는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어요.
‘과학과 지독한 애증 관계를 겪은 과학고 출신 과학기술학자’인 저자 임소연 교수님과 ‘과학과 연을 맺을 기회도 없었던 문과 출신 과학콘텐츠 업계 종사자’인 제가 날것의 이야기를 꺼내면, 청중 각자가 나와 과학의 연관 지점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아름다운 이상을 그렸는데요. 어떤 기대를 품든 실제 현장 분위기는 다를 수 있으니, 설렘보다 불안이 큰 채로 책방을 향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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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북토크 직전 덕질 편집자가 민음북클럽에 올린 초조 맥스의 글,
무플 지대인 그곳에 ‘모든 것이 콘텐츠’ 마케터님이 남긴 위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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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 그리고 이날 현장은…… 그야말로 대성공! 과학과 깊이 연루된 분도, ‘탐구’로 가까스로 접속한 분도 각자의 소중한 이야기를 공유해 주셨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나의 과학 이야기를 해 주신 책방 매니저님에게도 감사했고요. 이런 북토크에서 진솔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책방이라는 공간의 힘, 동네서점이 동네 단골과 맺은 끈끈한 연 덕분이겠지요.(‘동네서점…… 멋있다!’) 리트리버 편집자님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더 있죠?
(리트리버) = 집도 없고 절도 없는, 아니 차가 없는 편집자는 여행가방을 지고 ‘투어’를 떠났죠. 서울역에서 ITX-새마을을 타고 떠날 때, 또 구미역에서 구포역으로 낙동강을 따라 이동할 때 우리 산천을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구미에 연고가 있는 『철학책 독서 모임』 저자 박동수 편집장님은 금리단길을 걸으며 연신 “나때는 여기가 이렇지 않았는데……”라고 되뇌었는데요. 처음 방문한 삼일문고는 규모도, 큐레이션도 역대급인 서점이라서 더위와 긴장이 날아갔습니다. 구미에서 오간 뜨거운 대화에 관해 저자의 페이스북 후기를 인용해 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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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은 소백산맥을 넘어본 적 없는 중년 이상의 경상도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의견에 열려 있지 않은지를 이야기해 주시기도 했고, 조금 더 젊은 구미 토박이 분은 소백산맥을 넘지 않아도 진보적 생각은 가능하지만 그런 입장을 아주 소수의 사람들과만 공유할 수 있을 뿐임을 말해 주시기도 했고 다른 어떤 분은 그런 분위기 때문에 가면을 쓰고 산다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내가 수도권과 경주를 오가며 느꼈던 경험과 맞닿아 있었다. 이는 편집자님이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등을 떠밀지 않았더라면 결코 할 수 없었을 내면의 이야기로, 『철학책 독서 모임』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지만 내가 지향하는 모든 사상적 선택의 밑바탕에 놓여 있는 원경험 중 하나, 내가 풀어야 할 철학적 과제로 생각하는 실질적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 나의 지적 성장 과정을 돌이켜 보면 어째서 ‘진보’ 대학생이자 계몽주의자였던 나 자신이 좀 더 유연한 자세로 ‘두 세계’ 사이의 교통과 대화에 대해 사유하는 철학과 인류학으로 이끌리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그런 경계인의 경험을 한 것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번 책에는 최소한 직접적으로는 별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와 같은 경계인의 경험을 한 독자들은 그런 미묘한 뉘앙스를 알아챈 것이었다. …… 결국 구미 삼일문고의 북토크 시간은 내가 독자들에게 새로운 것을 전하는 시간이었다기보다는 내가 한 명의 관광객으로, 하나의 만남 구역 속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정체성들을 경험하고 배우고 나누는 시간에 가까웠다.
─ 박동수 편집장의 북토크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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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삼일문고의 환상적인 큐레이션과 《한편》 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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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 “경계인의 경험”이라니, 수도권에서의 정체성과 포항에서의 정체성이 따로 있는 사람으로서 공감 가는 표현이어요. 포항 달팽이서점에 갔을 때 저는 금의환향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저자의 고향에서 북토크가 열렸다면 의미가 더 각별했겠다는 생각도 뒤늦게 듭니다. 팬데믹 이후로 독자와 직접 눈을 마주치며 하는 행사 자체가 오랜만인데, 여러 지방을 다닌 덕에 지역의 사정을 가깝게 들을 수 있었죠.
(리트리버) = 저는 서점에서 받았던 넘치는 환대를 잊지 못하겠어요. 멀리서 온 손님이라고 극진하게 대접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한편 지방에는 이와 같은 행사가 드물다는 반응을 반복해 접하면서 어쩔 줄 몰랐구요.
사무실에서 책의 출고량, 서점의 판매 지수, SNS의 ‘좋아요’ 숫자를 확인하는 일상을 떠나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서가에 책이 진열된 모습을 보고, 다양한 방식으로 줄 그어진 실물 책을 보는 여행을 한 건데요. 저는 철학책이 권하는 ‘타자들과의 대화’ 개념을 삶과 연결시킨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게 슬픔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어요.
태극기부대 참가자와 길에서 마주쳤는데 나눌 이야기가 없었던 일, 청소노동자의 시위에 반대하는 대학생들과 대치한 일, 친지들 사이에서 내 의견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일, 트랜스젠더 친구를 데려온 자녀 앞에서 충격받은 일…… 모두가 ‘정체성들의 충돌 속에서 자아는 축소된다’는 명제에 공감하는 한국 사람들의 고통이었어요. 『철학책 독서 모임』에서는 이렇게 말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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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과 모욕에 대한 우리 자신의 감수성을 의심하고, 현재의 사회 제도가 그들의 고통과 모욕을 다루기에 적합한지를 고민하는 우리가 도덕적·정치적 진보를 가능케 한다. 낯선 사람들, 심지어 우리의 적으로 간주되는 그들을 고통받는 동료들로 보기 위해서는 상상력과 접촉이 필요하다.
─ 박동수, 「21세기의 우리」
『철학책 독서모임』 92~93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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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리버) = 부산 북앤스페이스에서 일요일 밤 나눈 조용한 열정, 대구 여행자의 책에서 불금에 주고받은 인생의 고민……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구역인 북토크는 단지 홍보 수단인 것만이 아니라 출판의 목적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자와 실컷 이야기를 나눈 끝에 멋쩍은 나머지 “철학이 이렇게 소박할 수도 있나요?” 하고 매번 마지막 질문을 던졌는데요. 축적된 학문으로서의 철학과 삶의 철학 사이에서 아직 균형을 찾고 있지만, 그럼에도 ‘소박한 비평성’의 가능성(그리고 후속작의 가능성)을 공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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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네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물어뜯은 책+저자의 광기의 필체
(인스타그램 @gentle_indifference_t.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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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 생생한 후기와 생생한 사진…… 제가 모르는 구미와 부산 이야기를 든든하게 채워 줍니다. 리트리버 편집자님이 현장 반응에서 ‘소박한 비평성’을 떠올리셨다면, 저는 빨간책을 매개로 한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어 좋았어요. 과학을 모르는 사람이 처음 과학을 알게 되는 만남, 과학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모르던 부분도 있었구나를 깨닫게 되는 만남. 대구 여행자의 책 벽면에 쓰인 “감동은 현장에 있다.”라는 문장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벅찬 시간을 함께한 임소연 교수님의 후기도 공유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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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날 대구에 이어 포항에서도 감동 대감동! 몹쓸 이분법을 소환하자면 대구가 문과라면 포항은 이과였달까요. 대구에서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이 과학책 안 보던 문과 여자들의 첫 과학책이었다면, 포항에서는 과학하는 여자들에게 페미니즘으로 말을 거는 책이었답니다. 특히나 이날 오후 포스텍 총여학생회와 포페(포스텍 페미니즘 연구회)의 초청으로 “실험실의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에게”라는 제목의 강연을 해서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과학문화도시 포항답게 지금까지의 어떤 북토크보다 이공계 출신 독자분들이 많았어요. 체감상 문과와 이과가 반반? 현직 한의사분도 오셔서 성차 한의학의 의지도 불태워 주셨고요! 포페를 만든 포스텍 졸업생분은 서울에서부터 휴가까지 쓰고 와서 여성 과학자-과학 연구에서의 성평등 연결에 대한 의견을 주셨습니다. 포스텍 강연에서도 강조했지만 우리에게는 철학책 읽는 과학자도 필요하고 유튜브하는 과학자도 필요하며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있는 과학자도 필요하고, 당연히 페미니즘 하는 과학자도 필요합니다. 굳이 과학자가 되는 경로에서 이탈하실 필요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과학을 다양하고 건강하게 만들 거예요!
문과 측 대표는 단연 우리 달팽이책방 대표님이셨습니다. 제 북토크 주제인 ‘과학과 내 삶을 연결하는 방법’의 살아 있는 증거 같은 분이었어요. 식물을 키우면서 분류학, 화학, 조류학까지 섭렵하신 분. 과학을 아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으나 과학을 알게 된 사연, 식물을 사랑하고 잘 키우려다 보니 식물의 분류체계를 공부하고 탐조 망원경을 알아보고 있더란 말씀까지. 책방 대표님들 말씀은 언제나 좋아요.
포항 북토크와 포스텍 강연이 저에게는 참 각별했어요. 아무래도 한때 제가 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일까요? 책을 쓰면서 독자가 되어 주길 바랐던 바로 그분들을 직접 만나 행복하고 또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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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기억을 알차게 풀고 나니 편지가 전에 없이 길어지네요. 그런데 아직 끝이 아닙니다. “혹시 이런 자리가 또 있을까?” 궁금해진 분이 있다면 “앞으로 더 있을 것이고 열심히 만들어 가려 합니다!”라고 답하고 싶어요. 지금까지의 여정을 도와주신, 앞으로 더 많은 도움 주실 마케터님들도 초대합니다.
서점 섭외부터 굿즈와 포스터 제작 및 발송, 사회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전국 투어를 준비해 주셨는데요. 그간의 감상을 풀어 주시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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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북토크’ 기획이었어요. 다들 그래서 들떴던 걸까요? 어쩌다 보니 전국 투어로까지 일이 커져 버렸네요.
오프라인 북토크가 현장감을 느끼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주로 수도권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지방에 거주하는 분들은 참여가 어렵다는 점이 항상 마음에 걸렸어요. 이번에 박동수 편집장님과 임소연 교수님 모두 전국 투어에 긍정적으로 응해 주셨고, 담당 편집자들의 몸을 불사르겠다는 열정과 탐구 시리즈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케터들의 욕심 한 스푼이 합쳐져 전국 투어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전국 북토크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아무래도 일정을 맞추는 것이었어요. 첫째 날 포항 책방에 갔다가 둘째 날 서울에서 강연하고, 그다음 날 대구로 내려가는 일정은 너무나 비효율적이니까요. 가장 효율적인 루트로 일정을 맞추는 과정에서 담당 편집자와 수많은 메시지를 주고받고, 동네서점에도 몇 번이나 양해를 구하며 일정을 조율해 나갔어요. 어떻게 해도 일정이 맞지 않아 북토크가 무산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동네서점에서 최대한 일정을 맞춰 주신 덕에 비교적 수월하게 일정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특히 전국의 동네서점들이 책과 문화에 얼마나 힘을 쏟고 있는지 온몸으로 느낀 시간이기도 했어요. 어떤 책방에서는 북스테이 공간이 있으니 편히 머물고 가라고 제안도 해 주셨고, 어떤 책방에서는 제가 미처 챙기지 못한 세심한 부분까지도 챙겨가며 문의를 남겨주신 덕에 더욱 꼼꼼하게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각 서점의 특색에 따라 모객에서 진행, 후속 홍보까지 손수 나서서 이끌어 가는 과정을 보며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전국 투어 북토크를 하면서 앞으로도 함께 다양한 행사를 진행해 나갈 초석을 닦은 것이라 생각해요. 부디 동네서점과 동네서점에 방문해 행사에 함께해 주신 독자분들에게도 이번 북토크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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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는 재미있었고, 과정은 살 떨렸습니다.
바다에 놀러 간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속초 행사에 지원했는데, 행사 시간이 다가올수록 너무너무 떨리는 거예요. 원래 무대 공포증이 있기는 했지만 참 오랜만에 느끼는 울렁거림이었습니다. 그래도 ‘대충 되겠지!’ 하고 말을 시작한 순간…… 네. (암전) 버벅거리고 떨리고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누가 봐도 망한 느낌이었는데요. 어찌 보면 무책임하게 선생님께 마이크를 던지고선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명색이 민팁의 아부인 내가…… 왜 그렇게 떨렸을까 하고요.
짧은 강의 시간이 끝나고 각자의 과학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 제 오프닝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있었어요. 제가 그렇게 떨렸던 이유는 이 행사가 ‘과학’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자리라서 그랬던 것 같다고요. ‘나는 ‘과학’을 몰라, 어려워.’라는 생각이 마음 깊숙하게 박혀 있어서 선생님을 간단히 소개하고 물러나면 되는 역할이었을 뿐인데도 눈앞이 깜깜해졌던 것 같다고요. 털어놓고 다 같이 한바탕 웃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과학을 못하지만 과학이 좋아 과학을 전공하는 독자님 이야기도 듣고, 간호사였던 동아서점 대표님의 이야기도 이어서 들었어요. 학교에서 과학실험 보조 교사를 했던 독자님의 고민도 들었습니다. 달리기를 취미로 시작했는데 더 잘 달리기 위해서 인체를 공부할 필요를 느낀다는 독자님의 과학 이야기도 듣고요. ( 『달리기의 과학』 추천드렸습니다. )
그러다가 한 중년의 여성분이 일어나서 마이크를 잡으셨어요. 다짜고짜 김상욱 선생님에 대해 무람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에 ‘진짜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과학자 정인경 선생님이셨어요. (그 자리에서는 몰랐지만 찾아보니 어마어마하신……) 제 트라우마도 도닥여 주시고, “나는 과학자도 아닌데 이런 걸 써도 되나.” 하고 걱정했다는 임소연 교수님 말씀에 “여성 과학자인 본인도 수많은 의심의 시절을 먼저 거쳤는데, 지나고 보니 그럴 필요가 하나도 없더라.”라는 이야기를 선배로서 속시원히 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눈물도 찔끔 나 버렸습니다. (참고로 정인경 선생님과 임소연 선생님은 초면이었는데 응원차 참석해 주셨다고 합니다. ♨️)
서점 안에 ‘과학 엘리트’보다 ‘과학 약자’가 훨씬 많았는데도 너무나 즐겁게 과학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진심으로 좋았어요. 토크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저도 모르게 모든 게 과학으로 보이는 신비도 잠시 경험했습니다. 침대도, 요리도, 식물 키우기도 모두 과학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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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잠시 눈물 좀 닦고…… 편집자와 저자의 후기에 이어 마케터의 이야기까지 들으니 가슴이 참으로 웅장해집니다. 과학을 대하는 초심자의 마음, 북토크를 앞둔 사회자의 마음은 낯선 걸 대할 때의 불안과 두려움일 텐데요. 『철학책 독서 모임』에서 철학의 탐구 대상인 ‘타자’를 이야기했다면,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에서 과학의 탐구 대상인 ‘세포’를 대하는 문장을 인용하면서 마치겠습니다. 그럼 저는 오늘밤(두둥)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마지막 북토크가 열리는 부산으로 떠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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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신비롭지 않은 과학과 여성이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새로운 과학의 탄생? 새로운 여성의 등장? 최소한 지금의 페미니즘과 지금의 과학과는 다르겠지만 아직 손에 확실히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두려워지고 조급해진다. 그럴 때마다 떠올리는 일화가 있다. 페미니스트 과학학자 세라 프랭클린이 실험실 현장 연구를 하면서 현미경으로 세포핵을 관찰하면서 겪었던 일이다.
초심자에게는 현미경으로 세포핵을 보는 아주 간단한 일조차 쉽지 않다. 눈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다는 것은 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고 배움에는 실패와 반복이 동반된다. 프랭클린은 수없는 시도 끝에 마침내 현미경 너머 세포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모습은 그가 보려고 애썼던, 기대하고 상상했던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당연하고 익숙한 방식으로는 새로운 것을 볼 수 없다. 세포핵이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프랭클린은 비슷하고도 다른 행동을 수없이 반복하며 실수를 통해 기대를 갱신해 나갔다. 자연과 사물 그리고 그것들과 얽혀 있는 우리의 몸과 삶도 그럴 것이다.
─ 임소연, 「나가며」,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192~193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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