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님, 한편을 함께 읽어요. 지난 주 편지에서 만났던 손창섭의 ‘잉여인간’ 실업자 청년들은 세상에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분투하거나 끝없이 파괴적으로 절망하는 상태였죠. 오늘은 《한편》 5호 ‘일’ 독자 수기 공모로 뽑힌 첫 번째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바로 지금의 청년 취준생 이야기인데요. 이력서를 채울 이런저런 점수나 자격증 따기 위해 공부하기, 틈틈이 용돈 벌이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기, 면접 연습하기, 남들보다 내가 모자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불안해하기, 왜 떨어졌는지 고민하기, 진작 취업 준비를 제대로 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기…… 이 모든 일을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일할 생각을 하면 앞이 깜깜하고 아득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앞날에 대한 고민과 방황의 합리화를 끝내야 할 시기가 온다. 대학교 졸업까지 일 년 남았다. ‘취준생’이라는 딱지를 학생증 대신 달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헛구역질이 다 나온다. 학생증 들고 카페 가면 아메리카노 500원 할인도 해주고, 토스트에 치즈 추가도 무료로 해 주던데, 취준생 증은 어디 없나. 음료 500원 할인, 치즈 무료 추가나 해 주는 게 취준생을 위한 복지 아닐까 싶다.
어떤 울타리도 없이, 제도의 사각지대 안에서 혼자 스스로 살아남아 어디든 취직해서, 정규직으로 밥 벌어 먹고 살기 전까지, 20대 잠재적 백수는 계속 불안에 떨며 나 자신을 검열한다.
‘내 토익 점수가 남들보다 부족했나? 왜 인·적성 검사에서 떨어졌나? 스펙은 어디까지 어떻게 더 채워야 하지? 한국사 시험이라도 준비할까? 남들은 어떻게 인턴십 구한 거지?’
이력서에 단 한 칸이라도 더 채우려고 50만 원씩 내가면서 해커스어학원 자격증 한 달 완성반 수강 신청을 한다. 이때부터 취준생의 ‘일’이 시작된다.
자기 검열과 자기 비하는 취준생의 ‘일’이다. 부모님께 손 벌리기는 눈치 보이고 죄송스러워 아르바이트하며 학원에서 공부한다. 직장인도, 학생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서 적어도 하나는 제대로 해내려고 정신을 붙잡지만, 불안은 일상처럼 밀려온다. 이때부터 취준생의 ‘일’이 시작된다.
‘아, 알바 그만두고 공부에 집중해야 하나? 그러면 생활비는 어쩌지? 용돈 부탁드려볼까? 아 염치가 있지. 하, 자격증 빨리 따야 되는데 자소서는 언제 첨삭받냐. 내가 쓰레긴가 왜 남들 다 하는 거 못해서 이러고 있지. 아 고등학생 때 공부 좀 더 열심히 해서 수능을 잘 봤어야 했는데……. 영화는 개뿔, 전공이라도 취직 잘되는 거로 선택할걸. 답도 없는데 진작에 공시 준비를 했었어야 했어. 아니야, 그래도 스펙 쌓으면 어디든 취업은 되겠지……. 아 알바 그만두고 공부에 올인해야 하나? 나라는 사람 진짜 별로다.’
20대의 백수는 자기비하와 열등감이라는 뫼비우스 띠를 걸어 내야 한다. 일함으로써 내가 내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취준생은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는 말의 준말이다. 이제는 ‘취준생준생’이다. 취업 준비생을 준비하는 학생. 대학 졸업반 학생들. 이제는 취준생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검사, 변호사가 될 준비를 하기 위해 로스쿨을 들어가려고 준비하는 로스쿨 준비생도 아니고, 이 무슨 장난스럽고 어이없는 말인지. 참 그놈의 준비도 준비해야 하는 요새 젊은 애들.
요새 젊은 애들은 노력이 부족해, 의 젊은 애를 담당하고 있는 나는 취준생준생의 일을 하고 있다. 학점관리, 아르바이트, 토익, HSK, 열등감 심기, 불안해하기, 동기들과 비교하기, 잔소리 듣기. 사실 이중에서 남들이 보기에 일이라고 할만한 건 아르바이트뿐이지만, 내가 가장 열심히 시간과 힘을 쏟아서 하는 일은 불안해하기다. 바코드를 찍으면서도, 중국어 단어를 외우면서도, 토익 리스닝 성우의 목소리를 들을 때도 불안은 내 심장을 쿵 치고 간다. 불안이 일이라면 나는 일 중독자다.
염치를 알아서 고통받는다. 일하지 못하는 개미여서 고통받는다.
─ 독자 Zoey 님의 수기
Zoey 님의 수기는 제가 골랐어요! 일의 개념을 스스로 정의해 본 시도가 좋았고, 많이 공감이 되었어요. 사실 무엇을 실제로 할 때보다도, 불안해할 때의 에너지 소모가 더 클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정작 시작하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었기에, 내가 겪었던 그 모든 불안의 의미가 과연 뭐였는지 허탈했던 기억도 나요. 입문하려는 이의 공포와 불안을 자극하는 지금의 현상에서, 사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만이 분명한 것 같아요.
휴, 너무 감정이입이 되어서 힘들게 읽었어요. 저의 취준생 시절을 돌아 보면 자기소개서를 쓰고 시험과 면접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힘든 건 ‘이래서 도대체 언제 뭐가 되려나’ 하는 불안을 견디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취준생준생’이란 단어를 보니 불안이 시작되는 시기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염치를 알아서 고통받는다”라는 표현이 심장을 쿵 치고 갔는데요, 말이 쉽지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염두에 둔 바로 그 분들이 Zoey 님을 가장 응원하고 계신 분들일 테니 스스로에게 조금만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어요.
‘감정 노동’이나 ‘그림자 노동’, ‘무드 경제’, ‘관심 경제’와 같은 기존 경제학 바깥에서 온 말들은 일찍이 관심 모아지지 않던 세계들을 알게 해 주잖아요. ‘산업 예비군’이라는 개념이 자본은 노는 노동력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했듯이, “취업 준비는 노동일까?”라는 질문이 지금 취업난의 단면을 보여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불안이 일이라면, 나는 일 중독자”라는 표현은 골똘히 생각해 보기에 앞서 곧장 공감하게 되는데요. 아무것도 안 하면서 불안해하는 그 모든 시간 없이는 실제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인생의 역설을 주장하고 싶어요.
일에 관한 이야기가 정말 많다. 스마트하게 직장생활 하는 법, 당장 퇴사해도 되는 커리어 만드는 법,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또는 창조성을 발휘하며 만족스럽게 일하는 법 등등.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의 흐름이다. 한편 일에 대한 이야기가 여전히 적다. 과중한 업무량, 위험한 업무 환경, 낮은 임금, 부족한 일자리에 대한 대책까지. 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린다. 한참 ‘코인 열풍’이 불고 있는 2021년. 이제 와서 일이란 무엇일까? 일하는 보람을 향한 열망과 벗어날 수 없는 노동의 굴레 사이에서 인문잡지 《한편》 5호는 ‘일’을 탐구한다. 한국을 휩쓸고 있는 투자 열풍 진단에서 출발해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여성학, 심리학, 철학, 교육학, 예술학 등 열 편의 글을 실었다. 개별적인 경험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가운데, 내가 성장할 길 또는 사회 변화의 길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