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5일(수)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 아카데미에서는 민음 아카데미 강연이 마련되었습니다.
그 세 번째 시간에서는, ‘잉여력과 로우테크로 구상하는 새로운 미디어 운동’을 주제로
문학평론가 임태훈 선생님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잉여력과 로우테크로 구상하는 미디어 운동’이란
‘몸 만들기’, 즉 ‘보디빌딩’의 의미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몸, 신체는 온갖 능력들의 총체를 의미하며, 이 ‘능력’은 생물학적 분류표가 아니며,
어떤 존재가 실제로 갈아가는 삶의 디테일한 사건들과 관계망으로부터 분리해 판단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이라고 해도 다 같은 인간이 아니며, 각자의 삶을 통해 증명되는 그 행동 능력의 범위야말로
우리 존재의 실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라고요.
반면, 체제 안에서 사물의 질서를 구성하고
우리 ‘몸’의 행동 능력의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돈’입니다.
상품성을 잃어버린 구식 제품이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것처럼,
이러한 제품의 탄생과 소멸의 과정은 미디어와 우리 몸이 주고받는 시간과 리듬, 속도의 재편과 같다고 합니다.
어쨌든 시장은 돈이 되는 능력만을 긍정하고 있고,
자본의 회로도 안에서 개인 각자의 행동 능력은 돈과 속도를 맞춰 계발되고 발휘될 것을 요구받게 됩니다.
양계장의 닭처럼 소위 ‘인간’이라는 상품은 자본과 국가에 의해 해마다 개량되고,
돈 잘 버는 능력, 즉 경쟁력으로 환원될 수 있는 능력의 유무를 일평생 추궁당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잉여력’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익숙한 말이기도 하지만, 경쟁력에 등치될 수 없는 그 밖의 모든 능력을 ‘잉여력’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바로 그 ‘잉여력’이 우리 시대의 잃어버린 몸을 되찾을 수 있는 단서일 수 있다고 지적하며,
지금이 바로 우리들의 행동 능력의 범위가 어떻게 축소되고
시장 질서에 맞춰 패턴화되고 있는지 각성해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즉, ‘잉여력과 로우테크로 구상하는 미디어 운동’이란
자본주주의 직선에서 비껴난 일종의 파선의 전략으로서,
우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수립해야 할 삶의 전략과 다름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도구(미디어)를 모으고
새로운 ‘사회적 신체’를 구성할 방법을 발명하고, 발견해야 한다고요.
정보 자본주의는 스마트폰을 통해 비로소 완성을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세계에서는 우리가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우리를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을 중심으로 사회적 신체의 확장과 단절을 따져보는 것보다는
돈을 중심으로 사고할 때 이 세계의 실제를 훨씬 더 리얼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미 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돈 앞에 인간은 주체일 수 없습니다.
돈은 인간이 얼마나 멀리 도망치든 우리를 체제 안으로 소환하는 힘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함께있는 서울이라는 장소부터가
신자유주의, 정보 자본주의, 핵 자본주의가 뒤섞인 디스토피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울 역시도,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신체’라는 것이지요.
얼마 전 구글이 출시한 구글 글래스, 애플과 삼성이 수년 내에 시제품을 출시할 예정인 스마트 와치,
뿐만 아니라 그밖에 ‘스마트’를 표방하는 온갖 종류의 신체 밀착형 전자 제품은
우리 몸에 하나둘 자리 잡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허나 이 기계들은 곧, 하나 같이 ‘돈이 흐르는 길’입니다.
스마트 미디어의 발전과 더불어 공짜로 접속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유 경제’의 영역이 늘어날지는 몰라도,
이 영역이 사용자로 하여금 과금 체제의 적용을 받는 고급 정보와 서비스를 접속시키기 위한
통발 역할을 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IT업계가 돈을 버는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허나 그 어떠한 제품도 완전히 완성되는 법이란 없으며, 또 완전하게 소비될 수도 없습니다.
사물에 잠재된 잉여의 능력치는, 우리의 신체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발견되고 발명될 수 있으며,
그 새로운 시작은 우리가 돈의 미디어로서가 아니라 ‘몸의 주체’임을 각성하고
증명해나가는 고투를 통해서야말로 열릴 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먹은 일이 없는 아이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몰라. 아이들을 구해라.”
체제 순응적인 일상에 사회적 신체의 능력을 압도당해선 안 된 다는 당부를,
임태훈 선생님께서는 루쉰의 「광인일기」 속 마지막 문장으로 대신하며
이날의 민음아카데미 강연을 모두 마무리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