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수) 교보문고 광화문점 배움 아카데미에서는
2013 민음 아카데미 두 번째 연속 강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지난 주 첫 강연을 맡아주셨던 장은수 대표님의 ‘미디어 테크놀로지와 포스트페이퍼 시대의 책’에 이어
어제는 이진숙 미술평론가 선생님과 함께 ‘기술을 예술로 길들이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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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언제나 우리를 앞서 있었다고 합니다.
레디-메이드(Ready-made)로 유명한 뒤샹이나,
물감이 개발된 직후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인상파의 작업 등
어느 순간부터 과학과 미술의 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최근에 비엔날레를 가 보면 과학 엑스포인지 미술 전시인지 헷갈릴 정도로
예술 작품들이 첨단 과학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예술에서도 중요한 화두가 바로 ‘과학’이라고 하는데요,
뉴튼의 지동설이나, 다윈의 진화론과 같이 인류의 생각을 바꾸는 위대한 ‘발견’들이 있었고
바로 이런 과학은 진보된 방향으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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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과연 예술가란 어떤 존재인가?
예술가는 사회에서 굉장히 특수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진숙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예술가’에 대한 가장 알맞은 규정은,
‘제일 낮은 열량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정보가 제일 적은 상태에서도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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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러한 기술과 예술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에는 한국 작가들이 아주 좋은 예가 되는데,
그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예는 향후 200년간 연구가 되어야 하는 위대한 예술가 ‘백남준’이라고 합니다.
앞서 ‘작은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예술가의 일’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백남준은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전자적 회화 방식을 인간화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선보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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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은 1963년부터 ‘TV’를 주제로 전시를 시작합니다.
당시 60년대는 TV가 첫 등장하고 막 보급되던 시기였습니다.
TV라는 막강한 매체가 등장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바뀌었으나
대표적인 미디어학자인 ‘마샬 맥루한’조차 이러한 TV를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상상의 여지가 없는 Cool Media로 분류하고는 했습니다.

원근법이 없는 동양화에는 하나의 그림 속에 여러 가지의 소실점이 존재하는데,
그 사물을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관점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즉, 이러한 동양적인 사고가 봄에 배었던 백남준은 TV에 대해 다르게 생각을 했고
첨단의 정보가 함유된 TV를 역이용하고, 새롭게 네트워킹을 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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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발표한 이 ‘참여TV’는 소박한 외형이지만 그 안에 담긴 함의는 엄청난 작품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TV를 오브제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 내부 회로를 조작하여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당시 이러한 작품으로 지금 보편화되어 쓰이는
‘인터랙티브’ 즉, 쌍방향성의 개념을 예견하고 표현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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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해야할 일은 ‘백남준을 재해석하고 자리매김하는 일’이라 하시며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한다고 생각하신다는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결국 기술에 어떻게 인간적인 옷을 입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지금부터는 ‘예술로 기술을 길들이는’ 대표적인 현대 작가 3인과 작업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공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우람

그 첫 번째로 소개해드릴 작가는, 로봇아트의 창시자로 불리는 최우람 작가입니다.
로봇을 예술로 만들어내고, 미술과 과학의 뛰어난 DNA를 겸비하고 있는
최우람 작가 최고의 관심사는 바로 ‘움직임’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느 날 도시를 바라보다가, 사람이 설계했으나 사람이 모르는 공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곳에 존재하는 또다른 생명체인 ‘우르바누스’를 상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르바누스는 도시를 뜻하는 urban에서 따온 것)
선생님께서는 도시의 거대 문명을 바라보는 SF적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
최우람의 가짜 생태계의 진실이라고 하셨는데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조금씩 흘리는 전기 같은 것들이 우르바누스의 에너지가 되는 등
도시의 생태계에 또다른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용인’, ‘허용’의 문제가 여기서 드러나게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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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우람 작가의 작업은,
아이언맨이나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하이-테크 로봇과 달리 로우-테크low-tech를 이용한 것입니다.
최우람 작가는 산업기술을 통해 이미 보편화된 상용 기술을 통해 작업을 하는데
예술가가 기술을 길들이는 첫 번째 전략이 바로 이러한 ‘로우테크’를 통해
고퀄리티의 휴머니즘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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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보이는 우르바누스는 굉장히 천천히 움직인다고 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통해 우르바누스는 인간에게 천천히 사유케하는 시간을 제공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생각이 많아진다고요.
바로 이러한 것이 다양한 생각을 존재케하는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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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자기 발전의 메카니즘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왜 이 작품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부의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최우람 작가의 작업 역시, 백남준 작가처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고 합니다.
기계생명체에 인간적인 삶이 은유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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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기술을 길들이는 전략을 구사하는 대표적인 현대 작가, 그 두 번째는 정연두 작가입니다.
정연두는 수많은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를 재해석하여 아주 구체적인 일상의 것으로 그것들을 돌려 놓습니다.
정연두는 ‘예술이란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 아주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어느 날 정연두는 우연히 주유소와 아이스크림 체인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학생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꿈을 전해듣게 되면서 작업을 위한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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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처럼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생의 꿈이 ‘북극에 간다’는 것이라고 하자,
정연두는 의도적으로 같은 포즈를 통해 ‘현재’와 ‘미래, 꿈, 추억’을 동시에 보여주는 ‘두 화면 전략’을 구사합니다.
또한 늘 ‘사람 냄새’가 나는 작업을 하고 싶다던 정연두는
‘안티 블록버스터’ 전략을 통해 진솔하고 소박한 일상을 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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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댄스홀에서 춤추는 노부부의 모습을 담거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그대로 사진으로 다시 연출해내는 등…
정연두는 평범한 삶에 대한 끝없는 긍정, 그리고 그것을 ‘미디어’라는 도구로 포착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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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13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지슬>은
선생님께서도 올해 본 영화 중에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며 강력히 추천하셨는데요.
영화 속에서 마을 사람들이 끊임 없이 도망을 가면서도 마을에 있는 ‘돼지’를 걱정하는 것,
선생님께서는 그런 것이 바로 진실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정연두가 놓치고 싶지 않아 했던 것이 바로 그러한 ‘실제 삶의 이야기’라고요.
현재 리움 미술관에 가시면 정연두 작가의 <B컷>이라는 작업을 보실 수 있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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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간의 정신을 포착하여 물질로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작가가 김아타입니다.
나 아(我)와 타인의 타(他)를 동시에 이름으로 쓴 김아타의 화두는
불교 경전인 화엄경의 마지막 말인 “결국 모든 것은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서,
사진의 3요소를 부정하며 인간의 정신을 담겠다던 김아타가 작업했던 대상이 바로 무형문화재였습니다.
그리고 김아타의 이러한 철학적 프레임 구현에 최적화된 매체가 바로 사진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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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는 김아타의 많은 작업과 그 함의들을 소개해주셨지만,
후기에서는 그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하게 해준
ON-AIR Project 시리즈를 대표적으로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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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께서 아시다시피, 보이는 사진은 중국의 천안문 광장입니다.
실제로는 언제나 끊임 없이 몰려드는 인파로 가득한 곳인데도
사진 속의 천안문 광장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제거’된 채 표현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거뭇거뭇한 형체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실 수가 있는데요,
빛의 예술인 사진을 이용해 8시간 동안 조리개를 열어두고 상이 천천히 열리도록 하여
이 공간에 머무르던 인파를 모두 흔적으로만 남긴 것입니다.
즉, 김아타는 공간을 고정시키고 시간을 흘러가게 함으로써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는 폐허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앞서 말했던 ‘모든 것은 소멸된다’는 화두로 다시 귀결되는 내용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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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금융의 거리, 뉴욕 57번가 월 스트리트입니다.
이 사진은 김아타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로 손꼽힌다고도 하는데요,
바로 자신의 작업을 통해 가장 번성한 지역을 묵시론적인 색깔로 다시 구현해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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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여드리는 이 ‘작품’은 결코 잘못된 이미지가 아닙니다. ^^
위와 같은 방법으로 세계 유명 도시를 촬영한 김아타는 그 사진을 축적하여 위와 같은 작업을 만들어냅니다.
색을 섞으면 섞을수록 무채색이 되는 것처럼,
이미지는 섞으면 섞을수록 모든 존재는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역시 그의 화두로 귀결되는 작업인 것이지요.
섞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동양 철학의 실천이자,
사진을 무기로 철학을 표현해낸 김아타의 대표적인 전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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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이진숙 선생님과 함께했던 2013 민음 아카데미 두 번째 강연
‘기술을 예술로 길들이기’에 대한 간단한 후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