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전방위적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이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가치 있는 일, 진정 중요한 일을 해내려면 빠른 학습 능력과 높은 성과를 올리는 능력이 필요하다. 『딥 워크』의 저자 칼 뉴포트는 집중력을 최대치로 발휘해 일하는 딥 워크를 실천한 소수만이 이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MIT 공학박사답게 딥 워크가 중요한 이유를 체계적으로 논증하는데, 그 바탕에는 강렬한 몰입으로 최고의 성과를 낸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인물들은 과연 어떻게 딥 워크를 어떻게 활용했을까? 몇 가지 전략을 살펴보자.
철저하게 고립된다
빌 게이츠가 1년에 두 번 ‘생각 주간(Think Weeks)’을 가진다는 것은 유명하다. 이 동안 그는 외딴 호숫가 별장에 홀로 머물면서 IT 업계의 동향을 고민하고 미래 전략을 구상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게이츠가 생각 주간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MS는 큰 발전을 이뤄 냈다. 익스플로러를 낳은 유명한 글 ‘인터넷의 조류’를 쓴 시기도 1995년의 생각 주간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인 폴 앨런은 빌 게이츠의 집중력을 “신동 수준의 능력”이라고 표현한다. 당시 게이츠는 코드를 짜다가 키보드 위에 쓰러져 잠들고, 한두 시간 후 일어나 그 자리에서 바로 작업을 이어 갈 정도였다고 한다. 덕분에 PC용 소프트웨어를 두 달 만에 개발해 냈고, 이것이 MS의 창업으로 이어졌다.
알고리즘 분석과 여러 혁신적인 프로그래밍 기법의 선구자 도널드 커누스는 이메일 주소가 없다.(다시 강조하건대 그는 컴퓨터과학자다.) 대신 우편 주소를 공개하고 비서에게 우편물 분류와 정리를 맡긴다. 스탠퍼드 대학의 명예교수인 그의 이메일 주소를 찾으려고 대학 웹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다음과 같은 안내를 접할 수 있다.
나는 이메일 주소를 없앤 1990년 1월 1일 이후로 행복하게 살아왔다. 대략 1975년부터 이메일을 썼지만 15년이면 쓸 만큼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메일은 일을 장악하려는 사람에게는 멋진 도구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나의 역할은 근원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오랜 공부와 방해받지 않는 집중을 요구한다.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제시해 2013년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피터 힉스도 빼놓을 수 없다. 힉스는 너무나 단절된 환경에서 연구한 나머지, 노벨 물리학상 발표가 난 후에 기자들이 그의 소재를 찾지 못할 정도였다.
칼 뉴포트는 이렇게 완전히 고립되는 방식을 ‘수도승 방식’이라고 부른다. 딥 워크를 위한 시간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른 잡무를 없애거나 극도로 줄이는 것이다. 혼자서 일하는 편이고 긴 시간을 투자할 수 있으며, 일의 목표가 뚜렷하고 가치가 높을 때 적합한 방식이다.
시간을 분할해 딥 워크에 투자한다
이 정도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거나, 한 가지 일만 파고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크고 중요한 일과, 일상적인 일을 병행해야 하는 현대인을 위해 뉴포트는 ‘이원적 방식’을 제안한다. 시간을 분명히 나눠서 일부는 딥 워크에 할애하고 나머지는 다른 일에 할애하는 것이다. 일주일 중 며칠을 딥 워크에 할애할 수도 있고, 하루 중 일정 시간을 할애할 수도, 한 해나 한 시즌을 할애할 수도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만 글을 쓴다. 열여섯 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라고 하는데, 이 네 시간 동안 머릿속에 가득 찬 아이디어를 글로 쏟아낸다. “아침에 책상에 앉아서 이 수도꼭지를 틀면 쏟아져 나오는 생각들을 적절히, 좋은 문장으로, 빨리 써 내려가는 데만 골몰합니다.” 특이한 점은 아이디어가 있고 글을 더 쓰고 싶을 때에도 시간이 다 되면 수도꼭지를 잠그듯 작업을 멈춘다는 것이다. 일하는 시간과 나머지 시간을 명확히 분리함으로써 글을 쓸 때의 집중력을 극대화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4시간 집필법의 효과를 설명하기도 했다.
『오리지널스』의 저자이자 명문 MBA 와튼 스쿨에서 강의평가 최고를 달리는 애덤 그랜트 교수는 한 학기에 강의를 몰아넣고 다른 학기에는 연구에 매진한다. 연구 학기에도 한 주를 기준으로 며칠간은 연구실을 개방하고 다른 며칠간은 수도승 방식처럼 전적으로 접촉을 피한다. 사나흘쯤 작업에 몰두해야 하면 이메일을 보낸 사람이 기다리지 않도록 ‘자리 비움’으로 자동 답신을 설정한다. 가끔 동료 교수들이 혼란스러워하지만 방해받지 않는 집중의 중요성을 알기에 고립 상태를 엄격하게 유지한다.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카를 융도 온전히 연구에만 몰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융은 스승인 프로이트를 뛰어넘으려는 학문적 시도에 집중하기 위해 호숫가의 작은 마을 볼링겐에 집필실이 딸린 집을 지었다. 한편으로는 환자를 보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대학에서 강의도 해야 했다. 커피하우스에서 이루어지는 지적 자극이 샘솟는 대화도 필요했다. 한적한 볼링겐과 번화한 취리히를 오가며 딥 워크와 그 외의 일을 번갈아 한 덕분에, 융은 20세기 초의 위대한 사상가가 될 수 있었다.
『딥 워크』에서는 딥 워크를 일상에 접목하는 다른 방식도 설명한다. 일반 직장인에게 적합한 ‘운율적 방식’과 능수능란하게 집중할 수 있는 프로를 위한 ‘기자 방식’이 그것이다.
마음가짐부터 달라지는 환경을 조성한다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죽음의 성물』을 집필할 때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을 빌렸다. 집에서는 집필에 집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첫날에 글이 너무 잘 풀려서 계속 돌아왔죠. 결국은 여기서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롤링의 이 에피소드는 딥 워크의 흥미롭고도 효과적인 ‘거창한 제스처’ 전략의 사례다. 딥 워크를 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나 노력, 비용을 들여 몰입만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무료 강의보다 유료 강의가 청중의 참여도가 높다고 하는데, 이와 비슷한 원리라 할 수 있다.
롤링이 『죽음의 성물』을 완성한 에든버러의 밸모럴 호텔. 호그와트의 염감을 준 에든버러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딥 워크』는 거창한 제스처 전략의 사례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글을 쓰기 위해 대륙 횡단 비행기 표를 끊은 별난 기업가, 피터 솅크먼의 이야기다. 집중을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 인터넷도 되지 않으며, SNS 푸시 알람도 오지 않으니 몰두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환경도 없다. 이 사실을 깨달은 솅크먼은 2주 만에 집필을 마쳐야 하는 출판 계약을 맺고 곧바로 도쿄행 왕복 비행기 표를 끊었다. 미국에서 일본으로 날아가는 내내, 그리고 돌아오는 내내 글을 쓴 결과 30시간 만에 책 한 권에 해당하는 원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모두가 이처럼 비행기나 호텔 방을 자유자재로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이 전략의 포인트는 업무의 중요성을 높여서 의욕과 활력을 북돋우는 것이다. 때로 깊이 몰입하려면 우선 거창하게 나서야 한다.
SNS가 뭔가요?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트위터를 하지 않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팬들이 트위터에서 내 말을 듣고 싶어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나요?” SNS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SNS 활동이 자신의 작업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할 만큼의 혜택이 충분히 크지 않다고 여긴다. 이 점은 조앤 롤링도 마찬가지인데, 롤링은 내내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다가 『캐주얼 베이컨시』를 쓰던 2009년이 되어서야, 그것도 직원이 대신 트위터 계정을 열었다. 그 후 1년 반 동안 그녀가 올린 트윗은 이것이 유일하다. “이건 제가 직접 쓰는 글이지만, 지금은 펜과 종이가 더 좋아서 아마 자주 올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인터넷 시대’라는 개념을 대중에게 널리 각인시킨 SF 작가 닐 스티븐슨은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을 통해서는 접촉하기가 힘들다. 그의 웹 사이트에는 이메일 주소가 없고 대신 ‘나와 연락이 잘 안 되는 이유’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길고, 연속적이며,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많이 갖도록 일상을 조직하면 소설을 쓸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방해를 많이 받으면 무엇이 바뀔까? 길이 남을 소설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보낸 이메일 뭉치만 굴러다닐 것이다.
모두의 관심에 응답할 수 있으면 좋지만,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주의력과 집중력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뉴포트는 핵심 업무가 아닌 다른 일, 잡무, 소위 ‘피상적 작업’을 전략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SNS와 인포테인먼트 사이트에 들이는 시간을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간 조정이 자유로운 사람들만이 딥 워크를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뉴포트 자신이 행정 업무의 양이 만만치 않은 조교수다. 그럼에도 그는 5시 30분이면 일을 마치고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유지하고 있다. 집중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철저히 분석해 제거한 덕분이다. 그는 『딥 워크』에서 작가나 프리랜서는 물론이고 잡무를 피할 수 없는 직장인들, 조직에 속한 사람들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조언을 제시한다. 산만한 분위기가 만연한 기업 문화를 꼬집는 대목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일할 수 있을 때 탁월한 결과물이 나온다. 몰입과 집중의 비결을 터득하고 싶다면, 깊이 있는 삶을 위한 최고의 가이드 『딥 워크』를 꼭 읽어 보기를 바란다.
민음사 편집부 김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