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어스

 

 

현재 상영작 중에 문학팬을 즐겁게 해 줄 영화가 있다. 콜린 퍼스와 주드 로 주연의 「지니어스」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 소설가 토머스 울프와 그의 조력자였던 편집자 맥스 퍼킨스에 대한 영화라고 한다. 퍼킨스는 울프 이전에도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길들였고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다듬었다고 하니 영화에서 지칭하는 ‘천재’가 그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에즈라 파운드

 

 

천재 시인 T. S. 엘리엇의 곁에도 천재 조력자가 있었다. 바로 에즈라 파운드이다. 그는 혼란 상태에 있던 『황무지(The Waste Land)』의 초고를 약 절반 길이로 가차 없이 잘라 냈고, 엘리엇을 설득하여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이게 했다고 한다. 에즈라 파운드는 엘리엇의 친한 친구인 동시에 없어서는 안 될 기획자, 시인, 망명자, 번역가였고 모더니즘의 창시자로도 불린다. 엄청나게 길어진 원고를 제대로 바라보고 다시 고쳐 쓸 여력이 바닥난 엘리엇에게 파운드는 한 줄기 빛을 선사한 것이다. 그 때문에 엘리엇이 고쳐 쓴 『황무지』는 제사와도 같은 이런 구절로 시작한다.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드에게”

 

이 일화 덕분에 파운드는 ‘시인의 시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편 파운드의 조언을 받아들인 엘리엇에게는 적절한 언어를 찾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황무지』는 그의 언어적 허세를 가장 잘 보여 준다. 유명한 구절을 인용을 하거나 일부를 골라 고쳐 쓰는 것은 물론이고 압운시든 자유시든, 행이 길든 짧든, 노동 계급 여성의 언어든 교양층 신사의 언어든,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심지어 산스크리트어까지 모두를 유희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천재 시인은 모든 선배들을 스승으로 삼았다.

엘리엇은 “미숙한 시인들은 모방한다. 완숙한 시인들은 훔친다. 나쁜 시인들은 훔쳐온 것을 흉하게 만들고 좋은 시인들은 더 낫게 만든다. 더 낫지 않다 하더라도 적어도 훔쳐온 것과 다르게는 만든다.”라고 썼다. 그는 과거의 문학에 대해 다른 모더니스트들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으며, 자기 작품을 위해 훌륭한 선배들의 작품을 거리낌 없이 훔쳐 왔다. —피터 게이, 『모더니즘』에서

 

뛰는 자 위에 나는 자 위에 훔치는 자였던 엘리엇이 시구를 훔쳐온 시인들은 프랑스 상징주의자부터 영국의 형이상학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심지어 그는 『황무지』에 모더니스트의 아버지 보들레르의 『악의 꽃』의 명구까지 써먹었다.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You! hypocrite lecteur! — mon semblable, — mon frère!”) 이 천재 절도범(?)은 194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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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편집부 문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