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전집이 완간되었다. 전 19권, 모두 1만 5000쪽에 원고지 6만 5000여 매에 이르는 거대한 분량이다. 1977년 민음사에서 출간된 김우창의 첫 번째 저서로 전집 1권을 이루는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 한용운, 윤동주, 서정주 등에 대한 평론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면, 그동안의 글과 단행본만 아니라 미발표 원고와 대담, 인터뷰까지 모두 모아 전면적인 감수를 거친 이번 전집을 통해 50년간 김우창이 걸어온 길을 종관할 수 있게 되었다.
전집 편집에 참여한 나는 이렇게 사실을 소개할 수는 있는데, 내용에 대해 말하자면 어려워진다. 『풍경과 마음』(12권), 『정의와 정의의 조건』(13권 수록), 『기이한 생각의 바다』(14권 수록) 등 후기의 대표작과 논문에 대해서는 앞으로 평가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다만 김우창이 뭐 하는 사람이며 뭘 하려 했던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뒤에 와서 그가 다수 인용했던 릴케와 브레히트의 시를 두고 이야기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장미, 아 순수한 모순이여! 그 많은
눈까풀 아래, 어느 누구의 잠도 아닌
기쁨이여!1)
릴케의 이 유명한 구절에서 장미 꽃잎은 사람의 ‘눈까풀’과 포개진다. 김우창은 ‘눈까풀’ 아래에는 눈이 있을 것이고 눈을 감고 자고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짚는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장미 아래 숨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장미는 누구나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에 이는 것은 이 아름다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데, 아름다움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모순이 떠오른다. “아름다움이란 무서움의/ 시작일 뿐 우리는 가까스로 견디고/ 하찮은 우리를 짓부수지 않음이 놀라울 뿐.”2) 이렇게 아름다움으로 대표되는 멀고 높은 것에 대한 지향을 가지고 인간의 삶을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이 인문학자 김우창이었다.
이러한 ‘보편 이념’에의 지향을 땅에 붙들어 놓는 것이 브레히트가 말하는 ‘나날의 삶’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은/ 무엇인가 보편적이고 인간적인 것,/ 길거리의 법석 속에서 수시로 연습된 것,/ 사람에게는 먹는 일과 숨 쉬는 일처럼 익숙한 것.”3) 찬찬한 비평의 대상이 되는 릴케 시에 비하면 무엇보다 쉽고 언제나 공동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는 브레히트의 시는 당대의 현안을 다루는 칼럼(16~17권)에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며 부딪치는 대담(18~19권)에서 이정표처럼 인용되곤 한다. 한 대담에서 김우창은 영문 저술을 쓰는 데 매진했다면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지 않았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당장 부딪힌 문제에 충실한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중요한 논문을 쓰고 있더라도 학생이 중요한 문제를 논의해 오면 학생에게 시간을 압수당하죠. 그러나 그 학생을 도와주는 것이 절실한 일이다, 늘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요.” 이것이 저널리스트 김우창이다.
말하자면 김우창은 릴케와 브레히트, 인문학자와 저널리스트 사이에 있다. 또는 문학과 사회, 예술과 정치, 행동과 사유, 보편 이념과 나날의 삶…… 그 무엇이든 양편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한국어로 읽고 쓰는 사람들에게 김우창의 경로를 하나의 지침으로 삼아 보기를 권한다.
민음사 편집부 신새벽
1) 릴케의 묘비명, 김우창 전집 9권 『사물의 상상력과 미술』 중에서. 이하 번역은 모두 저자의 것이다.
2) 릴케, 「제1비가」, 전집 14권 『산과 바다와 생각의 길』 중에서.
3) 브레히트, 「일상성의 극장에 대하여」, 전집 6권 『보편 이념과 나날의 삶』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