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다들 무사히 계신가요? 사실 저는 지금 몇 주간 무두절을 보내고 있는데요. (쉼 하러 떠난 새벽 편집자님) 시간이 어쩜 이리 빠른지 어느새 11월도 절반이 훌쩍 지났네요. 독서의 계절 가을도 금세 지나가 버렸고요. 하지만 사실 가을은 도서 대출율이 가장 낮은 계절이라고 하지요. 진정한 독서의 계절을 맞아…… 지난 주말 이불 속에서 미뤄 둔 독서를 했답니다.
펼친 책은 『재앙의 지리학』이에요.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불평등”이라는 카피를 지난 여름을 떠올리며 이해했어요. 땀에 절어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동안 자동차에서 내리는 보송보송한 사람들을 보면서 분노에 휩싸였거든요……. 물론 사무직 노동자인 저도 회사의 에어컨 아래 금세 보송해졌지요. 기후위기는 내가 속한 나라와 사는 지역, 이동 경로, 나의 경제적 능력 등에 따라 다르게 경험될 거예요.
이 책에서는 ‘지속가능한 소비’라는 말이나 국가 단위로 탄소 배출량을 줄여 가는 기후위기 대응이 기만적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영국의 탄소 배출량은 줄어들고 있지만, 영국이 벽돌을 수입하는 캄보디아 프놈펜의 벽돌 가마에서는 노동자들이 시커먼 연기를 들이마시며 매일같이 의류 폐기물로 벽돌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저자는 ‘친환경’ 상품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소비되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이 무지가 바로 탄소 식민주의라고 말해요. “이런 현실을 기업도 알고, 정부도 알지만 국제적인 공급망의 모호성은 용인가능한 지식의 공백으로 간주된다. 바로 이것이 탄소 식민주의이다.”
정치인과 대기업은 기후과학의 가장 표준적인 객관성을 이용해 일부 사람들만 보호하는 정책에 무게를 싣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직면한 위협을 심화한다.
따라서 기후변화를 다르게 보기 위해, 그리고 지금까지 실행된 것과 다른 더 효과적인 해결책을 상상하기 위해 우리는 기후과학을 반드시 정치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만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유의미한 조치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유한 세계 외부에 자리잡은 과학자, 사회과학자, 환경운동가, 정책 입안가들의 목소리를 기후 대화에 끌어들여야 한다. 즉 현재 기후학계의 주변부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젊은이, 빈곤층, 글로벌 북반구의 외부에 자리 잡은 사람들, 심지어 압도적 다수인 여성)에게 눈을 돌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재앙의 지리학』에서는 ‘부유한 세계 외부의 목소리’ 중 하나로 ‘토지의 정령이 강림했다’라고 말하며 벌목을 막아 낸 캄보디아 주민들의 사례를 들고 있어요. 애니미즘적 사유를 담은, 자연을 대하는 또 다른 방식이지요. 한국에도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 발파를 막기 위한 저항 운동의 사례가 있네요. 이 대목을 읽다가 문득 사 두고 읽지 않은 『오늘날의 애니미즘』이 떠올라 펼쳐 보았습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설화들이 무척 재미있어요. 예전에 어느 책에서 ‘에코 섹슈얼리티’ 개념을 접하고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도 같고…… 여전히 알쏭달쏭하기도 하고요. 🤔
노회한 사냥꾼 스피리돈은 버드나무 숲에서 암컷 엘크가 나타나길 기다렸다가 나타나는 즉시 그것에 가까이 접근한다. 암컷 엘크는 엘크를 모방하는 노인의 퍼포먼스에 속아 노인 쪽으로 다가온다. 암컷 엘크의 뒤편에서 새끼 엘크가 나타나는 순간 스피리돈 노인은 총을 들어 두 발을 쏴 죽인다. 후에 그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나는 두 사람이 춤을 추며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어미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였는데, 이렇게 노래를 부르며 내게 말했다. ‘자랑스러운 친구여! 어서 오세요. 내가 당신 손을 잡고 우리 사는 곳으로 안내할게요.’ 그 순간 나는 둘을 모두 죽였다. 만일 내가 그녀를 따라갔더라면 죽은 것은 나였을 것이다. 그녀가 나를 죽였을 테니까.
스피리돈 노인은 아름답고 젊은 여자로 보이는 암컷 엘크가 자기 집에 오라고 권유하는 순간 두 사람(두 마리)을 총으로 쏴 죽였다. 빌레르슬레우는 “인간이 아닌 동물에 (그리고 무생물과 정령 등의 동물이 아닌 것에까지) 인간의 인격과 동등한 지적, 정서적, 영적인 성질을 부여하는 이 일련의 믿음을 우리는 전통적으로 애니미즘이라고 명명해왔다.”고 말한다.
비가 와도, 날이 추워져도, 여전히 저는 매주 만화책방으로 출석하고 있습니다. 강남출판문화센터에는 다양한 장르의 오타쿠들이 있는데요. 그중 저는 ‘진격의 거인’을 담당하고 있어요. 올 9월엔 ‘진격거’ 성지인 오이타현 히타를 다녀왔고, 지난주엔 11월 8일 개봉한 「극장판 진격의 거인: THE LAST ATTACK」을 보러 도쿄에 갔다가 36시간도 안되어 돌아왔답니다. ‘진격거’의 전개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충격과 공포, 경이로움이란…… 이야기를 만드는 많은 창작자들에 대한 존경이 시작된 계기이기도 해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를 청중에게 전하는 예술가가 있지요. 우리나라의 판소리와 비슷하지만 ‘라쿠고가(落語家)’라 불리는 예술가가 홀로 무대에 올라 오로지 몸짓과 입담만으로 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일본 전통 예술, ‘라쿠고(落語)’의 존재를 알려 준 작품은 애니메이션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昭和元禄落語心中)」이었어요. 연기, 연출, 서사 등 모든 것이 굉장했던 깊고 진한 드라마였는데 원작의 국내 정발판이 없는 아쉬움을 「아카네 이야기」라는 만화가 달래 주고 있습니다.
주인공 아카네가 라쿠고가로서 최고의 경지인 ‘신우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성장 만화로, 오다 에이치로(원피스 작가)가 추천할 만큼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아카네가 자신을 라쿠고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그날’의 아버지의 라쿠고를 다시 마주하게 된 가장 최근 에피소드에서는 눈물콧물을 쏙 빼 버렸네요. 무엇이 저를 그렇게 울렸는지는 스포가 되므로 말을 아끼겠습니다. 남이 들려주는 이야기, 남이 그린 그림으로 이렇게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행복해도 되는 걸까요……. 다시 한 번 창작자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스티비 ‘발행인의 목소리로 듣는 뉴스레터’에
《한편》의 편지가 소개되었어요!👂
💌 세영 편집자님, 영화 <열 개의 우물>을 보셨군요. 저는 개봉 소식을 접하긴 했으나 아직 보진 못했어요. 우경화되고 백래시가 짙어지는 시대에 어떤 신념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 참 고민이 됩니다. 세영 쌤은 영화에서 어떤 것을 발견하셨는지요. 사회를 바꾸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면서도 보고나면 오늘의 나와 너무 다른 얘기라 막막해질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보러 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근래에 <급류>를 읽었는데 편지에서 보니 반갑게 느껴지네요! 저는 이런 소설을 읽을수록 피폐한 사랑이 참 아름답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러면서 새삼 사랑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걸 알게되요. 과연 바른 사랑은 뭘까요, 그런게 있기는 할까요?
💌 정대건 소설가의 <급류>가 역주행 베스트셀러 급류(…)를 탔다는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어요! 3년 전에 <아이 틴더 유>를 읽고, 정대건 소설가를 조용히 응원하고 있었는데 작가님이 정말 잘 되셔서 뭔가 뭉클하고 감동적이고… 그렇습니다. <열 개의 우물> 아트하우스 모모 씨네토크를 놓쳐서 아쉬움을 삼키고 있었는데요. 세영 편집자님의 소개를 듣고 나니 인디스페이스 씨네토크는 꼭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