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지난 레터의 책 추천이 좋았다는 따뜻한 피드백에 힘입어 한 권 더 추천해 봅니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연구자이자 비평가인 김서라의 『이미지와 함께 걷기』예요.
이 책을 만드는 동안 고향인 광주를 찾을 때마다 도시의 숨겨진 모습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흔적들을 조금씩 발견했어요. 학동의 오래된 골목에 누가 살았는지, 상무지구가 어쩌다 지금의 모양으로 지어졌는지, 그리고 그 모든 도시의 변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하면서요. 광주 하면 5·18, 무등산, ‘노잼 도시’가 떠오르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드려요. 지역에서 쓰는 지역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께도요!
이미지 비평이자 도시 탐구이고 기획자의 에세이인인 이 책은 각 부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른데요. 전부 재미있지만…… 더위와 밀린 일에 지친 지금 여성 노동자들의 함성소리를 함께 듣고 싶네요. “광주는 섬유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만든 도시”라고 도시의 기원을 다시 쓴 데에서 벅차올라요. 저자가 수집한 1930년대 신문 기사를 읽는 일도 재미있답니다.
광주 천정에 있는 전남 도시제사 공장에서는 여직공 500여 명이 지난 11일부터 12일까지 동맹파업을 단행하는 동시에 매일 아침마다 함성을 질러서 그 근방까지 소란할 뿐 아니라 형세가 자못 험악하였으나 회사 당국과 경찰의 제지로 지난 13일에는 취업하였으나 또 다시 14일에는 일제히 취업하지 않고 초지를 관철코자 항쟁하는 중이라고 한다.*
여성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고 매일 아침 함성을 내지르며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들은 대우 개선과 근무시간 단축을 이끌어 냈다. 처음에 공장 측이 거절했던 임금인상까지 결국 받아들여진다. 나아가 파업의 선동자들 77명 또한 서약서를 받아 두고 취업시키겠다는 지배인의 약속이 11월 18일 《동아일보》에 실린다.** 재미있는 것은 도시제사 공장에서 여직공들의 저항이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빠르게 흘러갔던지, 다른 공장에서도 덩달아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학동의 종연제사 공장에서 300여 여직공들의 파업이 일어났다.*** 도시제사 공장의 여공들이 파업을 일으킨 지 2주가 지난 11월 30일이었다.
(……)
수십 년 동안 수천, 수만의 노동자들을 고통에 몰아넣은 공장의 역사는 목포나 나주에 비해 큰 도시가 아니었던 광주를 대도시로 만든 중요한 자산으로 꼽힌다. 일제 때에는 도시제사 공장 외에도 약림제사 공장, 종연제사 공장이 각각 광주의 유동과 학동에 있었다. 목포항까지 연결된 호남선이 1922년에 생긴 이후 대형 섬유공장들이 광주에 들어섰고, 이는 광주가 지금과 같은 대도시가 된 기반이었다. 그렇다면 광주는 섬유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만든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광주 도시제사 공장 오백여공 총파업, 《동아일보》, 1932년 11월 16일.
** “별항 보도한 바의 광주에 있는 도시제사 공장의 여공 동맹파업 문제로 환산지배인은 왕방한 기자에게 대하여 직공들이 요구한 세 가지 중에 두 가지는 들어주기로 하였으며 임금 문제만은 회사가 십여만 원의 결손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제사공장에 비하여 우리 공장이 헐한 것이 아니니까 들어주지 못하였소이다. 그럼으로 직공들도 잘 량해하고 전부 취업하였으되 이번 사건의 선동자 칠십칠 명만은 아직 취업치 아니하였습니다마는 내일쯤은 전부 취업할 줄로 생각합니다. 희생자는 한 명도 내지 않겠사오나 칠십칠 명에게는 후일을 위하여 서약서만을 받아 두고 취업시키겠습니다.” 「환산지배인담」, 《동아일보》, 1932년 11월 18일.
*** “이십육일 광주군 지한면 홍림리에 있는 종연방직회사 제사공장에서는 삼백여 명 여직공이 동맹파업을 단행해 버렸음으로 회사 당국에서는 창황망조하여 즉시 광주경찰서에 보고하였음으로 심석 고등계 주임 이하 다수 경관이 현장에 출장하여 진압하였었음으로 문제는 무사히 해결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과 같이 삼백여 명 직공들이 동맹파업을 단행한 이유를 듣건대 십여 일 전에 도시제사 공장에서 직공 오백여 명이 동맹파업을 단행하여 임금을 인상하였다고 한즉 우리들도 파업을 단행하고 임금을 인상하도록 투쟁하자고 하는 문제로 여러 날 동안 의논을 해 가지고 그와 같이 파업을 단행하였다고 한다.” 「종연제사서 삼백여공 파업」, 《동아일보》, 1932년 11월 30일.
지난 일요일에 지하철을 타고 인천 배다리마을에서 열린 15분 연극제에 다녀왔어요. 공항이 아닌 인천에 가기는 처음인데요. 배다리마을 일대를 걸으며 오래된 동네의 지형과 건축물을 활용한 연극을 보는데 무척 즐거웠어요. 육교와 배다리, 공사장 가림막, 오래된 건물들이 연극 무대가 되는 거예요. 배우들의 대사 사이사이로 기차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끼어들고요.
연극이 끝나고 동네를 걷는데, 오래된 것들을 없애 버리지 않고 조금씩 바꿔 가는 작은 활동들이 오랫동안 분주하게 일어났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당연히 『이미지와 함께 걷기』가 또 생각났고요, 광주와 인천뿐 아니라 여러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사라지는 것과 새로 만들어지는 것들을 잇는 활동들을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덥지만 몸을 움직여 봐야겠어요.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제인 제이콥스의『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을 다시 제대로 읽어 봐야지 다짐하기도 했네요.
친구의 친구를 알아가듯이, 친구의 고향을 알아가는 일도 뿌듯한데요. 세영 편집자님과 함께 김서라 연구자를 만나러 광주에 방문했을 때, 익숙한 곳에서 손님을 맞이하시던 그 여유가 떠올라요. 밤에 충장로의 한 이상한 술집에 들어가서 제가 서울 촌놈으로 몰아질 때 옆에서 빙긋이 웃고 있던 선생님의 모습도요. ?
“우리가 보고 들은 광주와 전남의 이미지는 여전히 과거의 영향 속에 있다. 도시와 시골의 위계화된 질서는 반복해서 재현되어 왔고, 지방과 시골, 자연의 공원화된 이미지는 그 질서를 내재하고 있다. 다만 그 가운데 오종태의 사진에서처럼 예기치 못한 이미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 우연한 이미지만큼의 희망이 존재한다. 그 희망은 광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김서라, 『이미지와 함께 걷기』, ‘들어가며’ 중에서)
그날 광주를 걸으면서 이 아름다운 서문의 뜻을 비로소 이해할 수가 있었죠. 역사기념관에서 느끼는 위화감과는 달리, 길거리와 광장에 숨어 있는 이야기가 점차 내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미지와 함께 걷기』와 함께 다음에 방문하고 싶은 곳은 안동시에서도 일직면. ?♂️소설가 정지아가 쓴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를 읽고 어릴 때 봤던 권정생 이야기를 다시 찾아봤는데요. 아프고 가난하게 평생을 살았던 선생이 안동의 정신문화에 비로소 소수자의 전통을 더한다는 지역의 비평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최근 발굴된 ‘안동 춘향이’ 버전 또한 충격적이구요.
나마 나마 청춘 나마
춘향이 나는(나이는) 십팔세요
생일은 사월 초파일이요
오늘 저녁 재미있게 놀아봅시다.
춘향아 일어나라
춘향아 팔벌려라
이동령 왔다 춤춰라
이도령 왔다 춤춰라.
6.25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겨울밤이면 마을 처녀들이 한데 모여 즐기던 춘향놀이의 노래이다.
십팔 세 나이로 불쌍하게 죽은 춘향의 넋을 불러내어 이도령과 함께 춤을 추게 하는 오구풀이 같은 애틋한 놀이이다.
남원의 성춘향이는 살아서 어사가 된 이도령과 행복하게 만났는데 안동 춘향이는 왜 죽은 것으로 되어버렸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사또님께 시달리다 옥에서 죽었다고도 하고 스스로 칼을 입에 물고 자결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춘향이뿐만 아니라 안동 지방의 민담이나 전설은 모두가 절망스럽도록 슬픈 이야기로 되어 있다.
『이미지와 함께 걷기』가 드디어! 동료가 오래 고심해 만든 책이 출간되었다니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입니다. 더불어 작년 초 세영, 새벽 편집자와 함께 광주를 방문한 추억이 떠올라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너무 컸고…… 도심이 평탄하고 광활해 역시 광주는 광역시라는 걸 실감한 날이었어요(어느 지방 도시 출신 시각)…… 숙소를 찾아 광주천을 한없이 따라 걸었고……
그보다 사오 년 전 나홀로 여행으로 광주송정역 주변을 잠시 들른 기억과, 세영의 안내 그리고 김서라 선생님이 수집한 광주 이미지 이야기를 두르고 걸은 광주 도심의 인상은 무척 달라서 아는 사람의 아는 곳을 다니는 재미란 건 이런 거구나, 생각했지요. 동료의 저자가 들려 주는 광주 이야기도 기대가 되어요.
여름간 두 분이 전국 곳곳을 다니는 동안 저는 영화관 정도에 출타하였는데요. 어쩌다 보니 두 달 연속 블록버스터 영화를 관람하였고…… 이 유명한 시리즈의 후속작에 갱신된 ‘유잼 포인트’랄지 볼거리는 분명 있었지만 뭐라 한마디 평이 어렵네요. 〈에이리언: 로물루스〉 쪽은 3분의 2까지는 아주 몰입해 봐서 좀 더 아쉬움이 남아요.
‘울버린은 왜 다시 나온 거지’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24년 전의 오리지널 〈엑스맨〉을 결국 다시 봐 버렸는데, 클라이맥스 전투가 뉴욕 앨리스 섬(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섬 바로 옆의 꼬마섬)의 기념관에서 시작되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히어로물의 스케일이 이렇게 작고 현실적이었다니! 그때만 하더라도 미국의 영향력이 더 살아 있던지라 케네디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두고 대국민 발표를 한다든가 미 의원이 뮤턴트 반대 법을 내놓는다든가 하는 설정이 스토리의 중심을 제법 잡아 주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결국 디즈니사로 합병된 평행 우주(2024 디즈니 IP 버전)의 울버린은 이제 무엇에 기대야…… SF 크리처 영화는 어느 서사에…… 이런 저의 꼬꼬무에 공감하신다면 『이미지와 함께 걷기』 다음 책으로 『이미지란 무엇인가』를 추천드릴게요. ?
??️ 저는 페미니즘이 당연한 사회적 반응이고 필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낙태 및 임신중절권 이슈에는 공감이 잘 되지 않아요. 저는 출산 경험자이고, 태아는 생각보다 일찍부터 나와는 다른 독립된 개체의 모습을 보이거든요. 5주차부터는 심장박동을 측정할수 있고, 13주차에는 손가락, 발가락, 척추, 뇌, 콧등 등이 생성된 ‘사람‘ 형태로 자궁 내에서 움직이며 활동하는 모습을 볼수있어요. 여성만 책임을 지는 현재 상황이 매우 부당하고 낙태가 허용되어야 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지만, 태아가 여성의 몸 안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서 태아의 생사를 여성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으로 좌우할수 있다는 주장은… 모르겠어요. 외부로 나오면 생존할수 없겠지만 엄연히 말하면 내 신체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르 귄의 경험과 서술이 심정적으론 이해도 되고 지인이라면 응원해줬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과로서 끼워맞췄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결국 사회적 합의와 책임 분배의 문제가 아닐까요. 피임에 대한 교육이 부족했다면 교육 주체인 국가도 책임을 져야하고요. 상대 남성은 말할것도 없고요. 개인의 정의와 선택에 기대기는 어렵고, 예상치 못한 출산에 따르는 신체적, 사회적인 변화의 충격을 (심지어 비가역적이죠) 국가차원에서 완화시켜줘야 할 것 같아요.
??️ 어슐러 K.르귄이 자신의 임신중절 경험을 고백한 적이 있는지 몰랐네요. 이런 용기있는 고백들에 세상의 제도가 조금씩 바뀌어나가는 것이겠지요. 넘쳐나는 에세이들 가운데 어떤 사적인 이야기가 더 필요한지 늘 생각하게 되네요. 메일을 읽는 동안 잠시지만 숨이 확 트이는 경험을 했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아 지난번 <떠오르는 숨>과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책 추천도 정말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