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길을 잘 찾으려면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8월이 정말이지 코앞이네요. 저는 지금 이래저래 미뤄지는 마감에 고통받고 있어요……. 어서 마감을 하고 다음으로 가고 싶네요! $%name%$ 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휴가 계획은 세우셨는지 궁금해요. 
외출할 엄두가 좀처럼 나지 않는 덥고 습한 날씨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밖에 나가 공연을 하나 보고 왔어요. 탈북 브로커의 여정을 담은 연극 「당연한 바깥」이에요. 작품에는 남과 북의 경계를 수없이 오가는 사람, 국가의 경계 바깥으로 밀려나 끝내 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 남북 사이에 뚜렷한 경계가 있다고 믿었다가 흐릿한 경계 위에서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연극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우리를 바꾸는 우리』 12장 「경계를 끌어안는 헌법」을 다시 펼쳤어요. 「당연한 바깥」의 이양구 작가는 전작 「당선자 없음」에서 1948년 수립된 ‘우리나라’의 모호한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북한은 우리인가 타자인가,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질문하는 대목이에요.
1948년 ‘정부 수립 기념 표어’ 현상 공모가 있었다. 응모작은 모두 4353편이었고 1등 당선작은 없었다. 2등을 한 작품은 “오늘은 정부수립 내일은 남북통일”이었다. 이 표어는 남한만의 단독정부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냈기 때문에 1등이 될 수 없었던 것일까? 표어에 따르면 정부 수립은 미완의 과업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통일이라는 과제를 남겨 두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나는 이 사례와 질문을 연극 「당선자 없음」을 통해 접했다. 극작가 이양구는 작가노트에서 ‘당선자 없음’이라는 제목이 해방 이후 통일된 나라를 만들지 못한 채 남한 단독 선거로 구성된 대한민국 정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말이라고 쓴다.
……
우리를 둘러싼 정체성의 균열은 오늘날 정치에도 영향을 끼친다. 북한은 우리인가 아니면 타자인가?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고 규정한다. 헌법은 대한민국만이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라고 말한다. 북한은 여전히 한국의 주권 지역을 점령한 ‘반국가단체’다.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이러한 헌법적 질서 아래에서 단지 통일을 지향하는 단계에서의 ‘잠정적인 특수 관계’(‘남북기본합의서’와 ‘남북관계발전법’)일 뿐이며 국가 간 관계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북한 주민은 헌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에 속한다.
현실은 이와 다르다. 1991년 남한과 북한은 동시에 UN에 가입하면서 회원국이 되었다. 또한 북한 주민이 남한으로 왕래하려면 ‘남북교류협력법’에 따라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북한 주민을 ‘잠재적인 국민’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2019년 정부는 탈북 어민 두 명이 밝힌 귀순 의사가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해 북으로 송환했다. 이 결정은 이후 정권 교체와 맞물리면서 극심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관련자 조사에서 탈북 어민들은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동료들을 살해하고 남하를 시도했다고 진술해 범죄 혐의를 받고 있었는데,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이러한 중대 범죄자의 귀순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들을 일반적인 탈북민과 구별하고자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국민의 지위도 난민의 지위도 부여받지 못한 채 북한으로 돌아가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근거는 역시 헌법이며 대법원도 북한 주민에 대해 대한민국 국적을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
이 사건은 북한을 바라보는 두 가지 엇갈린 시각을 보여 주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기원으로부터 파생된 국민과 비국민의 경계를 둘러싼 문제를 드러낸다. 남한과 북한이 국가 간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북한 주민의 지위는 미국에서 이민자가 지닌 것보다 훨씬 정치적인 성격을 띤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경우 법보다도 정치적 결정이 쟁점이 된다. 단순히 국경을 통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 조무원, 『우리를 바꾸는 우리』,
201~204쪽에서
「당연한 바깥」 프로그램북에 실린 작가 노트에서는 이 부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길을 잘 아는 가이드를 찾아나서는 마음은 《한편》의 키워드를 앞에 두고 필자를 찾아다니는 마음과 비슷한 것 같아요. 좋은 안내자를 만났을 때의 든든함과, 함께 헤맬 때의 지난함이 모두 떠오르네요. 
나는 극을 거의 마무리할 무렵 내가 (통상 좋지 못한 이미지로 여겨지는) ‘브로커’란 직업을 통해서, ‘길을 잘 아는’ 가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생각을 했다. 길을 찾는다는 것은 길을 잘 아는 가이드를 찾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가장 잘 안내할 수 있는, 자기만 아는 길이 있다. 그런 길은 처음부터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많이 다녀본 사람이 잘 아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주말에는 고 김민기 학전 대표를 추모하며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봤어요. 평생 무대 뒤를 지켜 온 사람의 삶을 증언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생이고 안내자였구나, 지금도 그렇다, 하고 생각했어요. 보이지 않는 자리를 지키는 일의 가치가 인정받는 시대는 이제 정말로 끝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도 했고요. 한편 무대 뒤를 자기 자리로 자처한 사람이 스스로를 내보이기로 결심한 순간들이 기억에 남아요. 유신 시대에 노동자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 ‘공장의 불빛’을 몰래 녹음해 유통하며 오직 자기 이름을 내건 순간이나, 유아원을 세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몇십 년 만에 자기 이름을 단 공연을 한 때요.
여러 어린이 공연을 만들었던 그는 공연이 상연되는 동안 공연장에 함께 있었다고 해요. 관객석에 앉은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아서요. ‘인구 국가비상사태’가 선언된 지금, 저출산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그럴 여유가 있는 어른들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아…… 세상을 떠난 김민기 선생을 생각하면서 힘을 냈다가 고꾸라졌다가 하는 중이에요. 이번에 새롭게 새기고 있는 노래 「아침이슬」에서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하는 소절…… 더위를 불평하지 않고 시련으로 여기는 마음가짐이 고귀한데요. 그렇더라도 기후 변화로 인한 이 더위는 상징이 아니라 실재 그 자체로 다가온단 말이죠. 너무 힘들어요.
세영 편집자님이 또다시 『우리를 바꾸는 우리』를 펼쳤듯이 저는 《한편》 ‘우정’ 호를 외우고 있는데요. 남과 북의 문제를 과감하게 초등 5학년 때 친구에 겹쳐서 본 그 한편의 글이요. 특히 “그 누구보다 많이 생각한 친구”라는 구절이 왜인지 입에 늘 맴도는데, 얼마전 집 근처에 오물풍선이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김정은을 생각하지만 도대체가 오리무중이에요. 남북 관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이 와중에 『내 친구 김정은』이라는 무시무시한 만화책을 발견해서 읽어 보려고 해요. 인류학 연구자 이경빈이 말하듯이 만약 “우리가 친구라고 부르며 아끼고 미워하는 많은 남들”이 바로 “적이자 나”라면, 문제는 구분선을 잘 긋는 게 아니라 이 ‘친구=적=나 합성체’로 뭔가 변화를 도모하는 거 아닐까요?(기획중독)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에 따르면 “합성체로서의 내 전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롭거나 이롭지 않게 변용될 수 있다”고 하니까요…….(모든 게 가능한 신나는 형이상학)

 

건강한 관계 맺기의 기술들이 말하듯이 모든 관계가 주체적인 사람이 되고 나서 가능하다면, 사람이 늘 껍질이 단단한 개인인 채 관계 맺는다면, 가장 먼저 ‘나’가 있고, 그와 독립된 ‘너’가 있고, 그다음에 ‘우리’가 있을 것이다. 둘 사이에 교환되는 일기장, 선물, 마음들은 이미 온전한 두 개별체를 접착시켜 ‘우리’로 만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친구라고 부르며 아끼고 미워하는 많은 남들은 적이자 나다. 김○○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그냥 무서운 기분이 된다. 억지로 친구라고 부르면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서, 혹은 지금 나의 성격을 설명하려면 꼭 필요해서 그 누구보다 많이 생각한 친구다. 끝내 부정하면서도 어떤 차원에서는 긍정할 수밖에 없는 누군가. 저 사람만 없으면 완벽한 나일 것 같은 그 존재는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 이경빈, 「남북 관계의 굴레에서」

《한편》 12호 ‘우정’ 144~145쪽 중에서

? 오늘 레터 너무 좋아요..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하루하루 부랴부랴 불 끄듯 보내다보니 다 잊어버리고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 날이 많지만 피하지 않고 내가 되는 연습 열심해 해봐야겠어요…! 워터프루프북 너무 기대됩니다ㅎㅎ
? 새로운 워터프루프 북 너무 기대되네요!!! 베트남 여행 갈 때 가져갈래요~~! 🙂
? ‘스몸비’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는 사람을 지칭해요. 미선 편집자 님은 ‘북콤비’시군요! 앞으로 일직선으로 걷는 연습을 해 봐야겠습니다. 수영에 능한 독자가 배영을 하면서 워터프루프북 읽는 모습도 머릿속에 떠올려 봅니다 ㅎㅎ
? 매주 편지의 글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읽으며, 곰곰히 생각하고, 반가워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야기를 건네주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눈 앞에 있는 발등의 불로 미루고 또 미뤘어요. 이번 워터프루프 북 이야기를 읽으면서, 진짜 여름이구나! 느껴졌고, 더위 속에서 <한편>팀 분들이 건강하기를,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의견 남깁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더위를 쫓기 위한 밤 한강 물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