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책은 다들 언제 읽으시나요?

 

 

책등만 바라봐도 전자파가 나온다
$%name%$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다들 컨디션 어떠신가요? 저는 여름휴가를 다녀와서 활력 넘치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튜브 타고, 액션 영화 보고, 놀이공원까지 갔어요. ? ‘자이언트 스플래쉬’라는 걸 타는데 다들 우비를 입고 있기에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 그냥 탔다가 물을 완전히 뒤집어쓰고 스트레스가 격파됐네요. 
책은 다들 어떨 때 읽으시나요? 저는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서 펼쳤어요. 세계 각지의 놀이공원에 관해서 찾아보다가 뭔가 그곳에 당장 가지 못한다면 좀 다른 마음의 위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름휴가를 위해 준비한 범죄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를 읽었어요. 미국인 톰 리플리의 유럽행, 교우관계 고민(파국), 범죄와 사치의 나날에 빠져들어 읽고 나니까 이제 월요일도 그냥 받아들이게 되는 효과가 있었네요.
출근하자 ‘일기들’에 관한 반응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교정의 요정』 리뷰 기사가 나와서 즐거웠구요! “시작부터 강렬하다. 이어지는 글들은 분노에 가득 찬 랩을 방불케 한다. 직설적이고 거침없다.” ? 동료들이 『지부장의 수첩』을 보고 재미와 의미와 위로를 얻었다고 쓴 인스타그램에서, 또 『호르몬 일지』를 읽고 나 자신의 호르몬 변화를 기록하겠다고 다짐했다는 이야기에서 힘이 났어요. 이렇게 감상을 들으면서 차근히…… 어서…… 만나서 책 얘기를 할 행사를 기획하고 있죠. 
《한편》 다음 호인 ‘독립’을 준비하면서는 정치에 관한 책들을 보고 있어요. 『젊치인을 키우고 있습니다』 『시민권』 『몰락의 시간』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등을 무차별독서 하면서 ‘이거 완전 사람 얘기네. 참 재미있다’ 하고 있습니다.(급격히 떨어지는 기획 해상도)
정치책들에서 눈에 띄는 건 반드시 등장하는 승리와 패배 이야기인데요. 일제로부터의 독립에 8월 15일이라는 분명한 날짜가 있듯이, 선거를 치르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승리 아니면 패배가 오는 거예요. 이건 철학과 문학에서는 실패가 긴 시간에 걸쳐 품고 있는 예감이거나 정신으로 극복되는 것이거나 뒤늦게 오는 평가인 것과는 다르네요.
『몰락의 시간』의 저자 문상철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함께 정치를 한 7년을 실패로 규정하고, 이 패배담을 책으로 썼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철두철미한 실화 패배담은 처음인데요. 엄청 웃다가(정치인들 대화 채록이 엄청나다는) 무거운 울림을 느꼈어요. 아래는 피해자 쪽 증인으로 선 뒤에 일자리가 없어지는 대목입니다.
인사청문회 이후 의원실에 들어온 직원들을 제외한 의원실 직원 대부분이 총리실로 옮겨 갔다. 내게는 총리실에 자리가 없어 데려갈 수 없다고 했지만, 이후 외부에서 인사들을 계속 충원해 총리실을 꾸렸다. 나만 홀로 의원실에 덩그러니 남았다. 나 역시 그동안 여러 외압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지켜준 총리에게 더 무언가를 요구할 수 없었다. 받아들여야 했다. 2020년 5월 31일, 여의도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의원실 짐을 정리해 총리의 개인 사무실로 옮기던 날, 함께 이삿짐을 나르던 이삿짐 사장님은 내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ㅎㅎ 이사했던 아저씨입니다 폭탄을 몸에 품고 항상 국회를 바라봤던 일개 국민입니다 이제 하루 일정 마치고 편한 맘으루 문자보냅니다 부디 보자관님처럼 솔선수범 변치 않기를~~ 그리고 저랑 국회회관에서 고생하신 분 꼭 기억해주시길~~ㅎㅎ”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 문자 한 통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세상의 끝만 같은 순간에도 내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부탁하는 분이 있었다.
― 문상철, 『몰락의 시간』, 207쪽에서
현실의 정치에서는 승리와 패배가 있고, 저자는 자신이 겪은 것을 패배담으로 기록했다는 것이 무척 엄중하게 다가옵니다. 패배한 쪽의 이야기, 초대받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 잊힌 이야기들은 많은 이들에게 전해질 ‘역사’가 되지 못하곤 하니까요.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소설 역시 이런 이야기인데요.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 시대 황금을 찾아 나선 수많은 이들이 고군분투 난장을 벌였지만, 누구보다도 더욱 힘들게, 하루아침에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10대 초반의 중국 이주민 고아 자매 루시와 샘의 분투기입니다.
대학교 때 수업 시간에 19세기 세계 각국으로 송출되었던 중국인 노동자, 쿨리(coolie)에 대해 잠깐 배웠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미국에서도 184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쿨리 노동자를 수입하여 농업과 철도 건설 노동자로 일하게 했는데, 노예나 다름 없는 혹독한 노동 환경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1867년이면 미국의 철도 건설 노동자 90퍼센트가 중국인이었다고 해요. 이처럼 ‘와일드 웨스트’에는 백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외에도 다양한 인종 구성원들이 존재했지만 영화나 소설로 이들의 이야기를 접한 적은 거의 없었어요. 때문에 가난한 중국인 가족의 큰딸, 10대 초반의 어린 여성인 루시가 자신의 이야기가 역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 장면이 무척 의미심장해요. 

“선생님이 엄마를 만나고 싶대요. 엄마도 대단한 분이실 거라고 했어요.” 마는 국자 위에 손을 얹은 채 동작을 멈춘다. 보일 듯 말 듯 얼굴을 붉힌다. “우리 가족 다 만나고 싶대요. 또 저한테 과외 수업을 해 주겠다고 했어요. 동부에 나에 대해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어쩌면 선생님이 다음번에 나를 데리고 갈지도─”

“마음에 안 든다.” 바가 말한다. 바도 스테이크에 손을 대지 않았다. 까맣게 탄 부분을 보며 얼굴을 찡그린다. “그 선생이라는 사람 뭘 하려고 그렇게 캐묻는 거지?”

“역사를 쓰고 계시대요.” 루시가 말하고 동시에 샘은 이렇게 말한다. “참견쟁이.”

“애들한테 어디에서 왔냐고 물은 게 뭐가 그렇게 나쁜 일이라고 그래.” 마가 말한다. “가오쑤워(告訴我, 말해 봐), 선생님이 또 뭐라고 했니?”

(……)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잉크로 적힌 역사였다. 루시의 손에 아직 잉크 냄새가 남아 있다. 그 냄새가 닭똥 냄새마저 덮어 버리는 것 같다.

─ C 팸 장, 홍한별 옮김,
헉, 두 분 재미난 책을 읽고 계시는군요! 한솔 편집자님 소개 덕에 『그 언덕에는~』이 중국 이주민 이야기인 것을 알게 되었어요. 미국 서부 개척 시대와 관련된 가장 강렬한 가상 이미지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인데, 콧수염을 기르고 중절모 쓴 다니엘 데이루이스와 전형적인 교회 청년 차림의 폴 다노(둘 다 백인남성) 얼굴밖에 떠오르지 않는군요. 아시아 노동자는 어디에……
여전히 마감 중인 저(사르트르와의 한 달 중)는 요즘 읽은 책 대신 일 책갈피를 놓고 갑니다. 새벽 편집자님이 언급한 ‘승리와 패배’에서 전자에는 《페미사냥》 사전 연재 무사 종료를, 후자에는 2주 뒤 시작이나 아직 정리가 한참 남은 ‘논픽션 여름 학교’ 참고 도서 무더기를 떠올렸어요.
(승리) 《페미사냥》 응원 담벼락 gif 이미지로 만들고 뿌듯해하기.
(패배) 사무실 옆 공간에 쌓아 둔 책탑. 전자파 퍼지듯 활자가 알아서 움직이길 기대하지만, 손에 쥐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논픽션 여름 학교는 저와 새벽 편집자님이 야심차게 준비한 한여름 행사로…… 7~8월에 두 달에 걸쳐 인문사회팀의 인기 신간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나르시시즘의 고통』을 함께 읽는 온라인 독서 모임이랍니다. 편집하는 틈틈이 철학과 사회학과 인류학과 과학 등 여러 분야의 곁가지 도서를 찾아 두었죠.
독.모 참여자 분들과의 ‘깊이 읽기’를 위해, 오늘은 1970년대 한국 여성의 의례를 연구한 로렐 켄달의 『무당, 여성, 신령들』부터 읽어보려고요. 손에 잡히는 대로, 재미있어 보이는 부분부터 접속해 가면 승리의 길에 도달할 수 있겠지요.?‍?️
 ⬇️ 미선 & 새벽이 준비한 논픽션 여름 학교 상세 정보는 아래 이미지를 따라가세요! ⬇️
앗,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 북토크가 2주 뒤라면, 『스피노자의 형이상학』 북토크는 다음 주예요!!!!! 여름 학교의 백미는 역시 방학으로 텅 빈 학교에서 만나는 여유가 아니겠어요. 바로 그곳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2024년 첫 번째 단독 학술 저서를 펴낸 김은주 교수님의 특강이 옵니다. ???
이 책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의 1번 덕후로서 여러 독서 모임을 기획 중이신 김강기명 선생님과의 질문과 대답이 포인트인데요. 스포일러: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생태 위기에 관해 스피노자와 라투르, 두 철학자 중에서 누가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가를 두고 심화 토론이 있을 예정입니다. 대선보다 재미있는 것이 바로 철학자들의 대결 아니겠습니까???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 고양이가 예뻐요 
고양이 사진 자주 많이 부탁드립니다
? 따뜻했어요.
세영 님과 한솔 님의 편지가 참 따뜻하고 좋네요. 책태기이지만 센의 회고록을 읽으며 힘을 내는 세영 편집자님, 아이를 돌보는 감각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해주시는 한솔 편집자님. 강건하시기를 먼 곳에서 마음으로 빕니다.
? 저도 북펀딩으로 구매한 선집이 이번주에 도착해서 더 반가웠던 편지입니다. 아직 읽지 못했는데 읽고 있던 책들(!) 정리되면 한권씩 꺼내어 읽어볼게요. 좋은 책 만드시느라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헤헤 쿨쿨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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