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일기들’ 표지 대공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나요!
텅 빈 편지함을 꽉 채워 주신 구독자 여러분의 사연에 행복했어요. 뉴스레터는 참 좋네요. 세영 미선 편집자님이 곡성을 다녀오는 동안 사무실을 지켰던 저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구요. 
시골살이 체험 ‘모하지’에 참여비가 없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곡성은 그렇게 차고 넘치게 받으면서 나도 내주는 현장이었군요! 함께 소개된 ‘커머닝’이라는 개념에 관해서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 주고받는 과정이 단지 의무감만이 아니라 보람으로 채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보람을 느끼는 방법이 뭘까? ‘독립’이란 ‘삶의 주권’ 되찾기인가? 공동의 탐구 주제가 세워졌어요.
사실 괴로운 사건 사고들이 많은데요. 일하면서 죽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괴롭고 외로운 마음으로 수요일 시작될 서울국제도서전을 기다리고 있어요.(지금은 화요일) 내일 처음으로 선보일 ‘일기들‘은 바로 그렇게 혼자 쓴 괴로운 일기들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는 강렬한 마음을 담고 있거든요. 한편의 편지 구독자 여러분에게 표지를 최초 공개합니다……
트랜스젠더에겐 거의 항상 가능한 모든 것들이 이렇다. 신체적으로 가능한 것과 원하는 것이 항상 다르고(트랜스젠더가 정확히 무엇이냐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기준 아닐까?) 원하는 것의 신체적 불가능에 의거해 그것을 원한다는 사실 자체를 배제해 버리고 오로지 항상 가능한 것들 사이에서만 선택하고 마는 것. 왜냐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신이 불가능한 것을 원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인지하고 상기하는 것, 그리고 애초에 원치도 않았던 가능한 것들을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원한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눈 돌림 없이 똑바로 마주하는 것, 이것들만큼 고통스럽고 비참한 것이 세상에 그리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섹스에 관해서 말하자면 트랜스젠더로서
‘내’가 원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에) 언제나 항상 별로 중요하지가 않다. 그저 (가능한) 상대방의 제안, 요구, 아무튼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그때그때 맞출 뿐이며 오직 그것만이 고려 사항이 될 뿐이다. (……)
호르몬을 맞는다는 것은 참으로 몸 안의 신경계 전체가 계속 이동하고 재조합되는 느낌이다. 뭔가…… 그런 변화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면서 생겨나는 어떤 유지, 감소, 증가, 또 이것들에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등등에 관한 많은 고민들이 있음. 어쨌든 그런 고민들이 향하는 곳은 항상, 내가 지금까지 나 자신에게 거짓말해 왔던 것들에 대해서 더 이상 거짓말하지 않게 되는 지점이다. 그것이 욕구든 욕망이든 판타지든 성향이든 페티시든 충동이든 기호든 환상이든 뭐든 간에 내가 원하고 바라고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이 내 몸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강렬하게 올라오고 느껴지는 것이라 이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거짓말이라는 거를 할 수 자체가 없다.

솔직해지는 것에 대해 얘기하자면 나는 지금 내가 솔직해지는 것이 좋고 더 솔직해지고 싶고 솔직해질 것이 더 없나 끊임없이 뒤지고 싶다. 그래서 내가 더 솔직해질 것이 영원히 무한하게 나왔으면 좋겠다. 근데 찾는 것에 비해서는 외적 자원은 이 분야에 대해 참으로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서 요즘 좀 척박하고 가난한 느낌……
아무튼……
그래도 피부랑 살결은 굉장히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워졌다.
거기다가 몸에 근육이 줄어들어서 힘없어진 거 체감할 때 참 어이가 없다. 무거운 거 못 들 때…… 이게 뭐냐…… 싶다. 웃겨서.
그리고 또 호르몬을 하고 나서 느낀 거는 그전까지 나는 정말 메마른 땅이었고 지금은 그나마 적당히 비가 오는……
― 영이, 「트젠과 선택」·「253일째: 8월 29일」,
『호르몬 일지』 중에서
기획 편지에서 지금까지 나눠 온 고민이지만…… 저는 일기를 출판하면서 독자들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계속 어려웠거든요. ‘이 글은 일기 같다’거나 ‘고민은 니 일기장에나 쓰라’는 등등의 의구심들이 있잖아요. 일기 출판이 ‘ㅇㅉㄹㄱ’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제가 찾은 대답은 ‘일기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서 쓴 일기들을 책으로 엮으면서 저자들은 그 시기에 자신이 했던 사회생활을 되돌아봤어요. 자기만의 방에서 쓰인 일기들의 사이사이를 채우는 건 바로 그가 늘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있었던 사건들입니다. 단지 혼자만의 감정이나 다짐이 아니라, 먹고살면서 겪은 사건들이 그 사람을 바꿔가는 과정을 책에 담았어요.
특히 세 책을 동시에 만들면서 저는 아주 짜릿했는데요. 서로 일면식 없는 세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그랬습니다. 세상 속에 존재하는 더 큰 연결을 발견할 때의 짜릿함, 뭔지 아시죠? 그런 새로운 앎의 순간이 세 책을 나란히 편집하는 동안 너무나 많았어요.  이것은 ‘일기들’이 소속된 탐구 시리즈의 묘미이기도 하죠. 이 책과 저 책을 병렬독서 하면서 더 커지는 재미와 의미……
500여일 간의 호르몬 대체요법 과정을 기록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호르몬 일지』, 박살^난 이 세계를 교정하고자 지옥에서 온 출판노동자의 『교정의 요정』, 연세대 한국어학당 노조 지부장의 비밀일기인 『지부장의 수첩』까지…… 일기들이 어떻게 통하느냐면 이런 식이에요. (수요일 도서전 북토크에서 『호르몬 일지』의 영이 작가님과 『지부장의 수첩』 최수근 작가님을 만날 수 있어요! 세 책은 금요일에 출간됩니다.)
변희수 하사가 사망하신 지 사흘 지났다. 민주노총은 돌아가신 바로 다음 날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의 제목 아래에는 “차별에 맞서 투쟁한 용감한 트랜스젠더들을 기억합니다. 살아서 함께 투쟁합시다.”라고 적혀 있다.
지부 앞으로 메일이 도착했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을 기리는 마음을 각 지부의 단체교섭에 담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다짐을 공개적으로 선언해 달라는 것이었다. 예컨대 각 사업장의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서 안에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문구를 담을 수 있었다. 하단에는 릴레이 선언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게시판 링크가 첨부되어 있다.
대학노조의 모범단체협약안에는 “남녀 평등과 모성 보호”라는 장이 있다. 나는 이 모범단체협약안을 참고해 우리 지부의 단체협약서 요구안을 작성 중이다. 우리 어학당에서는 아직까지 한 번도 단체협약서가 체결된 적이 없었으니 모범안에 적힌 ‘남녀 평등’ 부분을 우리 지부에선 ‘성평등’으로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제3의 성별에 이르기까지 성별의 다양성을 아우르려는 취지다.
성평등을 주장하는 것과 우리 조직은 성평등을 지향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 조직 안에는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구성원도 있을 것이다.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옹호하는 구성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직의 대표자로서 이처럼 나와 다른 입장을 묵살하고 나의 의견을 명문화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낀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는 해당 사안에 대해 조합원 투표를 거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한다. 내가 결정을 하고, 사후에 비난을 받기로 한다. 앞으로 나는 지부장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할 것이다. 특정 정당과 접촉해 지지를 요청한다든지, 시민 단체의 캠페인에 연대 성명을 발표한다든지. 그때마다 투표를 거쳐 조합원 전체의 찬반 여부를 묻는 것이 무책임하다고 느낀다. 우리 지부의 운영규정에는 반드시 조합원의 의견을 구해야 하며 지부장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들에 대해 분명하게 명시해 놓았다. 그 밖의 일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유를 누리면서 권한을 행사하기로 한다.
조합원 전체와 함께 원탁회의를 열고 만장일치에 도달할 때까지 토론을 벌이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한다. 단체협약서에 ‘성평등’이라고 적기로 한 결정은 지금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언젠가 결정이 늦어지더라도 조합원 전체 토론을 벌여서 방향을 정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 상황을 판단하는 일부터가 나의 책임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던 이 통쾌함의 정체는 뭘까. 기꺼이 ‘남녀 평등’을 ‘성평등’으로 수정 반영하는 동안, 나와 다른 의견이 있는 구성원들이 있더라도 우리 조직을 대표해서 나의 개인 의견을 관철하는 즐거움은. 이걸 ‘권력감’이라고 하는 걸까. 우리에게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더 가져야만 하는 경험. 아니면 단순히 내가 독선적인 대표자인 건지도 모른다.
― 최수근, 「2021년 3월 6일」,
『지부장의 수첩』 중에서
여전히 ‘일기’를 생각하면 친구에게 질문을 받고 당황했던 날을 떠올리게 돼요. 저는 투두메이트라는 일정 관리 어플에 일기를 쓰곤 하는데요. ‘빡쳐서 싸지르는’ 욕을 봐도 상관없을 가깝고도 적당한 거리의 친구 다섯 명……만이 제 일기(욕)를 볼 수 있어요.
대체로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한 친구에게 너도 내가 볼 수 있는 일기 좀 쓰라고 했더니 순수한 눈빛으로 “왜 일기를 남한테 보여 주는 거야……?”라고 질문하던 그날 남에게 보여 주는 일기는 일기가 아니게 되는 걸까요? 원래 다들 비밀일기장 하나씩 가지고 사는 건가요? 물론 그 친구도 지금은 저를 위해 억지로나마 가끔씩 일기를 써 주고 있답니다. 서로를 연결 짓는 ‘일기들’. 비밀일기장을 가져 본 적 없는 저는 친구와 연결되고 싶어서 일기를 쓰는 걸지도요. 
그러고 보니 주말마다 다니는 만화책방(놀러오세요)에서 야마시타 토모코의 『위국일기』를 읽기 시작한 게 도서전에 선보일 ‘일기들‘ 디자인 작업 착수 시기와 비슷하네요. 소문은 익히 들었으나, 만화를 좋아하는 기현과 화진이 읽었다길래 안심하고 집어 들었어요. 동갑이지만 저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마키오를 들여다보면서 찬찬히 인물들에 집중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누가 봐도 상관없다는 듯 일기장을 식탁 위에 펼쳐 놓는 조카 아사와 남이 보면 어떡하냐며 잘 덮어 두라는 이모 마키오….
마키오 ―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아사 ― 일기?
마키오 ― 일기. 앞으로 누가 네게 무슨 말을 하는지, 누가 무슨 말을 하지 않았는지. 네가 지금 뭘 느끼고 뭘 느끼지 않는지.
아사 ― 일기는 나팔꽃 관찰일기나 여름방학 일기밖에 써 본 적 없어요.
마키오 ― 일기는 지금 쓰고 싶은 걸 쓰면 돼. 쓰고 싶지 않은 건 안 써도 되고. 사실을 쓸 필요도 없어.
아사 ― 일기인데요?
마키오 ― 일기니까.
 미선, 화진이 편집한 도서전 카탈로그 표지도 함께 공개
민음사 출판그룹 편집자들이 포부와 꿈을 밝히는 글을 특별수록했으니 꼭 확인해 보세요!
–  곡성 농활 모객이 안되었다는 사실에 놀랐고(농활 후기를 기대했던 ㅠ), 김선기 연구자의 ‘세대 탐구’ 책이 가을에 나온다는 소식에 반가웠어요. <한편>의 다음 주제가 ‘독립’이라니..! 수도권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삶을 산지 반년 조금 지났는데요. 그동안 자취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몇 번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경제 논리로 자취를 선택하지 않고 있는데 단순히 거주지가 아닌 삶의 방식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독립이라면… <한편 15호: 독립>을 읽고 차근차근 생각해 봐야겠어요!
– 곡성 무산 소식에 눈물을 광광 흘려 ..,
너무 사랑하지만 곡성이라는 먼 곳까지 갈 용기까진 내지 못한 사랑 한 장을 우체통으로 보내요..(하트)
– 커머닝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잠깐 곡성에 다녀온 듯이 텍스트와 사진으로나마 즐길 수 있었습니다. 다음 한편도 기대하겠습니다 ^^
업무 이메일, 고지서가 가득한 메일함에 가벼운 이야기들도 자주 던져주세요. 앞으로도 꾸준히 발행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편집자님들 도서전 준비하시느라 바쁘시겠지만 틈틈히 쉬는 거 잊지 마셔요! 🙂
– 곡성 탐방 모집 글 보고 직장인이라 참여할 수는 없지만 다른 분들이 올리실 후기가 기대됐었는데 인원 미달로 취소되었다니 슬픈 소식입니다 ㅠㅠ… 신청했었던 분들도 실망하셨겠지만 곡성 탐방을 기획했던 직원 분들의 실망이 너무 크지 않길 바라요 ㅠㅠ!!!!! 가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안 맞은 사람이 엄청 많았다!!!!!구요
쉼 관련 편지들을 받다가 한편-쉼 이 너무 궁금해서 따로 한 권 사서 읽었습니다! 쉼이라는 주제에 나만 방황하는가 생각했는데 현대인들이라면 다 비슷한 고민이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묘한 위로가 되더라고요. 아직 정기구독은 안했지만 … 레터로 받는 한편도, 한 권의 책으로 엮인 한편도 정말 좋았어요! ‘텅 빈 편지함’이라는 문구를 보고 일부러 편지를 보내요! 더운 여름 조금이라도 힘이 되길 바라면서 ㅎㅎ 
– 쉼을 읽기 전 기대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만족도 높게 쉴 수 있느냐, 라는 것이었고 읽고 나서는 나는 과연 쉴 때 어떤 창의적 혹은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있을까로 바뀌었어요. 그리고 바질 모종을 들였습니다. 자급자족하는 농부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런 노동은 얼마든지 나에게 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터뷰와 수다, 서간문 형식의 글까지. 앞으로의 한편이 더 기대되는 ‘쉼’이었어요. 
– 생각해보지 못한 분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 유익하고 기뻤어요! 편지의 존재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받을 때마다 설레고 뉴스랑은 또 다른 결로 제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예쁘고 멋진 말로 응원을 드리고 싶은데 말주변이 없어 아쉽네요 ㅎㅎ 다음에 곡성 방문처럼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꼭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다음 편지도 기대하고 있어요 😀
– 개인적으로 커먼즈에 대하여 알게 되어 약간 감동적이었다. 특히 우리 사회가 꼭 회복해야할 것으로 <대화, 사랑, 우정, 친밀감>같은 것들이 회복될 때 함께하는 사회가 만들어질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지금의 상태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다만 소개하는 책을 아주 조금만 읽는 내 자신의 게으름이 문제라면 문제인 것 같아요!
서울도서전에 부재하는 시골개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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