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아름다운 초여름의 특별한 행사

곡성에 가자!
며칠 내내 날씨가 좋네요. 특히 출근하는 평일에 날씨가 좋은데요.(아직도 잊을 수 없는 비 오는 부처님오신날) 오늘 아침에 강을 건너 출근하면서 새로운 새소리를 들었습니다. 깍깍대는 까치도 아니고 꽥꽥 오리도 아닌 호롱거리는…… 무성해진 나무숲에서 들리는 소리였는데요. 소리의 정체를 스마트폰으로 알아보는 방법이 있을 듯한데 역시 찾아보지는 않았어요. 다음에 강으로 내려가 봐야지 하구요.
《한편》 ‘쉼’ 호에서 배운바, “자연과 상호 조응하는 리듬”(130쪽)이 사람을 자연스럽게 살게 하잖아요. 강가에서 산책을 하고, 바다에 가서 유람선을 타고, 산에 가서 산채비빔밥을 먹는 일들은 하지만 ‘기르기’만은 계속 미루는 저는 편집자들과 함께 오랜만에 농촌활동을 기약하고 있답니다. 바로 ‘쉼’ 호에서 소개해 드린 밭요정 연어 님을 만나러요! 전남 곡성에 있는 항꾸네협동조합과 함께 낮에는 밭일을 하고, 밤에는 《한편》을 읽는 시간에 뉴스레터 구독자님을 초대합니다.(몇 자리 남지 않았어요!)
편집자들과 농활을 떠나는 역대급 한편 행사에 초대합니다
만약 충분히, 푹 쉬었다면 이제 무엇을 하고 싶나요?
연어: 밭에 가고 싶어요. 밭살림은 저에게 휴식이기도 하고 노동이기도 해요. 제 밭은 인적이 드물고 느티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깊은 숲처럼 고즈넉해요. 저는 밭이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신성한 공간이라 여기고 있어요. 쉬는 중에도, 충분히 쉬고 난 후에도 몸과 마음은 밭을 향해 있어요.
― 연어×채효정,
「농사짓기에서는 뭐가 일이고 뭐가 쉼일까?」,
지난 레터에서 기약했듯이 「퓨리오사: 매드 맥스 사가」를 한 번 더 봤어요. 두 번째로 보니까 그냥 다 이해가 되는 것 같은…… 영화의 메시지를 그냥 다 받아들이고 싶은 느낌이었네요. 나도 퓨리오사처럼 3분 좌절하고 갈 길 가야지. 나도 퓨리오사처럼 복숭아나무를 심어야지. 나도 퓨리오사처럼 운전을……에서 멈췄지만요.
영화를 다시 보면서 감독 조지 밀러가 호주 사람이라는 걸 의식하게 됐어요.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보여 주는 지구별 중에서도 호주가 영화의 배경인 거더군요. 1979년에 처음 「매드 맥스」를 찍을 때는 돈이 없어서 맬버른을 성에 차게 촬영하지 못하고 사막에 가서 찍었대요. 그 사막이 황무지의 상징이 되었다가, 이제 다시 황폐한 지구 그 자체로 보이게 된 과정이 인상적이네요.
마침 호주에서 태어난 해나 개즈비의 책도 보면서, 호주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호주 사람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요. ‘나네트’라는 쇼로 대박을 터뜨린 스탠드업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 말이죠. 관객을 압도한다는 이 쇼를 아직 틀지 못한 채로 책부터 보면서…… 도서전에 선보이고자 지금 한참 편집하고 있는 ‘일기’ 시리즈를 위한 용기를 얻었어요. 해나 개즈비는 모든 문장에서 산만한 채로 자신이 얻어낸 진실을 말하면서 유머로 그걸 객관화하는데요. 이 유머가 바로 《한편》의 다다음 주제이기도 하죠.(또다시 시작된 1년간의 기획)
“엄마에게 ‘나한테 자폐가 있다’고 말했을 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구나. 이제야 이해가 되네. 나도 네 안에서 많은 게 돌아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 그런데 너의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어. 너는 캔으로 된 콩 통조림인데 내가 가진 캔따개로는 열 수 없는 느낌이랄까.’ 굉장히 깔끔하고 선명한 비유가 아닐 수 없는 것이, 우리 엄마는 콩 통조림을 싫어한다.”(해나 개즈비, 노지양 옮김, 『차이에서 배워라』 413쪽 중에서)
저는 해나 개즈비를 호주 드라마 「플리즈 라이크 미」에서 처음 봤어요. 20대 초반의 조쉬와 그의 친구, 가족, 주변 인물의 일상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를 무척 사랑했는데, 지금은 볼 수 있는 플랫폼이 없네요. 너무 아쉬워요. 해나 개즈비는 조쉬의 엄마가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알게 된, 우울증에 걸린 레즈비언 친구 해나로 나와요. 또한 주연인 조쉬를 맡은 조쉬 토마스와 함께 20개의 에피소드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대요. 배역들의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드라마의 모든 캐릭터엔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오프닝 시퀀스에 매번 집에서 요리를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참 좋아했어요. 외식할 돈이 없다는 것도 중요한 문제고, 약간은 지겹지만─그래도 사 먹는 것보다 훨씬 덜 질리는, 집에서 내가 만드는 요리의 느낌이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분위기 그 자체거든요. 
여기까지 쓰고 점심을 먹고 왔는데, 마침 제 책상 위에 놓인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와요. 프랭크 오하라의 『점심 시집(Lunch Poems』. 오하라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점심 시간 동안 타임스 스퀘어를 산책하고 그날 가장 좋아하는 식사를 하면서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하대요. 그의 시는 시인과 함께 산책을 하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는데, 어떤가요? 아래 시를 읽으면서 저도 점심 시간에 잠깐씩 회사의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가 떠올랐어요.  
12시 10분 뉴욕 나는 의문을 품고 있다
노먼과 만나기로 한 점심 약속 전까지 제시간에 이걸 끝낼 수 있을지
아 점심! 난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
끔찍한 숙취 때문에, 그리고 주말이 다가오고 있다
(……)
하지만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살짝 취하는 건 좋은 일이다
스스로가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궁금해하면서
그리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결정이 그것뿐이었는지 궁금해하면서
─ 프랭크 오하라, 송혜리 옮김,
「노먼에게 작별 인사를, 조안과 장 폴에게는 아침 인사를」 부분,
『점심 시집』 중에서
아아, 새벽 편집자님이 웬일로 호주에 반응을 하나 했더니 이미 편지에 사연이 소개되어 있었네요.「퓨리오사」 촬영지가 호주라는 정보에 저는 당장 호주 인구가 얼마나 되지? 하는 궁금증부터 들었어요.(대체로 현실 수치부터 시작하는 편) 그래도 개척의 역사가 있으나 한 7000만 명은 되려나 했던 것이 무색하게… 저는 올해 모종의 이유로 무조건 호주에 갈 작정인데요. 새벽 편집자님에게 영업되어 오는 휴일 영화 속 호주를 먼저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연달아 마감을 치른 후 이러저러한 콘텐츠를 뒤적였지만 이번 주는 마땅히 여러분께 추천할 만한 것이 없어요. 대신 초여름 한편이 기획한 새 뉴스레터 소식을 놓고 갑니다. 《한편》 2호 ‘인플루언서’에 「#피드백 운동의 동역학」을 실었던 여성학 연구자 이민주 선생님이 이번 주 금요일부터 ‘젠더와 온라인 정치’ 탐구 뉴스레터 연재를 시작해요. 키워드는 #넥슨성우교체사건 #집게손논란 #서브컬처 #백래시. 혹시 이 중 관심 있는 것이 있으실까요?
이번 연재는 뉴스레터라는 매체 특성을 활용해 독자들의 감상을 실시간으로 남길 수 있는 담벼락 페이지를 만들고, 이번 달 말 열릴 도서전에서 출간 전 수다회도 개최하려고 해요. 게임계를 중심으로 불거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사건의 세부가 궁금한 분이라면 구독과 참여를 권합니다!
  • 7월 21일(목) 업데이트 예정인 신규캐릭터 ‘티나’의 성우가 오늘(7/19)부로 교체됩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클로저 여러분의 우려 섞인 의견들을 확인하였고 업데이트를 며칠 앞둔 상황에서, 급히 성우 교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 2016년 7월 19일 게임사 ㈜넥슨코리아 산하 나딕게임즈의 게임 〈클로저스〉 공지 중 일부

  • 회사 측에서 모든 직원분에게 누누이 부탁을 드렸던 단 한 가지 당부사항이 있었습니다. 개인이 SNS로 어떠한 의견 표출이나 활동을 하더라도 상관은 없으나, 사회적 논란이 생길 여지가 있는 개인 SNS 계정이 회사와 연관될 가능성만큼은 없애달라는 것이었습니다. (…) 재차 주의를 드렸던 사내 규칙에 대해 위반이 발생한 건이기에, 논란이 된 직원분과 계약은 종료될 예정입니다.

    ― 2023년 7월 25일 게임사 프로젝트문의 게임 〈림버스컴퍼니〉 공지 중 일부 
이 똑 닮은 두 공지 사이에는 7년의 세월 차가 있다. 하나는 2016년, 다른 하나는 2023년 7월에 게시되었는데, 내용은 둘 다 게임사가 남성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여성 노동자를 해고하겠다는 결정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논란’의 주제를 명시하기조차 두려워하는 공지와 함께 무고한 여성들이 일자리를 잃는 일들이 그사이에도, 이후로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어떤 여성이든 옭아매 처벌할 수 있는 마녀사냥의 죄목이다. 페미니스트 여부가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고, ‘페미’ 딱지가 붙은 여성이 조리돌려지고 공격받으며 사회경제적 자원을 박탈당하는 일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듯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일들에 매번 새삼스럽게 충격받고 화가 나며 무엇보다 비통하다. 그래서 이를 문제 삼아 해석하고 그에 저항할 언어를 만들고자 최근 몇 년에 걸친 페미니스트 낙인화의 역사성을 연구했고, 이 글을 쓴다. 언제나 있어 온,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고 싶지는 않아서. 
「1화: 페미사냥이 시작됐다」 중에서
– 이번 편지 너무 재밌었어요..!!! 근데 저도 매드맥스 사가 어제 봤거든요~!!!!!!!!!!!!!!!!!!!!!!!!! 저도 다 좋았는데 긴 머리를 보고 잠시 몰입이 깨졌었는데 .. 그 복합적 토론 함께하고 싶습니다……………………….끼워주세요………………. (-마케팅부 다은-)
– 생각보다 짧아(?)서 아쉬웠다고 했던 독자입니다… 오늘에서야 후기를 남기네요. 왜 안오나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스팸메일함에 들어가있더라고요 ㅠㅠ 분명!!! 연락처 등록하고 재분류까지 해두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2개를 연달아 보게 되어 또 한편으로는 ㄱㅇㄷ…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아주아주아주 풍성한 레터에 풍성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독자들의 감상도 함께 공유할 수 있어 다같이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느낌인 것 같아요!
‘쉼’에 대한 기획인데… 생각보다 짧다고 해서 다들 표지처럼 불태우시진 않았는지 걱정됩니다.. 보내고 나서 아차 싶더라고요.. 민음사의 한글자라도 더 갖고 싶은 애독자의 철없는 사랑표현이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라며… 늘 잘 보고 있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총총총
– “‘쉼’ 호가 남긴 소중한 교훈: 내가 쉴 때나 남이 쉴 때나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일정을 조정한다.”
이마를 탁-치고 다시 한 번 깨닫고 갑니다.
바쁜 와중에 휴가를 떠나는게 미안해서 노트북을 챙겨가기도 하고, 심지어 결혼식 당일 오전까지 업무 관련 연락을 받았던 과거의 저에게.. 미안한 마음과 심심한 사과를 건넵니다.
쉴 때는 확실하게 쉬는 것이 좋다는 걸 뒤늦게나마 깨달아서 최근에는 업무용 휴대전화를 분리할 계획도 가지고 있고, 점심시간의 휴게시간도 10분이나마 스스로 챙겨주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요즘 저의 점심도서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다산초당) 추천하고 싶어요.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표지가] 활활 태워지는 나같다.
아직 받아본지 3.4번 정도라 개선점은 잘 모르겠고 독자편지 같은게 있으니깐 옛날잡지 같운 느낌이 들어사 좋은거 같아요.
ㅠㅠ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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