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족의 부탁으로 난생 처음 동물과 동거하는 시간을 가져 봤어요. 설레는 마음이 5 정도라면 내가 뭔가 잘못하지는 않을까, 동물 친구들의 서식지를 침입해 심기를 거스르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10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평소보다 5 무거운 상태로 동물 친구들을 돌보고 있자니 어느새 한 녀석이 아침저녁으로 반갑게 몸을 부벼 옵니다. 저란 존재를 조금은 받아들여 준 걸까요?
여러분에게는 가까운 동물 친구가 있나요? 이번 《한편》에 실린 영장류학자 김예나 선생님의 글은 동물과의 특별한 교감을 전합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인지행동학 전문가는 국립생태원의 초대 원장이자 최근 유튜버로도 맹활약 중인 최재천 교수일 텐데요. 최재천 교수의 제자로 해외 영장류 연구소에서 침팬지, 오랑우탄을 직접 연구한 새로운 세대의 학자들이 차츰 국내에서도 활동 반경을 넓혀 가고 있어요.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종인 영장류를 대하며 인간과 동물 모두에 대해 새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털 고르기를 하는 시간」은 인간과 같고 다른 동물의 우정에 관한 생각 거리가 담뿍 담겨 있어요.
동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비인간동물을 의인화하거나 수치화할 수 없는 단어로 행동을 정의하는 것을 금기시했기 때문에 영장류에서 우정과 사랑에 관한 연구는 사회적 유대감(social bond)이라는 보다 중립적인 틀에서 혈연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를 구분하며 이루어졌다.
연구자들은 주로 서로 다른 개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지, 상대에게 털 고르기를 얼마나 자주 해 주는지, 무리 내에서 싸움이 있을 때 어떤 동료와 연대하는지를 살핀다. 가까운 동료의 존재가 영장류의 자손 수, 건강 상태, 수명 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기 위해서다. 연구 결과는 대체로 사람과 비슷하다. 친구(털 고르기를 해 주는 동료)가 많은 개체일수록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자손의 수가 많으며 오래 산다. 사회적 유대감이 단단한 동료가 많으면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확률이 높은 데다, 털을 골라 주는 것과 같은 유대 행동 자체가 개체의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침팬지와 보노보처럼 복잡한 무리를 이루고 사는 영장류에게 유대를 맺는 것은 특히 더 중요하다. 여기서 침팬지와 보노보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침팬지는 수컷 중심의 사회로 수컷 간의 연대가 중요하며 무리의 우두머리는 대체로 수컷이다. 반대로 암컷 중심의 사회인 보노보는 무리의 우두머리가 대체로 암컷이며 힘이 센 수컷이 공격하면 암컷끼리 연대해 싸워 이긴다.
암컷 중심인 보노보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격렬한 싸움의 빈도나 강도가 침팬지보다 적다는 것이다. 보노보는 무리 내 긴장감이 높아지면 서로의 생식기를 맞대어 비비는 ‘지지 문지르기(genito–genital rubbing)’라는 행동을 하며 싸움을 막고 긴장감을 낮춘다. 보노보의 문지르기 행동은 음식을 나눠 먹거나 싸움을 한 뒤 화해할 때, 긴장한 동료를 안정시킬 때 등 성별이나 나이와 관계없이 일상 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사랑과 우정을 구분하는 지점을 섹스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러한 관점에서 아무 경계 없이 수시로 섹스를 하는 보노보들을 보자면 사랑과 우정의 경계는 한층 모호해진다.
영장류학은 이번 호에서 꼭 다루고 싶은 분야였어요. 인간의 우정 이야기는 충분할 테니, 인간과 같고 다른 영장류에게서 새로 참조할 만한 지식을 얻고 싶었죠. 영장류 역시 ‘친구’가 많을수록 건강하게 산다니, 나의 교우 관계를 되돌아보게 되는 연구 결과예요.
눈에 띄는 차이도 있어요.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상대와 스킨십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사랑과 우정을 구분하는 강력한 기준 중 하냐죠(“걔랑은 그런 사이 아니야!”). 그런데 보노보는 긴장 상황을 완화할 때 스킨십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해요. 성별이나 나이와 관계 없이 말이죠. 사실 생각해 보면 친밀감을 위한 스킨십이란 인간 사이에도 사용되는 스킬이기도 한데, 왜 인간 사회와 보노보 사회는 너무나 다르게 느껴질까요?
다음 주 목요일 열리는 《한편》 세미나에서는 이처럼 인간과 같고 다른 우정의 장면을 살피며 우리들이 가진 사랑과 우정의 개념을 다시 살펴보려 해요. 동물의 의사와 감정 표현을 이해하기 위한 지식은 물론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와 잘 소통하는 꿀팁도 전해 주신다고 하네요. 《한편》을 구독 중인 분은 무료로 참가 가능하니 글을 먼저 읽고 참여하시면 더욱 좋겠어요. 오늘 레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에 실린 김예나 선생님의 인터뷰를 특별히 짧게 인용해 둘게요.
Q. ‘우정’이라는 주제를 처음 청탁받았을 때 어떠셨어요?
동물 행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주제에 관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제법 분명한 편이었어요. 동물은 사람과 같은 식으로 우정을 정의할 수 없다거나 우정의 경계를 명확히 나눌 수 없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다만 어떤 사례를 다룰 것인지, 어디까지 포괄할 것인지가 막연했는데요. 편집자님들과의 인터뷰로 글의 무게감이나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 나누고 싶은 사례가 좀 더 분명해져서 좋았습니다. 주제와 별개로 글 청탁이라는 면에서는 ‘논문 외의 글을 써 본 경험이 별로 없으니 글 쓰는 연습도 하고 돈도 벌자.’라는 마음이었습니다.
Q. 이번 한 편에 못다 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세요. 사실 이 글 쓰는 데 몇 시간 걸렸다, 편집자가 미웠다, 좋았다……
이 글을 쓰는 데는 사실 몇 시간 걸리지 않았어요. 평소에 하던 생각을 옮긴 글이거든요. 비하인드라면…… 얼마 전 오픈한 카페의 준비 기간과 마감이 겹쳐서 어느 시점에 ‘어떻게 못 쓰겠다고 편집자님께 말씀 드려야 하나’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것 정도? 막상 오픈을 하니 손님이 없어 글 쓸 시간이 생겼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상황을 이해해 주고 글이 더 잘 읽히도록 다듬어 주신 편집자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Q. 좋아하는 친구와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어요. 뭘 하고 놀고 싶은가요?
구르미랑 친구랑 같이 뒹굴거리면서 얘기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친구라면 뭘 하든 다 좋겠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편하게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Q. 나에게 우정이란? 어려운걸요? 다른 깊이로 우정을 나누는 생명체들이 너무 많아서요. 지금 당장 떠오르는 말은 ‘체하지 않고 맛에 집중하며 밥 먹을 수 있는 관계’입니다.
— 《한편》 12호 정기구독자 특전
‘한편 비하인드 스토리’ 중에서
아아, 너무 재밌는 비하인드 스토리의 일부네요. (《한편》 정기구독 지금 바 신청하시면 필진들의 인터뷰를 모두 볼 수 있습니다!) 김예나 선생님과 함께하는 한편 공개 세미나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어요. 참여자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요? 막상 세미나가 시작되면 점차 집중되면서 이야기는 저절로 흐르겠지만 말이에요.
(무언가 좋은 질문을 하고 싶지만 역시 잘되지 않아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자면) 저는 이 글 「털 고르기를 하는 시간」에서 강렬하게 제시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습성”과 “타고난 공감 능력”에 관해서 여러분과 함께 탐구하고 싶어요. 요즘 유행하는 표현대로 T 대 F의 문제인데요…….
김예나 선생님은 “선천적으로든 경험을 통해서든 자신이 상대방의 상황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상태일 때 공감의 가능성이 커진다”라고 공감을 확장하고 있잖아요. 저는 이 문장을 ‘F든 T든 상대방을 믿을 때에만 알아갈 수 있다’로 실생활에 적용하고 있거든요. 그럼 상대를 믿을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상대방의 상황을 도무지 느끼고 이해할 수 없을 때, 그래서 보노보가 아니라 침팬지처럼 공격해야 할 때는 언제일까요? 아니면 단지 공격하고 싶어서 이유를 댈 뿐일까요? 적개심을 다루기 위해 알려주세요…….